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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음속에 공존과 평화의가치를 심어요

지환.성호.휘영.영무.승범의 [아빠 제발 잡히지마] 서평

by 아연대 2011. 11. 8.




보인고 1학년인 지환.성호.휘영.영무.승범의 서평을 소개합니다.

부천에서 이주민영화제를 하던 지난 10월 30일, 다섯 친구가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무엇이든 흥미로울 나이, 열일곱.
그런 열일곱 친구들의 서평이... 왠지 무척 아프군요.




지.환.
올챙이를 잊은 개구리에게


요즘에는 길거리에서 외국인들은 비교적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들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존재로 인식한다. 그리고 외국인을 대하는 선입관도 따라서 생겨났다. 우리보다 좀 더 하얀 피부를 가진 외국인에게는 대체로 좋은 대우를 해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보다 좋은 나라에서 왔으니까. 그리고 우리와 같은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들을 보며 신기해한다. 대체로 좋은 의미로 신기함을 느끼는 것일 거다. 마지막으로 우리보다 좀 더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외국인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꺼림칙함’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후줄근한 작업복 차림에 며칠 감지 않은 것 같은 곱실거리는 머리에 기름때가 선명한 초록색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뭔가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서있다. 이것이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동남아시아에서 우리나라로 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도 그런 이미지가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으리라. 나는 그런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조가 외국인 노동자를 주제로 하는 책을 선택한 것이 좋지만은 않았다.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나는 한국에 오려는 외국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조금 매정해 보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말해서 그들이 한국에 오는 것을 막고 싶다.

[ ‘고향에 돌아오면 내가 송금해둔 돈으로 조그만 가게를 하나 열어야지. 이제는 혼자 떨어져 나와 고생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나 고향에 도착해서 그 꿈이 허망했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송금한 돈은 벌써 바닥나 있고 자신은 빈털터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미 돈을 쓰는데 익숙해져있는 가족들이 은근히 자신을 밀어내며 다시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 보내기를 바란다는 것도 그때서야 깨닫게 되지요……. ]

이주 노동자들은 대부분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다. 한국에서 몇 년 바짝 일해서 돈을 벌고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지내길 소망한다. 하지만 일이 년은 한국에 오면서 생긴 빚을 갚는데 써야 하고, 그 후에는 하루에 12시간씩 살인적인 노동을 하며 월 100만원씩 겨우 번다. 그 돈 중 최소한 생활에 필요한 돈을 제외하고는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다. 이중 반 이상은 힘든 노동을 하다가 다치게 된다. 그렇게 병원비를 지불하게 되면 또 빈털터리가 된다.

어쩌다가, 악덕 고용주를 만나게 되면 몇 개월 주말 반납하며 힘들게 일 해온 수당을 못 받게 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비자는 만료가 된다. 하지만 벌어놓은 것이 없어서 고향에 가질 못한다. 그렇게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불법노동자가 되면 한국에서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더욱 천대받고, 그나마 있던 권리마저 사라진다. 한국에서 한번 벌어보려다가 한국의 차가움에 따끔하게 데이고 빈손으로 그들의 고향으로 떠나게 된다.

어찌어찌해서 그들의 고향에 왔지만 그는 그의 가족과 행복할 수 있을까? 이미 아버지가 가장 필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5년, 길게는 10년을 멀리 떨어져 있었을 자녀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실제로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마약이나 술에 빠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아버지가 없어서 비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비뚤어진 자녀에게 십년 만에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사춘기의 자녀들은 더욱 반감을 느낄 것이 뻔하다. 그렇게 가정은 분열 되고 만다.

정말 잔인하다.

이 부분이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이다. 저 부분을 읽으며 한 이주노동자의 인생이 한국에서의 노동으로 어떤 영향을 받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면서 정말 치를 떨었다. 정말 잔인한 한국이구나. 우리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가정을, 인생을 망가뜨려놨구나. 이런 식의 대우를 할 것이라면 차라리 노동자를 들이지 말 것이지…… 이기적인 한국의 제도에 치를 떨었다.

