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형 죽었지만 저도 떠나야만 합니다

---

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꿈 그리고 악몽>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

 

전기감전으로 사망한 로메스 케이시... 계속되는 악순환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이제는 별로 낯설지 않습니다. 사람 많은 거리에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도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익숙해짐만으로 이주노동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활기 넘치는 이방의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현장은, 여전히 험난하게 숨겨진 뒤안이기 때문입니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고 자신이 설계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고 싶었던 젊은이가 공장에서의 안전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2001년 6월, 한국에 온 지 5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네팔에서와 달리 열심히만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도 휘황한 한국 사회와는 딴 판인 열악한 작업 환경도 모두 견딜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슴에 담은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다른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친구처럼 의지했던 형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님의 애끓는 마음에 새로운 염려를 더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 바로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좋아했던 형의 마지막 여행지

우리 형은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네팔의 노동자를 다른 나라로 보내는 일을 하던 형은 주변 나라를 여행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아마 형이 가고 싶고, 갈 수 있는 나라는 모두 다녀왔을 겁니다. 한국에도 두 번째 간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한국에 다녀와서 무슨 생각을 했던지, 두 번째 가서는 꽤 오래동안 머물렀습니다.

어느 날인가, 한국에서 자리 잡고 일을 하게 되었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부모님 편히 모시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형은 한국에서 모은 돈으로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더 큰 꿈을 지닌 미래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곳이 형의 마지막 여행지가 되었네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형이 두 번째로 한국에 간 것은 2001년 1월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형이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많이 했던 사람이라 이번에도 예전처럼 한국을 둘러보고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그 여행이 다른 때보다 조금 더 길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래도 어머니는 뭔가를 예감 하셨던걸까요? 형이 탄 차창에 한참 동안 손을 올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떠나는 형을 바라보셨습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곧 돌아올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형은 그렇게 어머니를 위로했지만, 어머니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계셨습니다.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이별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모님

부모님께 형은 정말 든든한 아들이었습니다. 먼 한국 땅에서도 부모님을 잘 모시라고 저에게 신신당부를 하곤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3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일하셨는데 형이 권유해서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벌어 보낼테니 아버지는 그만 쉬세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일을 그만두셨는데 조금 후에 형이 사고를 당한 겁니다. 힘든 결정이셨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 때문이었겠지요.

형이 죽은 것은 한국에 간 지 5개월 만인 2001년 6월경이었습니다. 형의 나이가 26살때였지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가끔씩 전화로 우리들의 미래를 얘기하곤 했었는데, 정말 믿어지지 않았어요. 저도 그랬지만 부모님은 더 하셨어요. 부모님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머니는 한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지내셨습니다.

하지만 형의 자리를 제가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시집간 누나가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는 정말 형이 원망스럽더군요. 아무리 애를 써도 제가 대신할 수 없는 빈자리를 남겨두고 떠났으니 말입니다.

형의 주검을 수습하러 아버지와 매형이 한국으로 가셨습니다. 차가운 냉동고 속에 누워있을 형을 저는 차마 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형이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쓸쓸히 누워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버지와 매형은 소식을 듣고 급작스럽게 여권을 만들고 힘겹게 한국비자를 받느라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고 일주일만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이 죽어 마지못해 간 한국 공항에서 잊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간신히 공항을 빠져나가 형이 있는 병원으로 가셨답니다.

형은 냉동고에서 차디찬 시신으로 두 분을 맞았겠지요. 아버지나 매형은 그 순간에 대해 말씀을 안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 엄청난 충격을요.

살기 좋은 나라 한국, 형이 일하던 열악한 현장

형이 일하던 공장은 의정부에 있었는데 그때가 한창 이사 준비중이었다고 합니다. 며칠째 공장을 운영하며 동시에 이사를 했답니다. 사고가 일어난 날은 이사 마지막 날이었는데, 오후까지 일하고서 새 공장으로 옮겨가기 전에 샤워를 했답니다.

