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정신과 간호사
여기동 (사거르 수베디)
“인생은 즐거운 여행이다(Life is enjoying journey)
인생은 웃음짓는 것이다(Life is laughing).
인생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Life is discussion)”
2011년 6월 21일 화요일
비행기에서 창 밖을 바라보니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들 그리고 산과 마을들을 보면서 자연은 신비롭고 거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자연 안에 사는 인간은 지극히 작은 존재이고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인간은 거만함을 버리고 자연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 상생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친구 무쿠와 인터넷으로 만난지 6개월 만에 드디어 네팔의 카투만두에 발을 디뎠다. 카투만두에서 시인, 전 시장, NGO 활동가들을 만났다. 노 시인은 나에게 자신의 시집을 선물했다. 그 시인은 나의 친구에게 정치보다는 휴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무쿠와 The Bakery Café에 갔다. 그곳은 청각장애인을 종업원으로 고용하는 레스토랑이다. 그들은 종이와 연필로 주문을 받는다. 장애인이 일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고 이들을 고용한 사장은 멋진 사람이다. 이 카페를 보면서 네팔의 정신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일할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클럽하우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무쿠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대학생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활동을 했다. 어느 날 군인들이 집을 검문하여 가까스로 위험상황을 넘겼다고 한다. 마치 한국의 군부독재시절에 많은 대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열망하였듯이 네팔의 대학생들도 그러했다. 그는 네팔의회당(NCP) 활동가였고 당과 NGO를 연결하는 담당자였다.
과거에 그는 술을 혼자서 많이 마셨었고 커피를 많이 마셔 중독되었다고 한다. 그는 정말이지 정신건강과 클럽하우스를 좋아했고 그 일이 이제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기고 있다. 호텔에서 이틀 밤을 보낸 뒤 무쿠의 고향 순사리로 가는 이타하리행 밤버스를 탔다. 12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스 차장 소년의 ‘인생은 여행, 토론, 여행이다’라는 말에 무쿠와 나는 감동을 받았다.
무쿠의 집에는 부모님이 단둘이 살고 계시고 동생 더르마는 결혼을 하여 부인과 아들 이점과 함께 산다. 여느 시골의 부모님처럼 나를 아들로 여겨주시고 매끼 맛있는 밥을 챙겨주신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부모님과 더르마와 함께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어느덧 나는 네팔의 코메디언이 되어 내가 말하고 행동을 하면 가족들이 크게 웃는다.
아타하리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무쿠가 운영하는 그라민재단의 여성 회원들, 공무원, 농업연구센터, 비랏너걸의 간호대학, 정신병원과 부속 간호대학, 지역사회 리더, 그리고 무쿠의 친구들을 만났다. 무쿠와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네팔에 온 목적과 지역사회 정신간호사업, 클럽하우스 모델을 소개하면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는다.
둘. 아름다운 NGOs
네팔의 엔지오 단체 네팔정신건강 파운데이션(Nepal Mental Health Foundation[NMHF], 블루 다이어몬드 소사이어티[BDS], 네팔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 그리고 공립 널싱홈을 방문했다.
네팔정신건강재단(Nepal Mental Health Foundation[NMHF]
내 친구 둘쿠멀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회복지사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네팔정신건강파운데이션에서 일하고 있다. 이 단체는 정신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 2명이 직원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NMHF은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자조활동을 위한 단체이다. 이들은 언론이 정신장애인에 대하여 긍정적인 보도를 하게 하고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일하고 있다.
이곳의 현관에는 아주 이상한 포스터가 한장 있었다. 정부가 만든 여러 장애를 표현한 그림이었는데 정신장애인을 팔을 물어 뜯어 피가 나는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 참으로 이상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더욱 심화시키는 표현방식이다.
이 단체의 대표는 Jagannath Lamichhane이다. 그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Kathmandu Post에 정신장애의 개념을 공개적으로 토론하자는 글을 기고하였고 주요 개념으로 mental disease나 mental disabled라는 용어 보다는 mental disability라는 개념으로 정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시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를 읽고 잠시 동안 나는 어떤 개념이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는데 개인적으로 mental distress(정신적 고통)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개념으로 정신질환을 보다 명확하게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클럽하우스 모델을 잠시 소개하였는데 이들은 매우 흥미를 가졌으며 나에게 네팔의 정신장애인의 날인 10월 10일을 맞이하여 함께 작은 토론회를 갖자는 제안을 해주었다. 내가 준비한 작은 기부금과 선물을 전해주었더니 무척 기뻐하였다.
블루다이어몬드 소사이어티[BDS]
이 단체는 네팔의 성소수자 인권단체이다. 단체의 대표 Sunil은 네팔의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제헌의회(CA) 의원이기도 하다. 동성애자의 인권증진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으며 HIV/AIDS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고 감염임을 위한 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네팔에서는 성소수자에게 제3의 성으로 법적등록을 해주고 있다.
올해 한국의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에이즈학술대회에 몇 명의 활동가가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단체는 네팔 전역에 지부를 가지고 있다. 올 8월에는 카투만두에서 퀴어퍼레이드 행사를 할 예정이다. 한국의 성소수자 단체에서 준비해준 선물과 기부금을 전달하였다.
네팔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
올해 3월 부터 한국의 아시아인권문화연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체는 이주노동자의 인권, 다문화교육과 네팔에 지부사무실을 두고 네팔을 지원하는 곳이다.