행복해 지려 왔다가 평생 동안 불행하게 살게 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올챙이를 짓밟은 개구리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제도’라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껍질은 외국인들에게 산업기술을 연수시켜주겠다는 취지지만, 실상 알맹이는 연수생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노동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게 만들고, 가혹하게 착취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에 속아서 피눈물 흘린 노동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 잔인한 제도에 희생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증오심만 남기고 고국으로 떠나게 된다. 이렇게 돼서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그렇게 많은 노동자들에게 아픔만 주고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썩어빠진 제도를 빨리 없애야 한다. 우리는 이제 생각해봐야한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가? 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이제 묵인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말 바뀌어야한다.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도 개발도상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사실 아직도 완전히 개발도상국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때 그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도 돈을 벌기 위해 일본, 미국에 이민을 갔다. 그런 시절을 겪고, 그 아픔을 아는 우리인데 어찌 보면 우리가 왔던 길을 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격려는 못할망정 핍박을 주고 왜 그들에게서 수탈하려하는가? 우리나라지만 정말 못됐다.

한 나라가 어엿한 노동자를 양성해내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렇게 힘들게 배출한 인재를 우리나라에 보내줬으면 그 나라에 보답을 해줘도 모자랄 판국에 우리는 그 나라에서 온 노동자를 우습게보고 착취하고 있다. 단물만 쪽 빼먹는다는 게 이런 걸까.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괜히 이주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기나라 사람이 외국에 가서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그 나라 사람들은 분명히 분노할 것이다.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동남아시아 쪽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결코 그들을 무시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우리는 이미 개구리가 되어서 올챙잇적 시절을 잊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개구리가 되려는 올챙이를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 것인 걸까. 우리는 다시 기억해내야 한다. 그리고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올챙이들이 멋진 개구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행복과 잔인한 현실과의 불편한 거리감

[이번 추석에는 외국인 며느리들이 단연 인기였다. 방송에는 외국인 여자들이 한복을 입고 나와 토크쇼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요리강좌에서 솜씨 좋게 송편을 빚어 내놓고, 논밭이 황금색인 시골가정에서 차례음식을 준비했다. 주로 베트남, 필리핀 출신 며느리들이 많았는데 모두들 행복한 모습이었다. ‘저 여자들은 정말 행복한가?’ 제이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외국인 며느리들이 나오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텔레비전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정말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한국이 너무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우리가 단편적인 것만 보는 것은 아닐까? 일단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 여성들의 상당수가 ‘원치 않는’ 결혼을 치렀다. 돈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고향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와야만 했다, 말도 안통하고 음식도, 문화도 맞지 않는 한국으로.

그런 상황 속에서도 좋은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큰 행운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농촌의 어느 아저씨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그리고 사랑받지도 못하고서 아이를 기르며 여생을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살아야 할 것이다. 아이를 낳아도 문제가 된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를 곱게 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은 아직 별로 없다. 아이는 피부가 조금 검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놀림을 받게 될 것이고 어린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도 양호하다면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가끔 이런 기사를 본다. ‘20대 베트남 여성, 40대 술 취한 남편에게 흉기에 찔려 사망’ 정말 치가 떨린다. 이런 극단적인 사건들 말고도, 우리나라에 시집을 온 동남아계 외국인 여성들이 학대를 당했다는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사건들이 이슈가 되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혐한(嫌韓)기류가 흐르게 됐다. 이런 일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죽임을 당한 여성들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리고 학대하고 살인까지 저지른 짐승만도 못한 사람을 생각하면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동남 아시아계 외국인 여성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같은 외국인인데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더욱 박하게 대접받고, 더욱 안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런 사회풍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언제부터 이렇게 비겁한 생각이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졌을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꾸며진 영상과 우리사회의 분위기에는 불편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불편할 뿐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외국인이었던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 2달 동안 어학연수를 갔을 때였다. 외국인 이였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어학연수 과정 이였지만, 어린 나이였기에 부모님과 떨어져 보내는 시간은 낯설고 불편했다. 나는 그곳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모르는 사람과 두 달을 같이 사려니 막막했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고, 자신감이 없어서 먼저 다가가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홈스테이 부모님들은 나에게 정말 잘해주셨다. 매일 맛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주셨고,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셨다. 그 따뜻함 덕분에 나는 자신감이 생겼고, 두 달이란 짧은 시간동안 그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외국인이 되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그리고 또 알고 있었다. 외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눈길과 격려라는 것을…….

