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판 없는 막다른 길, '불법체류자'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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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 중 열두 가족을,
지난 2006년 7월부터10월까지 찾아다니며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족들 가슴에 담긴 애절한 이야기를 <꿈 그리고 악몽>으로 엮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며 후원금이 모이기 시작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네팔장학사업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고 계신 덕에 2010년 6월 현재 모두 24가족 50자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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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수바스 구릉의 이야기

스물두 살, 수바스 구릉은 '불법체류자'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좋아하는 활기찬 젊은이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멀리로 보낸 네팔의 노모는 보고픈 마음을 늘 걱정과 기도로 달랬지만, 새로운 세상 활기찬 한국 생활에 적응한 수바스는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한국에서의 시간을 다져나갔습니다.

누구에게나 삶과 죽음은 함께 있지만 우리는 대개 나이 먹음과 죽음을 나란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청춘의 혈기가 오히려 그를 너무 일찍 저 세상으로 인도했습니다. 사고로 스러진 자신도, 사랑하는 어머니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을 상상할 때 차마 '죽음'을 떠올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오랜 시간 깊은 시름으로 살아온 어머니는 아직도 밤잠을 잘 이루지 못합니다. 이제는 세상 어디에서건 아들의 영혼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세계 곳곳의 절로 유골을 보내면서도, 어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 아들이 입었던 옷을 부여잡고 가슴에서 떼어놓지 못합니다. 다음 세상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이, 아들의 넋에 가닿고 대답으로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으로 아들을 보내고 6년, 이제나 저제나 우리 아들이 돌아올 날만 기다렸습니다. 우리 아들은 한국에서 불법체류하고 있었습니다. 걱정하는 어미를 헤아려 항상 "사장님이 잘 보살펴 주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했어요.

가끔 우리 아들처럼 한국으로 일하러 간 아들 같고, 딸 같은 사람들이 불법체류자로 일하다 붙잡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혹시 우리 아들도 그렇게 붙잡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어요. 무사히 잘 있으라고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리다가도 아들이 정말 보고 싶을 때는 그렇게 해서라도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 아들도 다른 집 아이들처럼 "어머니!" 하면서 달려올 것 같은데, 박복한 나는 그런 기쁨을 누릴 수도 없나 봐요. 다 내 팔잡니다.

네팔에서도 한국에서도,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좋았던 수바스

그때가 2000년이었으니까 벌써 6년 전이네요. 우리 아들이 스물 둘일 때예요. 한국에 가고 싶다고 그래요. 한국에 가서 다른 세상을 보고 경험도 하고, 돈도 벌고 싶다고요. 저는 그렇게 원하지만 내 생각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멀리 보내는 것도 걱정되고, 너무 보고 싶을 것 같기도 해서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그런데 애는 자꾸 가겠다는 거예요. 한국에는 친척도 몇 있거든요. 친척들이 한국에서 일하면서 돈도 보내고 하는 걸 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들을 허락을 했습니다. 잘못 생각했던 거예요, 내가….

우리 아들은 '수꾸띠'를 참 좋아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수꾸띠'가 먹고 싶지 않을까 싶어, 아들이 전화했을 때 보내주겠노라고 말하면 이 녀석이 항상 보내지 말라는 거예요. "가져 올 사람도 없는 걸요. 그리고 여기는 먹을 게 많아요.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저는 잘 먹고, 일도 잘하고, 친구들도 많이 있어서 잘 지내고 있어요. 네팔로 가서 실컷 먹어도 돼요"했답니다. 우리 아들은 네팔에서도 워낙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모이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지나가는 바람만 맞아도 웃을 만큼 성격이 좋았어요. 그런 성격 때문에 한국에서도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히려 화근이었나 봅니다.

6년 만에 한 줌 재가 되어 다시 만난 외아들

보통 때처럼 아침을 먹고, 선생님인 딸은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끝내고 학교로 출근하기 위해 아주 바삐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화가 왔습니다. 순간 한국에서 온 아들의 전화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았지요.

"수바스니? 수바스! 수바스!"

몇 번이나 아들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더군요.

"저는 수바스가 아니고, 수바스 친구입니다. 어머니…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순간 아들이 잡혔구나 생각했어요. 아들에게 그 밖에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상상한 적도 없으니까요. 아들 녀석 친구는 한참 만에 얘기를 다시 시작하더군요.

"어머니…, 수바스가 우리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갔어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것이 수바스의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후 나는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던가 봐요.

