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행진, 위험의 외주화, 위험의 외국인화
영국의 작가 ‘존 버거’는 유럽의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책 ‘제 7의 인간’에서, 이주노동자의 삶을 표현하며,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 자체가 부정되고 죽음마저도 가볍게 여겨지는 그저 부족한 인력을 메워주는 커다란 기계의 대체 가능한 부속이 된 이주노동자를 표현했다. 지금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의 삶이 바로 이렇다.
9월 10일 경북의 한 업체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4명이 지하저장 창고에서 질식사로 사망했다. 이번 사건 또한 결국 그 흔한 방독면이나 출입 전 가스 농도 측정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4명이 한꺼번에 죽은 이 사건은 잠시 언론의 관심을 타고 곧바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늘 그런 식으로 작동된다. 이미 많은 이들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불과 두 달 전 7월에는 한 우즈베키스탄출신 이주노동자가 농촌에서 작업 준비를 하던 중, 일을 하기 위해 장갑을 달라고 했다가 한국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동영상이 SNS를 통해 공개된 일이 있었다. 그리고 7월 31일, 비가 아주 많이 내렸던 서울에서는 6명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23살 미얀마 청년이 폭우가 내릴 때 서울시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빗물 펌프장 점검을 하다가 죽었다.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이하, AI)와 같은 국가재난에도 이주노동자가 최일선을 맡고 있다. 가축에게 전염병이 발생하는 경우, 몇 백만 마리에 달하는 가축을 도살하거나 생매장하면서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전염성 질환 등에 대한 위험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그래서 초기에 많이 투입되던 관계 당국의 공무원은 점차 줄었다. AI가 가축에서 사람으로 전염될 수 있는 수인성 전염병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후, 군인들도 동원하기 어려워졌다. 더 이상 위험한 현장에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다.
정부는 위험을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외주화를 했고, 결국, 이 외주화의 현장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외국인화(이주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사회는 현장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바꾸는 대신, 그 곳에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내고 있다. 결국,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안전교육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거 투입되고 있다.
2018년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5월까지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3만3798명이었고 사망자도 511명이나 되었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내국인 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0.18%인데 반해, 외국인노동자 산재발생률은 1.16%로 내국인노동자에 비해 6.4배가 높았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소규모업체에서 일하고 있고, 체류가 불안정안 이주노동자도 많아 산재 신고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실재 산재 발생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다. 더욱이, 이들은 항의를 해 줄 노동조합도 가족도 없고, 이들의 외침에 반응해줄 정치권력도 없다. 결국, 적절한 예방 교육도 후속조치도 없이 현장으로 더욱더 내몰리고 있다. 국가 경제의 버팀목을 이루고 있으며, 안전과 재난 현장에 투입되면서도,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이중 잣대로 정당한 대우 없이 대체 가능한 일회용 딱지가 붙어 있다.
우리의 일상 어느 부분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과 고통을 담보한 것이라면,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미얀마 등에서 온 어떤 20살 젊은 노동자들을 등 떠밀어 위험한 곳에 보내고, 부당한 대우를 통해 착취해서 나온 것이라면, 어떻게 눈 감은 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우리 가족’만의 화목한 일상을 꿈꾸고,‘한국인’에게만 평등한 한국 사회를 꿈꾸는 것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몰염치한 환상이다.
최소한의 양심으로, 아니 제발, 시한폭탄 같은 죽음의 행진을 중단하고 안전하고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최소한 실태파악이라도 시작하자. 가벼운 목숨이 어디 있는가.
(경인일보에 기고한 글 중 내용의 일부를 새롭게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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