나는 내 자신에게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서 저절로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 저 사람은 씻고나 다닐까? 가까이 안 왔으면 좋겠다.’

순간이었다. 한 순간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외국인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느껴봤던 나였기에 더욱 더 나에게 실망을 했다. 나는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간 것이었지만, 그 사람들은 모든 걸 걸고 한국에 온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부끄러워졌다. 먼 타지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각으로나마 엄청난 실례를 범한 것이다.

내가 철이 없었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내가 했던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만두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외국인을 바라보면 냉소적인 표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 표정에 분명 외국인은 더 움츠러들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눈길뿐이다. 혹여 길가다가 외국인을 본다면, 그들의 피부색에 상관없이 따뜻한 눈길을 주자. 별거 아닌 것같이 보일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분명히 커다란 감동일 것이고 더 나아가 그것이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될지도 모르니까.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책을 쓴다는 것은…….

나는 ‘아빠, 제발 잡히지 마’를 읽으며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의 화려한 솜씨나 기교에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기술적인 면에서는 고등학생인 내가 봐도 시중에 나오는 작가들의 책과 비교해서 그리 잘 쓴 글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왠지 요 대목은 빼고 싶군요... 간신히 참는 모습 보이시죠??...^^)

하지만 화려한 글 솜씨나 기교 대신, 담백하고 사실적으로 쓰인 문체 덕분에 내 마음속에 좀 더 깊이 와 닿았다. 글을 읽으며, 이란주 저자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사무소를 세우고 그들을 위해 싸워온 11년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이주노동자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책이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옳은 생각을 갖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성.호.
우리나라에서는 소고기 안 먹어요.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너무 안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도 단지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서 돈을 벌러왔는데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괜히 돈도 늦게 주거나 안 줘가면서 고된 일은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시킨다. 그뿐 아니라 단속반에서도 이리저리 수색하여 이주노동자들을 강제추방을 시킨다. 이주노동자들은 말한다. 죽음보다 강제추방이 무섭다고, 많은 돈을 주고 왔는데 빈털터리로 가면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그런 불쌍한 점을 이용해 한국 사람들은 신고한다고 협박을 하며 살인적인 노동을 시킨다. 사람들은 툭하면 "인권침해야 이건!" 이라고 하면서 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무참히 짓밟아 버릴까? 방글라데시는 농사를 도와준 소에게 고마움을 느껴서 잡아먹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말이다. 난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그들의 마음에는 큰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아빠, 난 이곳에 있고 싶어.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아버지 혼자서 한국으로 넘어와 일을 한다. 하지만 한국으로 가족들이 단체로 오는 경우가 있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아이들과 지낸다. 이 아이들은 한국어를 계속 쓰다 보니 자기나라의 언어보다 한국어를 더 편하게 느낀다. 그러나 4년이라는 비자가 끝나면 단속반이 추방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의 일이 문제다. 많은 이주노동자 부모들은 힘들게 아이가 한국에 적응했는데 다시 모국으로 돌아가면 이도저도 못할까봐 걱정된다고 한다. 더군다나 아이는 한국이 좋다고 하지만 한국은 그런 이주노동자들을 주변인으로 취급하며 쫓아내려고만 한다. 자크라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크는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하필 그때 비자가 끝나서 출국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자크가 중학교에 입학하려면 불법체류자가 되는 길밖에는 없다. 아이들은 단속이 거의 심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부모가 잡히는 경우에는 심각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떨어지는 상황 말이다. 자크네 가족은 이미 한번 잡힌 적이 있었다. 자진 출국한다는 각서와 6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보증금으로 납부하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자크는 말했다. "저는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데, 3월에 2품 심사 보는데 2월에 떠나면 볼 수가 없어요. 15일만 비자를 더 주세요."라고 했지만 매정한 우리나라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누가 봐도 이러한 현실이 안타깝고 또 우리나라에게 실망을 느낄 것이다.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아이들에게도 소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주 소박하다. 단지 한국에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한 가지다. 한국의 이기적인 노동력 관리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은 언제쯤 고쳐질 수 있으며 언제쯤 이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난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힘들어하는 점은 아무래도 돈 문제이다. 약아빠진 우리 한국 사람들이 살인적인 노동을 시키고 돈을 매우 조금 주거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돈을 떼먹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주노동자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화가 나서 따지지만 한국인 회사직원들이 단체로 욕을 하면서 출입국에 넘겨버린다고 협박까지 하고 만다. 나도 한국 사람이라 한국사람 편을 자주 들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한국사람편을 들고 싶지 않다. 아주 파렴치한 인간들 같다. 비슷한 내용을 겪은 타릭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회사에서 3년 가까이 성실히 일 해온 타릭씨에게는 97만원을 주지만, 새로 들어온 노동자에게는 113만원을 주게 된다. 타릭씨는 회사에 요구를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자존심이 구겨져 회사를 때려치우게 되는데 이때 사람이라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회사는 퇴직금마저도 주지 않았다. 타릭씨는 노동부에 연락해서 도움을 청하지만 노동부에서 만난 그 회사부장은 억울한 표정을 지며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며 퇴직금을 안 주려든다. 퇴직금이 300만원이라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300만원이 그렇게 큰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300만원을 안주기 위해 타릭씨가 911테러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허구를 내뱉으면서까지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회사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한 이주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보내주긴 커녕 짐승 대하듯이 쫓아낸다. 정말 이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 아닐까? 이런 불쌍한 이주노동자들은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며 먼 길을 헤맨다. 심지어 운이 나쁘면 1년이 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단지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려는 이주노동자들을 좋은 시선으로 봐줬으면 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퇴직금이 쥐어지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잠시나마 마음을 비우세요.

