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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마리 씨와 장난꾸러기 두 녀석 장학금을 나누는 가족들 이야기 - 꾸마리 씨와 장난꾸러기 두 녀석 삼자나 아빠는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갔다가, 1년도 못돼 스물아홉 나이로 세상을 떴습니다. 심장마비였다고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엄마 꾸마리 씨는 시집 어른들께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모진 구박을 받다 견디지 못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도망 왔습니다. 그러나 친정부모님 또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니 하루하루가 걱정입니다. 마냥 어리고 철없는 아이들과 거친 나날을 살아야 하는 엄마는 한숨과 눈물에 목이 메입니다. 현재 삼자나 학비로 매달 400루피(약 7천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꾸마리 씨가 재봉기술을 익혀 독립해 보고자 하니 그 교육비를 지원하려 계획 중입니다. 2010. 6. 4.
세 아들을 홀로 키우는 풀마야 아줌마 장학금을 나누는 가족들 이야기 - 세 아들을 홀로 키우는 풀마야 아줌마 풀마야 씨 남편은 6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중 숨이 멎은 싸늘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망 소식을 들은 지 3개월도 더 지나 남편 시신이 돌아온다 하여 버스로 14시간을 달려 생전 처음 카트만두에 갔습니다. 죽은 남편 얼굴을 들여다 볼 새도 없이 급히 5만 루피(약85만원)를 빌려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빚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발(6학년) 우뻰드러(3학년) 라즈(1학년) 세 아들은 착한 아이들이지만 공부를 못해 걱정입니다. 작년에 우뻰드러와 라즈는 유급까지 당해 같은 학년을 2년째 다니고 있을 정돕니다. 풀마야 씨는 그게 모두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어미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2010. 6. 4.
우리는 이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그들의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해서 악몽이란 이름도 너무 약한 것은 아닌가. 그들의 희망이 너무도 높아서 꿈이라는 이름도 너무 약한 것은 아닌가. (, 존 버거) 존 버거의 은, 삼십여 년 전에 쓰여진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관한 기록입니다. 1970년대 유럽의 육체노동자 일곱 명 중 한 명이 외국에서 들어온 이주자였던 까닭에 붙여진 제목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갖은 '문제'와 부조리가, 실은 전지구적인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함께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책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이주노동자로 연재한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의 기록 은 이 책에 제목을 빚지고 있습니다. 에서 확.. 2010. 6. 4.
시신도 썩고 꿈도 썩고.... "한국이 지옥같다"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쓸쓸히 홀로 숨을 거둔 삼세르 바하두르 타칼리씨 2006년 1월의 늦은 밤,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 종암경찰서인데요, 네팔인 추정 변사자가 있어요, 가족을 찾아야 되는데 도와주시겠습니까?" "아…, 예…, 혹시 여권이 있나요? 여권상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시면 알아볼게요…" 영세공장이 밀집해 있는 서울 성수동, 철거를.. 2010. 6. 4.
코리아에 계신 아빠, 이젠 전화 안 해요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네팔의 찬드라 라이씨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에서의 빈곤과 실업을 견딜 수 없어 한국에 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의 돌파구로 혹은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대표선수가 되어, 자신을 반기지 않는 낯선 땅에서 오로지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일하는 기계'로서의 삶을 기꺼이 선택합니다. 그러나 .. 2010. 6. 4.
애들 옷 보낸다던 내 남편, 왜 자살했나요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네팔 고빈더 바하두르 채트리의 죽음... 묻혀버린 진실 2005년 겨울, 너무나 벗어나고 싶었지만 죽음 말고는 빠져나올 길이 없었던 공장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망자가 마셨다는 독극물이 든 컵에서는 지문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살'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아이들의 안부와 겨울 점퍼를 세심히.. 2010. 6. 4.
한국서 형 죽었지만 저도 떠나야만 합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기감전으로 사망한 로메스 케이시... 계속되는 악순환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이제는 별로 낯설지 않습니다. 사람 많은 거리에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도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익숙해짐만으로 이주노동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활기 넘치는 이방의 젊.. 2010. 6. 4.
사기꾼같은 한국인 사장은 2년동안 보상금을 주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코리안드림 꿈꾸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내 남편 '라자' 2003년 2월 12일, 대구의 작은 공장 기숙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노동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아내와 두 자녀를 네팔에 두고 온 37살의 이주노동자 비렌드라 비끄럼 사아, 애칭 '라자'였습니다.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 네팔에서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어렵사리 입국한 한국에서 강도높.. 2010. 6. 4.
표지판 없는 막다른 길, '불법체류자'의 삶과 죽음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수바스 구릉의 이야기 스물두 살, 수바스 구릉은 '불법체류자'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좋아하는 활기찬 젊은이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멀리로 보낸 네팔의 노모는 보고픈 마음을 늘 걱정과 기도로 달랬지만, 새로운 세상 활기찬 한국 생활에 적응한 수바스는 열.. 2010. 6. 4.
젊은 숨이 멎고, 꿈도 멎었습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15년 전 세상 떠난 네팔 이주노동자 마덥 쿠워의 이야기 1992년 한 네팔 젊은이가 한국으로 일하러 왔습니다. 아직 '이주노동자'라는 말 자체가 낯설고, 한국과 네팔을 잇는 어떤 제도도 없었던 시절입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은, 열심히 일해서 꿈을 이루고 싶은 평범하지만 진취적인 젊은이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에게 붙.. 2010. 6. 4.
남겨진 자들에게 희망은 '호흡'입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우리는 누구도 쉽게 꺼내 펼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의 이웃이었지만 이방인의 삶을 살다가 한국땅에서 생을 마친 그들, 그리고 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 이주노동자라 부릅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몰랐던 20년쯤 전부터.. 2010. 6. 4.
우리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입니다 우리는 한국에 일하러 왔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산재를 당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이겨내지 못하거나 ..........추위와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자유를 찾고 싶습니다 많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죽음을 맞.. 2010.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