호호호 제가 사장님이 되었다니까요~~ 수에따 & 사비트리 씨 이야기 수에따 씨는 운전을 하던 남편이 허리를 다쳐 몸져 눕게 되면서 생계를 꾸리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남편과 아이에 늙으신 시부모와 시동생 둘까지, 생활은 빠듯하고 달리 길은 없고.... 뭔가 내 힘으로 돈을 벌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우리 재봉교육센터를 만났습니다. 중간중간 당근농사를 짓느라 힘겨웠지만 빠지지 않고 교육에 참여해서 열정을 바친 결과 당당 1등으로 졸업, 창업비를 지원받아 가게를 차렸답니다. 사비트리 씨는 함께 교육받던 이들 중에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친구입니다. 혼자 하는 것 보다 둘이 힘을 합치니 창업비용도 덜 들고 일도 함께 할 수 있어 아주 든든합니다. 2010. 6. 14.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꿈꾸는 재봉교육, 이렇게 자랐어요 재봉교육센터는 네팔 여성들이 기술을 배워 직접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 보자는 계획으로 2008년 6월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가 정말 해 낼 수 있을까... 우리 아줌마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까... ' 하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3개월 과정으로 시작했던 것이 고급반 3개월 과정을 더 열고 급기야 디자인반 3개월 과정을 덧붙여 총 3+3+3 = 9개월 과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지금은 3기 디자인반과 4기 고급반이 운영되고 있지요. 9개월 과정을 모두 마친 분들 중에 창업을 하고자 원하나 돈이 없어 고민하는 분들께는 한 분당 4만루피(약 70만원)를 무이자 대출해 주고 있고 마음맞는 2~3명씩 짝을 이뤄 함께 바느질 가게를 열고 있어요. 우여곡절도 있었지.. 2010. 6. 14. 네팔사티는 무슨말? '사티'는 친구라는 네팔말입니다. 네팔 이웃들과 친구가 되어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기쁨을 응원하세요. 2010. 6. 11. 네팔사티가 주로 하는 일 서로서티학교 꼬마 친구들에게 교실과 선생님을, 이주노동중 사망하거나 산재를 입은 이들의 자녀에게 슬그머니 장학금을, 가난한 여성의 자립을 위해 재봉교육을, 희망을 찾는 청년에게 오토바이 정비 교육을 선물합니다. 2010. 6. 11. 행복 바이러스, 네팔사티 우리가 희망과 행복을 전하면 이 지혜로운 이웃들은 그것을 백배 천배로 뻥튀겨 그 기쁨을 다른 이웃들에게 다시 퍼뜨릴 것입니다. 2010. 6. 11. 맞짱 초등학교 5학년 친구들과 함께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이주민의 삶과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다. 아이들 앞에서 이주민 선생님이 자기 경험을 털어놓았다. 수 년 전, 회사에서 일하던 차림 그대로 외출했다가 수건가게에 들러 수건을 사려 했으나, 주인아줌마가 네게는 수건 안판다고 내쫓더라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어 초라해 보이니 돈을 못 낼까봐 그러나 싶어 돈을 꺼내 보여줘도 손사래 치며 내 몰더라고.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 상했지만 그냥 아무 말도 않고 나왔다고. 지금까지도 그 일은 마음에 아프게 남아 있는데, 자기가 아마 가난해 보이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하고 있으며, 다른 친구들도 거의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물론 아이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2010. 6. 11. AHRCDF 소개 네팔사무소 AHRCDF(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경험했던 친구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이주노동을 마치고 귀환하여 다시 마주하게 된 네팔에는 여전히 가난한 이들이 힘든 일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네팔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만난 힘겨움에 지친 이들의 일상을 바꾸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찾아 하는 것, 바로 AHRCDF와 한국 친구들이 하는 일입니다. 네팔 카트만두 꺼멀라디쪽 전화 : 1-4438-025 ahrcdf@gmail.com 2010. 6. 10. 내동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했어요 부천 내동중학교 친구들이 5월 14일 [다문화축제]를 준비했어요. 우리는 슬쩍 도와주기만 했죠. 스스로 축제를 준비하고 또 신나게 즐기는 모습, 참으로 장하고 이쁘군요 축제를 한 다음 주에 1학년 친구들과 다문화인권교육도 재미나게 했답니다 2010. 6. 4. 다문화인권교육 신청하세요~ 다양한 문화가 높낮이없이 공존하는 사회, 다양한 인종과 민족 출신 사람들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위해 이주민과 한국인 선생님들이 의기투합하여 다문화인권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교육 요청이 쏟아져 5월말까지만 해도 2천명이 넘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소문이 자자~ ...