지금까지는 한국 사람의 안 좋은 면만 소개가 됐었는데 몇몇 파렴치한 인간들 빼고는 대한민국에는 마음씨 좋은 어른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는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이자 이 책을 쓴 작가 이란주씨 께서는 이주노동자들의 아픔을 알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회사뿐만 아니라 단속반의 단속과정에서도 인권침해는 너무 심했다. 가스총과 그물총이 쓰인데다가 곤봉으로 얻어맞기까지하며 몇몇 여린 마음을 지닌 이주노동자들은 단속반에 침입에 놀라 심장마비로 죽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신입 노동자들은 비자가 많이 남아서 행복하게 잘 일하고 있을까? 아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있으면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당하고만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에게 소통의 끈을 쥐어 주기 위해 작가 이란주씨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꼬마도서관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이런 위대한 사람들에 대해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런 자선활동을 해도 누가 알아주고 그런 것도 아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하는 이런 사람들이 매우 존경스럽다. 나름 착한 마음씨를 지닌 나에게도 이런 자선활동을 해보라고 한다면 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이번 독서활동에 외교 역할을 맡았는데, 이런 착한 마음씨를 지닌 사람과 약속을 잡는다니 영광이다. 왠지 인터뷰 약속도 흔쾌히 받아주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란주씨는 꼬마도서관을 열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13개 나라, 6000여권의 책을 얻어서 꼬마도서관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꼬마도서관이 더 사랑받기 위해 책 후원운동까지 펼치게 된다. 나도 집에 이주노동자 출신국의 책이 있다면 이 꼬마도서관에 도움을 주고 싶다. 또, 이란주씨 뿐만 아니라 전국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와 14개나라 공동체 그리고 문화관광부가 물주가 된 축제인 '이주민 아리랑'을 열었다. 오랜만에 이주노동자들은 긴장과 불안함이 아닌 자유와 평화를 느끼며 즐겼다. 이주노동자들은 처음에는 불법체류자라는 호칭이 붙어 다니기 때문에 축제를 준비할 때도 숨어 지내며 출입조차도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란주씨의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그들은 용기를 내어 축제에 참여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국가와 인종을 뛰어넘어서 형재애가 무르익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고향나라에서 가졌던 편하고 즐거웠던 웃음을 되찾게하는것이 목표였던 이란주씨의 계획은 성공한 것이다. 정말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웃음이 아니라 축제때 그 편안하고 즐거운 웃음이 오래오래 갈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시선은 달라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아까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이주노동자들의 대표적인 문제는 아까 말했듯이 돈 문제, 강제추방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다. 단속과 강제추방이 엄청난 부담감으로 목을 죄어오기 때문이다. 강제추방 당하면 한국에 오기위해 많은 돈을 주고 온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어지기 때문에 설상가상 지금 이주노동자의 상황은 돈을 벌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죽음이라는 안타까운 길을 택하게 된다. 위차론이라는 이주노동자는 어느날 싸늘한 죽음을 맞이했다. 