네팔 사무소는 청년들에게 자동차, 오토바이 수리와 세차를 가르치고 있고, 서로사티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을 위해 재봉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가정의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너무도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다. 한국의 따뜻한 후원금들이 이 모여 가난한 나라에 희망을 만드는 희망제작소가 바로 아시아문화인권연대였다.
네팔 공립 널싱홈
<<나의 친구 둘쿠멀이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
네팔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서 버스를 타고 로열팰리스로 갔다. 휴일을 맞이하여 친구 둘쿠멀을 만났다. 네팔은 토요일만 휴일이다.
점심으로 만두를 먹고 카투만두 근처 힌두사원에 가던 중에 네팔 공립 널싱홈에 들었다. 그곳에서 둘쿠멀의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생일을 맞이하여 이곳의 노인들에게 점심을 기부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나의 친구와 나는 함께 서빙을 하였다.
이곳의 할머니들을 보니 작은 키에 얼굴이 너무도 귀여웠는데 한달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과 비슷하였다. 우리도 세월이 흐르면 노인이 될 것이다.
힌두사원에서는 여러 구의 시신을 화장하고 있었다. 작은 강물이 흐르고 있고 어린이들이 그 강물에서 수영을 하고 놀고 있었다. 너무도 신기한 모습이다. 삶과 죽음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나의 친구 무쿠는 카투만두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한다. 방 2개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내가 사용하고 나머지 하나를 작은 사무실로 만들었다.
사무실에 나의 노트북과
주방시설이 없어서 사무실 바닦에 신문지를 깔고 커피와 차, 접시과 그릇, 작은냄비를 샀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 된장, 김 그리고 건미역을 준비했다.
아침은 주로 커피와 차 그리고 도너츠를 먹고 점심과 저녁은 사무실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네팔음식 카나를 먹는다. 네팔음식에 적응하기가 어려워 한국식당에서 사온 김치를 밥 먹으로 갈 때마다 챙겨가는데 네팔 주민들이 한국김치를 처음 보고 매우 신기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서 문화충격과 전쟁(?)중이다. 화장실은 재래식인데 수도물이 나오지 않는다. 세수, 양치, 샤워를 할 때는 물을 퍼 날라야 한다. 전기는 거의 매일 끊긴다. 저녁에 잠자기 전 책을 읽으려고 하면 휴대용 랜턴이나 촛불을 켜야 한다. 네팔의 수도와 전기는 너무도 부족하다. 그래도 요즘은 전기사정이 좋다고 하고 겨울철 어느 날은 하루에 20시간 정전이 되기도 한다며 내 친구는 내가 운이 좋다고 껄껄걸 웃는다.
빨래를 할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물이 부족해서 아껴야 한다. 양치는 2컵이면 족하다. 한국에서 물과 전기가 풍족하여 소중한 줄을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 정말 소중함을 알게 된다.
이곳은 현재 몬순기온인데 한국의 장마철과 비슷하다. 매일 비가 오고 습하며 모기가 너무도 많다. 가장 심각한 것은 수도시설이 없고 물이 더러운데 그런 물로 씻고 그릇을 닦고 요리를 하고 그래서 신문에서 이를 몬순기의 물과 수인성질환을 다룬 기사를 오늘 보았다. 나는 매일 물을 끓여 마시고 집밖에서는 물을 사서 먹어서 다행히 한번도 설사를 하지 않았다.
다만 이타하리에서 더란으로 가는 버스에서 비포장도로를 가는 차였는데 맨 뒤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튀어올라 나의 가슴이 앞 좌석에 부딛혀서 타박상을 입었다. 통증만 있었는데 몇일 뒤 친구와 장난치다 또 부딛혀서 Civil Service Hospital에 가서 엑스레이 찍었는데 이상은 없고 진통제를 처방 받아서 3일을 먹고 나았다. 앞으로 활동을 위해 건강을 가장 조심해야겠다.
이곳에서 가장 힘든 것은 음식에 적응하는 일이다. 과일은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하루 3끼 먹는 네팔음식 카나는 매우 기름지고 냄새도 인도음식 같은 냄새여서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소량씩 먹는데 그렇지 않아도 마른 체형인데 걱정된다면 내 친구는 많이 먹을 것을 요구한다.
내일은 이타하리로 간다. 내친구의 시골마을이다. 사전에 답사한 상황은 최악이다. 너무도 빈곤하여 개인위생과 집안위생이 엉망이다. 이곳에는 헤시시라는 마약담배가 온 마을에서 자생하여 마을 주민들이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헤시시 중독자가 많고 집에서 만는 술(럭시)로 인하여 알코올중독자가 너무도 많다. 아마도 중독자 회복을 위한 TC모델이 필요할 듯하다.
길거리에서 정신분열증을 가진 아마도 홈리스 인듯한 여성을 만났고, 제 친구의 옆집 아주머니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고립되어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모습이다. 그리고 그분들이 치료를 받을 곳이 없어서 그냥 방치되어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 온다.
마을에 병원이 없어서 먼거리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것도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기란 정말 힘들다. 이곳의 약국이 있지만 약이 그리 많지 않고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내가 머무르는 동안 작은 보건진료소를 만들고 싶다. 한국의
네팔어를 매일 공부하고 있다. 지난 학기에 한국에서 책을 사서 조금하다가 바빠서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네팔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아 그래도 배우기가 쉽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외국어이다. 매일 자음과 모음을 읽고 쓰고 그리고 짧은 문장을 공부하여 매일가는 식당아주머니 Lama에게 연습을 한다. 아주머니와 손님들은 낯선 한국인의 네팔말에 마냥 신기해한다.
그동안 일정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인터넷 접속도 어려워서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응원해주시는 여러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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