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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한국일보 <네팔 장학사업 소개>

by 아연대 2011. 3. 15.

연합뉴스 
<숨진 이주노동자 자녀 장학사업 4년째 펼쳐>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네팔장학사업' 진행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네팔 카트만두에 사는 얼쩌나(14)양과 비쌀(12)군은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지난해엔 아버지의 사고 보상금으로 지은 집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들 남매의 아버지 찬드라 라이(사고 당시 36)씨는 2005년 8월 경기도 양주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중 도로에 쌓여 있는 철제 빔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사고 현장은 새 도로를 건설하던 곳이었지만 아무런 출입 통제 표지판도 설치하지 않았다. 고향에서 농사로 먹고 살기 어려워 수도인 카트만두로 왔다가 다시 돈을 벌고자 2001년 한국으로 이주노동한 라이씨의 '코리안 드림'은 4년 만에 물거품이 됐다.



문제는 유가족이었다. 가정 살림을 남편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아내 엄비까(34)씨는 남편의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이하 아시아연대)는 라이씨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서 장례부터 사고 관련 소송에 이르기까지 유가족을 도왔다.

이 단체의 이란주 대표는 그러나 사고 수습 과정에서 가족을 만나고 돌아오는 발길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죽음을 아직 실감하지 못한 남매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다.

이 대표는 "엄마는 어쩔 줄 몰라 울고 있는데, 아이들은 우리가 준비해간 선물에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며 "이 아이들을 장기적으로 도울 길을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시아연대는 이후 2006년 7월부터 10월까지 한국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삶을 엮은 '보고서: 꿈 그리고 악몽'을 발간한 뒤 본격적으로 사망 외국인노동자의 자녀 장학사업에 나섰다.

처음엔 한국에서 일하다 숨진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돕다가 나중에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이주노동하다 숨진 노동자의 가족들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본국에 돌아간 네팔 출신 외국인노동자들이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AHRCDF)을 만들어 아시아연대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들이 한국보다 중동과 같은 지역에서 숨진 노동자들의 유가족들이 더 열악한 삶을 살고 있다고 알려와서다.

현재는 네팔 각 지역에 퍼진 AHRCDF 지역모임 회원들이 라이씨 가족처럼 딱한 사정이 있는 가족들의 사연을 카트만두 AHRCDF 사무소에 연락해오면, AHRCDF가 현지 실사 후 아시아연대와 논의해 지원여부를 결정한다.

지원 대상으로 결정되면 유가족 자녀는 사고 당시 재학 중인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학비를 받는다.

아시아연대는 대학 학비까지 지원하는데, 대학 등록금은 전액이 아니고 유가족의 생활형편에 따라 부분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연대는 지난해 말 현재 25가정 52명에게 모두 27만7천350루피(한화 470만원)를 장학금 명목으로 지원했다.

장학금은 온라인 사이트 해피빈(happylog.naver.com/asiansori.do)와 오프라인을 통해 후원금을 받아 마련하고 있다.

이란주 대표는 "숨진 외국인노동자의 자녀를 돕는 것은 이주로 인해 발생한 문제와 그에 따른 아픔을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이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큰 금액이 아니어서 좀 더 지원금을 늘릴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2011/03/15   연합/구정모 기자 pseudojm@yna.co.kr





한국일보

<"한국인들 도움의 손길에 희망 생겼어요">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숨진 이주노동자 가족들 생계비 지원

"애들 아빠를 잃고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는데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희망이 생겼어요."

네팔 카트만두에 사는 엄비까(34)씨는 몇 해전 남편을 잃었다. 남편 찬드라 라이(사고 당시 36세)씨는 2001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건너왔다. 네팔에 두고 온 가족에게 돌아갈 날만을 손꼽으며 밤낮없이 일했지만 2005년 8월 경기 양주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중 막다른 도로에 쌓여 있는 철제 구조물을 받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 현장은 새 도로를 건설 중이었지만 아무런 출입통제 표지판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가족들은 비행기삯이 없어 한국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엄비까씨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에 전적으로 의지해왔던 터라 당장 먹고 사는 게 막막했다. 라이씨 가족의 딱한 소식을 접한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장례부터 도로 공사를 했던 업체를 상대로 한 소송까지 도맡았다.

"소송에 필요한 위임장 때문에 직접 네팔로 찾아갔다"는 이 단체 이란주 대표는 "아빠가 죽은 줄도 모르고, 멀리서 온 손님이라며 마냥 반가워하기만 하던 어린 두 남매를 보면서 지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가족이 한달 동안 먹고 입고 학교를 다니는데 필요한 생활비는 2,500루피, 한화로는 4만5,000원이면 됩니다. 한국선 가족 외식 한번 참으면 되는 돈이죠." 이 단체의 도움으로 라이씨의 두 남매는 다행히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라이씨 가족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일하다 숨진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에 착수했다. 최근에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사망한 제3세계 이주노동자 자녀에게까지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2006년 사우디아라비아로 일을 하러 간 남편을 잃은 네팔의 부마다르지씨도 이 단체로부터 최근 지원을 받고 염소 5마리를 구입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네팔에서 지원을 받은 이주노동자 가족은 25가정 52명으로 27만7,350루피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우리 돈으로 치면 470만원에 불과하지만 이들에게는 생명줄이다.

이 대표는 "사고나 과중한 업무로 인한 심장마비 때문에 사망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며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이들의 가족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1-03-15   한국일보/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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