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링크업은/링크업이모저모

우리, 부자가 된 것 같아요~

by 아연대 2011. 3. 25.







 

장학금을 나누는 21번 가족 보셀 씨 댁입니다.

네팔 바그룽에 사는 이 가족의 아버지인 단 바하두르 보셀 씨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07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주변 친척에게 돈을 얻어 사우디아라비아에 갈 비용을 마련했는데
그걸 다 갚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나셨네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요?
글쎄요...가족들에게 전해진 소식은 그저 사망한 채 방에 누워 있는 것을
누군가 발견했더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있을 때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강도높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니 그것을 몸이 견디지 못해 급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주노동의 슬픈 단면입니다.

그렇게 가장이 떠나가시고
지금은 여섯 식구가 남았습니다.
어머니와 큰딸 바툴리, 둘째딸 서로서티, 셋째딸 니루, 넷째인 아들 아데스, 다섯째인 아들 소데스...

큰딸인 바툴리는 작년에 결혼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몸이 아픈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두고 떠나느라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둘째딸인 서로서티가 벌어오는 돈으로 온 식구가 먹고 삽니다.
둘째는 학교 문턱에도 안 갔다네요.
둘째 이름인 서로서티는 힌두교 지혜의 여신 이름인데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학교는 죽어라 싫어 한답니다.
서로서티는 건설현장에서 일당 일을 합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까지 꼬박 일하고 나면 200루피를 번대요.
학교가 쉬는 토요일이면 열일곱살인 니루도 언니를 따라 나섭니다.
둘이 같이 돌도 옮기고, 모래도 곱게 치고, 시멘트 반죽해서 접시에 담아 날라 돈을 법니다.
그 돈으로 동생들 밥 먹이고 학교보냅니다.
서로서티와 니루 손은 마디가 굵고 시멘트 벽돌처럼 거칠어졌습니다.

어머니인 코필라 씨는 어려서부터 힘겨운 노동에 시달린 탓에 건강이 무척 안 좋습니다.
어린 딸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도 한스럽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집이 바로 길가에 붙어 있는 덕분에 작은 구멍가게를 차렸는데
워낙 가진 돈이 없으니 물건을 많이 들여놓을 수도 없거니와
라면이니 과자니 하는 것들은 배고픈 아이들이 다 집어먹어 남아나질 않습니다.

2010년, 보셀 씨 가족에게 보내드린 돈은 매달 1,000루피(약 17,000원) 입니다.

2011년 3월,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가족이 수입을 좀 더 높일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텅텅 비어있는 가게를 물건으로 채워드리고
그 물건을 팔아 생기는 수입으로 생활하며 매일매일 적은 돈이라도 저축하도록 하면 어떨까...
가족들은 그 제안을 기뻐하며 받아들이고 열심히 장사해 보겠다고 합니다.
매일 저축 목표액은 100루피(1,700원) 입니다.

3월 23일, 20,000루피(340,000원)를 지원하여 가게에 물건을 들였습니다.
본래 계획은 한번에 30,000루피 어치 물건을 지원하는 것이었지만
가족들이 요청하여 2차례로 나누어 드리게 된 것입니다.
나머지 10,000루피는 장사를 좀 더 해 보고 나중에 필요하면 받겠답니다. 

AHRCDF 바그룽 지부 회원들은
물건을 사다 진열하는 것을 돕고
인근 관공서에 소소한 물품을 살 때는 보셀 씨 가게를 이용해 달라고 요청해 두기도 했습니다.

어린 아데스와 소데스도 먹고싶은 유혹을 견디고 참겠다고 약속합니다. 
새로운 희망이 생기니 오랜만에 웃음꽃이 함박 피어납니다. 

서로서티와 니루는 여전히 공사현장에 어린 몸을 던지고 있지만,
한국에 엄청난 빽이 생겼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씨~익 물립니다. 




           텅 빈 보셀 씨네 가게, 벽에는 아버지 사진이 붙어있네... (2010년 12월)




         AHRCDF 바그룽 지부 회원들과 보셀 씨네 4남매... (2010년 12월)


         의젓하게 가게를 지키는 아데스와 소데스... (2011년 3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