자살인 것처럼 보이는 이 죽음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자살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에게는 스무 살 넘긴 아들이 있는데 그의 아들은 두 주먹을 너무 슬퍼 불끈 쥐는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배일정도 이었다는데 정말 누가 봐도 안쓰러운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슬픈 상황이 채 지나기도 전에 또다시 죽음의 소식이 들려왔다. 내용은 이랬다. 2층짜리 기숙사에 있었는데 단속반이 갑자기 들이치는 바람에 강제추방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그는 창문으로 뛰어내리다가 사망을 한 것이다. 또 슬픈 것은 동료들은 매우 슬퍼했지만 찾아갈 수가 없다. 불똥이 혹시 잘못 튄다면 다른 이주노동자까지도 강제로 출입국에 끌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들도 거친 노동 속에서 힘들지만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참고 참으며 일하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인이 싫어하는 일들 거의 다 이주노동자들이 다 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발전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고기를 안 먹어요." 그 말인즉, 농사지을 때 소가 많이 도와주기 때문에 그것에 감사함을 느껴 소고기를 안 먹는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사람이지만 소보다도 열심히 일해서 한국경제를 조금이나마 올려줬지만 이들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사람이라는 인격체에게는 감사한 마음이라도 표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무조건 나가라면서 강제로 잡아서 보내겠다는 생각보다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길 바란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한테만 그러는 줄 알았어?!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본성이 악한 것일까?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일어나는 줄 알았던 이런 살인적인 노동과 인권을 짓밟아버리는 일이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S방송사의 한 프로그램 긴급출동 SOS24에서 한 이야기를 소개해주었는데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인은 못먹은듯이 힘도 없어 보이며 몇 개월은 안씻은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농장의 젊은 주인은 노인은 잘 보살피고 있다며 안심하라고 했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자 충격적인 모습이 보였다. 그 노인은 하루에 12시간이 넘게 고된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밥이라도 든든히 먹고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못된 젊은 주인은 반찬은 음식물쓰레기통에서 대충 주워서 반찬을 주고 밥도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곰팡이 밥을 주었다. 게다가 씻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 노인은 건강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SOS24스태프들이 이렇게 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월급을 안주냐면서 노인과 함께 따졌으나 돌아오는 것은 욕이었다. 심지어 젊은이가 노인을 폭행하려 들었다. 노인은 아무 말 못하며 다시 묵묵히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 같으면 그 젊은 주인을 흠씬 패주고 싶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긴 하지만 인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것 같다. 이 젊은 주인도 공부를 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즉, 우리나라는 교육열만 높을 뿐이지 진정한 사람 되는 교육은 받지 않은 것이다. '노인을 공경해라' 라는 말은 가슴에 새겨두어야 하는 말이지만 단지 시험을 보기위해 잠시 외웠다가 까먹기만 하니까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육열을 높이기전에 먼저 사람되는 교육을 했으면 한다. 이런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기 전에 말이다.