^^ 학교, 복지관, 공부방, 유치원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문화인권교육을 신청하세요 메일 : asiasori@gmail.com 전화 032-684-0244 * 교육비용은 교육 내용과 시간, 규모에 따라 달라집니다. 메일이나 전화로 상의하세요. 2010. 6. 4. 다문화사회를 향해 힘차게 달려갑니다~ [다문화인권교육] 소식입니다~ 다문화인권교육이 힘차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인종, 국적, 문화로 인한 편견이나 차별을 버리고 온 세상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면 참으로 멋지겠지요? 올해 역시 주로 교육에 참여하는 친구들은 초·중학생들입니다. 우리 단체가 실시한 ‘다문화인권교육강사훈련’을 마친 이주민+원주민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로 찾아가지요. 우리 선생님들은 다양한 나라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고, 그러한 문화를 가진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이주민들과 서로 존중하며 살기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봅니다. 이 교육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아이들에게 이주민 또한 얼마나 가깝고 따뜻한 ’사람‘인지, 그 느낌을 전하는 거랍니다. 《올 해 다문화인권.. 2010. 6. 4. 우리학교, 지금 교실을 더 짓고 있어요 서로서티학교 소식 - 학교 증축 공사 우리 학교는 4년 전 약 60여명 학생들과 함께 시작했는데, 지금은 무려 248명이나 됩니다. 해가 갈수록 학생이 늘고 있어요 작년까지는 5학년이 최고 학년이었으나 올해는 6학년도 생겼어요 선생님들은 우리 학교를 8학년까지 있는 큰 학교로 만들 계획이래요 . . . . 우리는 이렇게 매일 아침 10시에 운동장에 모여 조회와 운동을 하고 교실로 들어갑니다 ▽ . . 우리 교실을 언제쯤 지어요? 선생님께 만날 여쭤봤는데, 이제 진짜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 . . . 6학년 언니 오빠들은 새 교실을 다 지을 때 까지 함석으로 지은 임시 교실에서 공부해요 ▽ 2010. 6. 4. 얘들아, 엄마도 공부좀 하자~ 서로서티학교 소식 - 엄마교실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우리 오마니들이 드디어 연필을 움켜 잡았습니다 물렀거라~ 나도 공부해서 내 힘으로 읽을란다~ 구구단도 줄줄줄 외고 있당게~ 2010. 6. 4. 너도 소풍 가 봤니~~~^.* 서로서티학교 꼬마친구들 - 캬~ 신나는 소풍 우린 지금 완전 신난다고~ 2010. 6. 4. 내가 더 큰 빵을 먹을거야 서로서티학교 꼬마친구들 - 급식시간 서로서티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매일 빵과 우유를 급식합니다. 급식비용은 모두 한국 친구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합니다. 네팔에서는 멸균우유를 사기 어렵기 때문에 먹기 직전에 우유를 끓여야 하죠... 매번 우유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시는 서로서티 학교 선생님~~ 2010. 6. 4. 깍쟁이 수니따와 땡땡이 대장 덜레 서로서티학교 꼬마친구들 - 깍쟁이 수니따와 땡땡이 대장 덜레 오늘은 우리 학교에 다니는 덜레와 누나 수니따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수니따는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아빠, 말썽쟁이 동생과 함께 쁘러거티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직 어려 힘이 없지만 그래도 동생에게 엄마처럼 굴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사실 수니따는 동생 덜레 땜에 아주 죽을 지경입니다. 이 녀석이 학교에도 잘 안 가고 누나를 놀려먹느라 골몰하는 녀석이거든요. 다섯 살 덜레는 또 동네 쌈박질 대장입니다. 3년 전에 엄마가 집을 나가고 마음이 무너진 아빠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 아이들을 끌고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답니다. (마을이 무허가 판자촌이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요?) 그래서 아빠도 그 끄트머리에 다섯 평 쯤 되는 땅을 차지하고 대나무와 비.. 2010. 6. 4. 울보 엘리나와 언니, 오빠 서로서티학교 꼬마 친구들 - 엘리나와 언니 오빠 열살 멜리나는 엄마를 잃고 아빠, 동생들과 함께 친척집에서 더부살이하고 있어요. 둘째인 아홉살 밀란은 구슬치기를 좋아하는 철부지고요, 막내인 두살 엘리나는 언니가 없으면 마냥 울어 제치는 울보랍니다. 언니 학교 갈때요? 당근, 언니를 따라가야죠~ 2010. 6. 4. 서로서티 학교는요~ 서로서티 학교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와 벅터푸르 접경 지역에 있는 프러거티 마을에 있는 작은 학교입니다. 처음에는 마을 청년들이 세운 거적학교로 시작했지요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했던 이들이 네팔로 귀환하여 AHRCDF라는 단체를 만들어 네팔사회를 위해 기여하고자 노력하던 중 이 작은 학교를 만나 귀한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마을 주민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헌신적으로 나서고 AHRCDF 활동가들이 어깨를 곁고 한국 친구들이 응원하면서 지금은 아담하고 이쁜 학교로 자리잡았어요 2006년부터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교실을 만들기 시작하고 2008년에는 교육청에서 정식 학교로 인가도 받았지요 2010년 4월, 새학년이 시작되며 등록한 학생이 무려 248명~ 여덟 선생님과 248명 꼬마들이 펼치는 대박 웃음 잔치에 초대합.. 2010. 