샤워실은 이미 사용을 중단해서 온수가 안 나오니 양동이에 온수를 담아서 공장 한 구석 하수구가 있는 곳에서 몸을 씻었답니다. 하수구에 든 물을 빼내기 위해 전기 모터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형이 신었던 슬리퍼가 미끌어지면서 그 속으로 발끝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감전사였습니다.

그 현장을 보신 아버지와 매형은 무척 애통해 하셨습니다. 그래도 한국은 우리나라보다 발전된 나라고, 살기 좋은 나라라고 들었는데 형이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더 마음이 아픕니다.

아버지와 매형이 장례를 위해 한국에 갔을 땐 이미 한 인권단체에서 도움을 주고 있더랍니다. 사고에 대해서 상황 설명도 잘 해주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잘 알려주셨답니다. 한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분들이 하자는 대로 하셨답니다.

다행히 장례도 무사히 잘 치뤘고, 보상금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분들께 지금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나 어머니도 그렇구요. 2005년에 그 분들이 네팔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떠난 아들을 보러가는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 분들은 이미 네팔을 떠나셨더군요. 따뜻한 차 한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는 네팔의 젊은이들

우리는 보상금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공무원 생활만 오래도록 하신 아버지와 집안에서 살림만 하신 어머니, 그리고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제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집을 지어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주변에 월세가 흔하니 세가 잘 안 나가고 우리 가족은 언제나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라도 무슨 일이든 해야 할텐데, 네팔에는 저같은 청년들이 할 일거리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도 그렇게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그런 상황은 쉽게 변하질 않네요. 공부를 더하고 싶은 욕심도 듭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형편에 제가 공부를 더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지요. 어떻게든 부모님과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하니가요. 일자리를 구하려고 면접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릅니다. 거의 모든 회사가 일 할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면접은 요식행위처럼 하는 거라 매번 사기당하는 느낌입니다. 참 지치는 일이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도 다른 나라에 가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나라로 갈까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형이 무사히 한국에서 돌아왔더라면 지금 나에게 충고도 많이 해 줄수 있었겠지요. 요즘엔 부쩍 형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마 형도 제가 지금 느끼는 이런 책임감 때문에 한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런 형을 좀 더 이해해주지 못한 게 미안합니다. 그땐 제가 너무 어렸나 봅니다.

예전에 형이 그랬던 것처럼, 어디론가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늙으신 부모님 때문에 더욱 그런가 봅니다. 제가 다른 나라로 떠난다면 제 부모님은 형 때문에 애태웠듯 또 그렇게 애를 태우실 겁니다.

그리고 저 또한 형처럼 돌아오지 못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밤잠을 설치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디론가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식입니다.

 

 악순환하는 이주노동 

 

이주노동자가 충분한 부를 축적하고 출신국에 돌아가 가족과 재결합하고 지역 사회에 정착하여, 다시 이주노동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비 이주노동자들은 단 한 차례 이주노동으로 영원히 빈곤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매우 다르다.

그 이유를 살펴 보면, 우선 이주노동자가 벌어들이는 돈이 거의 모두 소비되고 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가족의 일원이 벌어들인 돈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가족 공동의 것이라는 문화 때문이다.

또한 저축하더라도 그 돈이 적정한 곳에 재투자 되는 경우도 드물다. 돈은 대부분 가족 생활비로 쓰이며, 저축액은 주택건축에 쓰이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에 돌아가서야 자신이 처음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빈털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또 다시 다른 나라로 가서 돈을 벌어와야겠다고 생각한다.

또 귀환 노동자들이 출신국에 정착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출신국의 높은 실업률과 더딘 경제성장은 귀환노동자의 정착을 가로막는다. 귀환노동자들은 이미 이주노동국에서 출신국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고 일한 경험이 있으므로, 어느 작업에든 만족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결국 귀환노동자들은 또 다른 이주노동을 계획하게 된다. 얼마간 저축한 돈을 송출브로커에게 쥐어주고 또 다시 꿈을 꾸며 떠나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