이젠 생각을 바꾸어야 할때

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흥부와 놀부가 떠오르지 않는가? 흥부 역할은 이주노동자가 놀부 역할은 악한 한국 고용주가 맡으면 정말 비슷한 것 같다. 놀부가 돈이 많던 시절에는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한 흥부에게는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밥한 끼도 안 주며 매정하게 쫓아낸다.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보라. 아이들도 흥부가 불쌍하다고 느낄 것이다. 단지 교훈을 주기위해 만든 이야기의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니 그게 더욱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단속반도 약간의 정도 없이 인권은 밟아버리면서 까지 강제로 출입국에 넘긴다. 이러한 한국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나도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 같다. 나는 흥부와 놀부의 결말처럼 되었으면 한다. 흥부 또는 이주노동자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큰 보상을 받고 놀부 또는 악한 한국 고용주들은 벌을 받았으면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일자리를 축내러 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빚을 져가면서 한국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환영해주며 일반사람들과 동등하게 대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다른 나라는 농사를 도와준 소가 고마워서 안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우리나라는 이주노동자들을 짐승보다 못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쫓아내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좋은 시선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교육열이 높은 것은 좋으나 사람 되는 교육을 먼저 했으면 좋겠으며 정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한국사람들이 더욱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휘.영.
너희가 우리랑 같다고?



인심 좋다는 한국?

내가 여태 알았던 한국은 대부분이 인심 좋고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서 내가 사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 외국인들에게 대하는 사회를 보고 실망감이 컸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라고 사람 취급 해주지 않는 회사들도 무수히 많고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도리도 이주노동자들에겐 지키지 않고 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놀리는 것일까. 그리고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법들이 대부분 인정사정 보지 않고 불법체류자들을 강제 출국시킨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 중 분명 어쩔 수 없이 장기간 불법체류를 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는데 다짜고짜 출국시키는 것도 문제 인 듯하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이주노동자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이미지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우리는 가족과 안살아?

우리도 분명 한국에서 가족과 같이 산다. 사람들 중 가족과 떨어져 살고 싶은 사람은 절대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으로 인해 가족과 살 수 없는 상황이 온 사람들도 있다.

『뭉크의 소망』 이야기 안에서 뭉크 가족은 뭉크 아빠가 임금을 못 받은 상황에서 미등록 노동자 합법화 조치 때 체류 기간이 3년 미만이었던 뭉크와 뭉크 엄마는 비자를 받아 합법적인 자격을 얻게 되었지만 뭉크 아빠는 비자를 받지 못했다. 그 뒤로 가족들은 늘 가슴 졸이고 살고 있다. 일단 온 가족이 한국으로 오는데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였으니 아빠가 추방당했다고 해서 모두가 아빠를 따라 몽골로 돌아가지도 못해 엄마라도 남아서 돈을 벌어야 했다. 게다가 이 법은 노동하는 이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만약 부모의 체류 기간이 3~4년에 해당해서 출국했다가 재입국해야만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경우, 아이를 동반해서 출국할 수는 있지만 재입국할 때는 데리고 나간 아이를 다시 데려올 수 없도록 했다. 그래서 부모가 ‘불법’이든 아이들이 ‘불법’이든 가혹하다. 이 아이들의 꿈은 나중에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을 우리나라에서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가 속 좁은 나라이었던 걸까?