6. 4. [네팔 장학사업]을 보고합니다~ 이주노동 중 죽거나 다친 이들의 자녀 교육과 생계를 돕는 [네팔 장학사업]을 보고합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던 중 죽거나 다칩니다. 우리 아시아연대는 2006년, 한국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가족들이 어찌 사는지 살펴보고 그 이야기를 으로 엮어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린바 있습니다. 당시 가족들은 대부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 하면서도 일상을 꾸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녀 중에는 급작스레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 전선에 나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자녀들이 생계와 교육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지난 3년간 일시적이거나 연속적인 지원으로 가족들을 도왔으며, 지속 후원하는 장학생도 하나 둘 늘어 이제 50명이나 됩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 2010. 6. 4. 사자나와 고모 쩐드러 씨 장학금을 나누는 가족들 이야기 - 어린 사자나와 고모 쩐드러 씨 다섯 살이 된 사자나는 고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빠는 카타르에 일하러 갔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지고, 혼자된 엄마는 재가하여 옆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완고하신 외할아버지가 재가한 엄마를 용서해 주지 않아, 엄마는 사자나가 보고 싶어도 집에 찾아오지 못하고 동구 밖에서 서성대기만 합니다. 역시나 남편을 쿠웨이트로 떠나 보내고 거의 혼자 지내는 고모는 ‘사자나 때문에 내가 산다’고 눈물바람입니다. 사자나 학비로 매달 400루피( 약7천원)을 지원합니다. 고모는 그 돈으로 사자나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2010. 6. 4. 꾸마리 씨와 장난꾸러기 두 녀석 장학금을 나누는 가족들 이야기 - 꾸마리 씨와 장난꾸러기 두 녀석 삼자나 아빠는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갔다가, 1년도 못돼 스물아홉 나이로 세상을 떴습니다. 심장마비였다고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엄마 꾸마리 씨는 시집 어른들께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모진 구박을 받다 견디지 못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도망 왔습니다. 그러나 친정부모님 또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니 하루하루가 걱정입니다. 마냥 어리고 철없는 아이들과 거친 나날을 살아야 하는 엄마는 한숨과 눈물에 목이 메입니다. 현재 삼자나 학비로 매달 400루피(약 7천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꾸마리 씨가 재봉기술을 익혀 독립해 보고자 하니 그 교육비를 지원하려 계획 중입니다. 2010. 6. 4. 세 아들을 홀로 키우는 풀마야 아줌마 장학금을 나누는 가족들 이야기 - 세 아들을 홀로 키우는 풀마야 아줌마 풀마야 씨 남편은 6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중 숨이 멎은 싸늘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망 소식을 들은 지 3개월도 더 지나 남편 시신이 돌아온다 하여 버스로 14시간을 달려 생전 처음 카트만두에 갔습니다. 죽은 남편 얼굴을 들여다 볼 새도 없이 급히 5만 루피(약85만원)를 빌려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빚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발(6학년) 우뻰드러(3학년) 라즈(1학년) 세 아들은 착한 아이들이지만 공부를 못해 걱정입니다. 작년에 우뻰드러와 라즈는 유급까지 당해 같은 학년을 2년째 다니고 있을 정돕니다. 풀마야 씨는 그게 모두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어미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2010. 6. 4. 우리는 이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그들의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해서 악몽이란 이름도 너무 약한 것은 아닌가. 그들의 희망이 너무도 높아서 꿈이라는 이름도 너무 약한 것은 아닌가. (, 존 버거) 존 버거의 은, 삼십여 년 전에 쓰여진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관한 기록입니다. 1970년대 유럽의 육체노동자 일곱 명 중 한 명이 외국에서 들어온 이주자였던 까닭에 붙여진 제목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갖은 '문제'와 부조리가, 실은 전지구적인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함께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책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이주노동자로 연재한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의 기록 은 이 책에 제목을 빚지고 있습니다. 