28살, 어엿한 장정이 된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었는데, 우리 아들은 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6년 만에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진 몇 장과 사고 당시 입고 있었다던 외투가 전부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사고로 세상과 이별할 때 얼마나 아팠을까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할 때마다 이 옷을 가슴에 끌어안곤 합니다. 끝까지 새끼를 보살피지 못한 이 어미의 죄가 이렇게 한다고 씻길까 싶지만 아들의 살 냄새가 배어있는 옷을 끌어안고 보듬으며 다시는 볼 수 없는 새끼를 그리워하고 보고파합니다.

오토바이 사고였다고 하더군요. 2005년 8월의 토요일에 일 끝나고 친구들과 술을 한 잔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답니다. 사고가 난 곳은 도로공사를 하고 있던 곳이라 했는데, 어둠이 너무 깊어 막힌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거라고 합디다. 의정부라는 곳이었다는데, 아마 그 길이 공사 중인지 모르고 가다 벽에 부딪혀 사고가 났을 거라고 그래요.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당시 우리 아들도 친구들과 술을 먹었고, 게다가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운전했다는데….

아들을 먼저 보낸 어미의 마지막 선물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들 팔자이고 내 팔자 아니겠어요? 한국에는 불교 신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그런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었다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꺼이 아들의 장례식을 한국에서 치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들 시신을 가져오지 않고 장례를 한국에서 지냈다고 내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남편도 없고 다른 아들도 없는데, 우리 아들 마지막 가는 길은 차라리 한국이 더 낫겠다 싶었어요.

대신 이 어미가 살아서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주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은 아들 뼛가루를 조금씩 나눠 전 세계 유명한 절에 보내고 있어요. 여기 네팔에 계신 큰 스님이 이 작은 탑에 뼛가루를 조금씩 넣어 이렇게 만들어 주셨어요. 이 탑은 네팔 큰 절에도 보내고, 미국에도 보내고 일본에도 보냈어요. 한국에서는 아들이 살다 죽었으니 안 보냈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나라에도 우리 아들이 편히 쉴 절이 있다면 보낼 겁니다. 이렇게 우리 아들을 전 세계의 좋은 절로 보내면 좋은 곳에서 쉬다 아름다운 곳에서 다시 태어날 거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아들을 생각하는 어미의 마지막 마음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자기 아들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미어지게 아픕니다. 남들 앞에서 울 수도 없고 그래서 동네 사람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 자식이 이제 내 생에 큰 응어리가 되었어요. 오늘도 또 밤이 찾아오겠지요. 밤이 되면 우리 아들이 돌아올까 싶어 밤에도 몇 번씩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합니다. 개 짖는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아들이 왔는가 싶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 서성입니다. 얼마나 더 이렇게 밤서리를 맞아야 할지 모르지만, 정말 우리 아들이 살아 돌아와만 준다면 천 년 만 년도 괜찮습니다. 만약 그렇게 서성이다 죽은 넋이라도 만나지면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이 못난 어미랑 다음 세상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요.

 

네팔의 경제상황과 이주노동 

 

네팔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불안한 정치 상황과 인접한 바다가 없어 물류 순환의 어려움이 크다는 약점으로 인해 산업발전이 더딘 편이다. 풍부한 수력자원과 히말라야 산맥을 중심으로 한 관광자원이 있어 경제발전의 잠재력이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2004년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네팔의 GDP는 67억 700만불로 조사대상국 중 111위를 기록했으며 일인당 GDP는 260불과 불과하다.

근래 들어 전통적인 토지소유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농경지의 90% 이상을 봉건적 지주계급이 점유하고 계단경작지가 많은 지형과 고지 기후로 인해 토지생산성도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이 주종산업으로 취업인구의 약 81%를 차지하며, 국민총생산의 약 41%를 농업생산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조건과 불안한 정치 상황이 청년들을 나라 밖으로 내몰고 있다. 형편이 못한 이들은 네팔과 국경이 개방되어 있는 인도로, 그보다 좀 나은 이들은 말레이시아, 중동 국가 등으로 이주노동을 떠난다. 그보다 더 높은 송출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한국, 일본, 싱가포르나 유럽, 미주 등으로 가고 있다.

네팔 노동자들은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도 미군에 고용되어 전쟁 한복판으로 ‘일’을 하러 떠났으며, 그 중 십여 명이 이라크에서 살해된 사실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인도와 국경이 개방되어 있어 정확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의 수를 추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수백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