우리도 가족과 함께 살고 이사를 갈 땐 다 같이 가서 산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고용허가제 법으로 인해 부모와 아이가 출국을 하면 다시는 같이 살 수 없게 된다. 고용허가제를 시행할 때 이주노동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주노동자들도 가족과 살아야 한다. 게다가 어린 아이가 딴 나라에서 혼자서 자랄 수 없다. 일하러 한국에 올 때 데려오는 수밖에 없는데 왜 인정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얼른 이 고용허가제가 수정되어 아이도 합법적인 받아 한국에서 같이 살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소 안 먹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소고기 안 먹어요』에서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중에서 4년 미만 체류자만 합법화하고 4년 이상 체류자는 출국하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떠나고 어떤 분은 스스로 생을 접었다는 소식까지 있다.

여기서 농성을 하는 한 불법체류자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고기를 안 먹어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구요, 우리나라는 농사 많이 짓거든요, 농사지을 때 소가 정말 많이 도와주죠. 그래서 소는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비자는 없지만 그동안 한국 사람들 싫어하는 일, 우리가 다 했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짐승보다도 못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무조건 나가라, 안 나가면 잡아서 보내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거예요”

이 말은 나의 뇌리에 확실히 박히고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도 과거 몇 십 년 전에는 농사지을 때 소를 사용했다. 우리나라는 좀 다르게 소를 먹었지만 농사짓는 사람들 중 그 소를 먹은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소중한 일꾼인 소를 아끼며 보호하며 살았을 텐데 이주노동자들 또한 소중한 일꾼인데도 매몰차게 쫓아내는 건 잘못된 것 같다. 게다가 우리 한국인들은 편하게 살고 싶어 해서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없다. 만약 이주노동자들을 이렇게 계속 쫓아내면 소중한 인력 또한 없어질 것이다. 아니면 우리들이 이 힘든 일을 하면 될 것인데 그렇게도 안 되니 이주노동자들을 제발 한국에서 편히 살게 해서 한국을 좋은 나라로 인식하게 했으면 좋겠다.


퇴직금은 한국인만 받는 것?

이 책을 보고 제일 황당했던 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퇴직금을 주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고 당당하던 회사들이 결국엔 발뺌을 해서라도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퇴직금 소동』은 퇴직금을 받으려는 외국인 근로자 이야기이다. 타릭 씨는 3년 가까이 일한 회사를 그만두었다.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한 타릭 씨는 회사에 퇴직금을 요구했지만 사장은 “이 또라이 같은 놈아, 무슨 퇴직금?” 이라고 말하고 게다가 “야, 꼴 보기 싫어. 꺼져. 퇴직금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야, 차 부장, 얘 봐라. 얘가 퇴직금 달랜다” 하더니 부장은 “뭐? 외국인도 퇴직금 주냐?” 하더란다. 결국엔 노동부까지 넘겼더니 회사는 거짓말까지 하고 출입국으로 넘겨버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엔 퇴직금을 지불하고 회사 내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신뢰를 잃어 나가는 근로자들도 많았다.

여기서 외국인 근로자는 이 회사에서 3년이나 일했던 증거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만 이 회사는 고작 300만원인 퇴직금을 주기 싫어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협박을 하고 오리발까지 내민다. 이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 해도 되는 짓이라도 생각하는 것일까? 2000년 3월에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판례가 나왔다. 하지만 노동부가 이 판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를 상대로 일일이 소송을 해서 퇴직금을 받는 근로자들이 늘어났고 회사 내에서도 퇴직금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모두 나오려고 했다. 진작 우리나라 회사들이 근로자들에게 퇴직금을 주면 될 것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고 얕잡아보며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하는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저런 사람들이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수치스러울 정도이다.

왜 한국인과 외국인이 다르다고 생각할까? 물론 피부색과 외형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생각을 가지고 각자 목표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외형이 다르다고 무시하고 사람이 지켜야할 기본을 왜 안 지키고 살아가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출신 ㅈ씨는 2009년 7월에 입국했다. 그가 입국 전 회사와 맺은 계약서엔 ‘중식 제공’이라고 적혀 있었다. 근로 계약 위반이라고 판단한 그는 회사의 계약 연장을 거부했다. 결국 그는 1년이 되기 닷새 전에 ‘해고’ 되었다. 그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편법을 동원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런 사례가 있다는 게 참 마음이 아프다. 대체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나와야 이런 사례가 일어나지 않을까 한다.