에서 확.. 2010. 6. 4. 시신도 썩고 꿈도 썩고.... "한국이 지옥같다"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쓸쓸히 홀로 숨을 거둔 삼세르 바하두르 타칼리씨 2006년 1월의 늦은 밤,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 종암경찰서인데요, 네팔인 추정 변사자가 있어요, 가족을 찾아야 되는데 도와주시겠습니까?" "아…, 예…, 혹시 여권이 있나요? 여권상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시면 알아볼게요…" 영세공장이 밀집해 있는 서울 성수동, 철거를.. 2010. 6. 4. 코리아에 계신 아빠, 이젠 전화 안 해요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네팔의 찬드라 라이씨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에서의 빈곤과 실업을 견딜 수 없어 한국에 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의 돌파구로 혹은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대표선수가 되어, 자신을 반기지 않는 낯선 땅에서 오로지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일하는 기계'로서의 삶을 기꺼이 선택합니다. 그러나 .. 2010. 6. 4. 애들 옷 보낸다던 내 남편, 왜 자살했나요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네팔 고빈더 바하두르 채트리의 죽음... 묻혀버린 진실 2005년 겨울, 너무나 벗어나고 싶었지만 죽음 말고는 빠져나올 길이 없었던 공장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망자가 마셨다는 독극물이 든 컵에서는 지문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살'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아이들의 안부와 겨울 점퍼를 세심히.. 2010. 6. 4. 한국서 형 죽었지만 저도 떠나야만 합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기감전으로 사망한 로메스 케이시... 계속되는 악순환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이제는 별로 낯설지 않습니다. 사람 많은 거리에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도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익숙해짐만으로 이주노동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활기 넘치는 이방의 젊.. 2010. 6. 4. 사기꾼같은 한국인 사장은 2년동안 보상금을 주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코리안드림 꿈꾸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내 남편 '라자' 2003년 2월 12일, 대구의 작은 공장 기숙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노동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아내와 두 자녀를 네팔에 두고 온 37살의 이주노동자 비렌드라 비끄럼 사아, 애칭 '라자'였습니다.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 네팔에서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어렵사리 입국한 한국에서 강도높.. 2010. 6. 4. 표지판 없는 막다른 길, '불법체류자'의 삶과 죽음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수바스 구릉의 이야기 스물두 살, 수바스 구릉은 '불법체류자'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좋아하는 활기찬 젊은이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멀리로 보낸 네팔의 노모는 보고픈 마음을 늘 걱정과 기도로 달랬지만, 새로운 세상 활기찬 한국 생활에 적응한 수바스는 열.. 2010. 6. 4. 젊은 숨이 멎고, 꿈도 멎었습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15년 전 세상 떠난 네팔 이주노동자 마덥 쿠워의 이야기 1992년 한 네팔 젊은이가 한국으로 일하러 왔습니다. 아직 '이주노동자'라는 말 자체가 낯설고, 한국과 네팔을 잇는 어떤 제도도 없었던 시절입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은, 열심히 일해서 꿈을 이루고 싶은 평범하지만 진취적인 젊은이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에게 붙.. 2010. 6. 4. 남겨진 자들에게 희망은 '호흡'입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우리는 누구도 쉽게 꺼내 펼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의 이웃이었지만 이방인의 삶을 살다가 한국땅에서 생을 마친 그들, 그리고 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 이주노동자라 부릅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몰랐던 20년쯤 전부터.. 2010. 6. 4. 이전 1 ··· 8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