우리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르다는 편견 따위 버리고 외국인 근로자들한테도 퇴직금을 자연스럽게 주는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고 다시는 퇴직금을 주지 않아 논란이 되는 신문 기사 거리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한국 남자들한테 꼬리를 친다고?

『성희롱도 한국식?』에서 카자흐스탄에서 온 여성 연수생이었다. 그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남성 한국인들에게 자주 술자리로 끌려갔다. 거절하면 ‘한국식’이 아니라며 강제로 끌고 갔다. 오히려 회사엔 ‘연수생들이 술이나 마시고 남자들에게 꼬리 친다!“ 라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입장이 더 곤란하게 되었다. 후에 그는 결혼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데 송별회라며 그를 끌고 가더니 성추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여태까지 수치심을 느끼며 결혼식이 두려워진다고 한다.

대체 한국 남성들 대체 왜 이럴까?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여자라고 마음대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책이 나한테는 한국인을 다시 보게 하는 것 같다. 외국인 여자도 성추행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외국 여성이 평생 받을 정신적 충격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술자리를 거부하면 ‘한국식’이라고 강제로 끌고 가는 우리 사회도 잘못 되었고 성추행 한 남성 한국인도 더욱이 잘못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12.5%가 이와 비슷한 성희롱을 경험했고, 그중 48.9%가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그냥 참았다’고 한다.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안타깝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한국인이 이러면 안 되는데!

난 한국인들이 이렇게 외국인한테 가혹하게 하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아주 극소수의 노동자들에게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 뉴스에 나오는 줄 알고 지냈었지만 이 책을 보니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처음엔 불법체류자들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강제로 추방하질 않나, 소중한 인력인 외국인 근로자들을 짐승보다 못하게 대하질 않나, 외국인이라고 퇴직금을 안 주려고 협박과 거짓말을 하질 않나, 한국인을 실망시키는 내용들이 너무 많다. 외국인을 고용하는 회사들도 이 책을 읽고 외국인들에게 인간에 대한 도리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안 좋은 일상의 책이 아닌 외국인이 한국에서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용의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의 이미지인 사람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그런 한국으로 거듭나길 바라고 외국인들 또한 우리나라에서 도망 다니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 글을 쓰는데 참 짧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중1부터 중3까지 판타지 소설이나 일반 소설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많이 읽는 것 뿐 아니라 책을 한번 보면 모든 것을 잠시 중단하고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집중해서 단기간에 읽는 습관이 들었다. 이 책을 딱 펼쳐서 읽는 순간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이렇게 심하게 대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이 책으로 인해 나 또한 외국인을 만나면 이 책의 나쁜 사람들과는 다르게 친절하게 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평범하고 착한 나 같은 사람도 읽으면 좋겠지만 외국인들에게 관심이 많거나 사회 봉사자나 외국인들을 고용하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필요한 책일 것이다. 회사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똑같은 사람으로서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질 거라고 믿고 외국인들이라며 인권침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뉴스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피해를 당했다는 소식이 내 눈에 보이는 일이 없어지는 날이 오면 그때 우리 ‘한국’의 이미지는 내가 원하는 예의를 갖춘 나라로 성장 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만약 내가 어른이 되거나 늙어서도 외국인들이 피해를 받고 산다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회사를 설립해 한국인과 동등한 조건과 임금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해 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지만 내가 이 책을 보고 외국인들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에는 거짓 한 점도 없다는 것에 내 모든 것을 걸 것이다. 혹시 모르지? 내가 재벌가가 돼서 돈 많이 벌지? 한 35년 뒤 그 때까지 내가 이 책과 서평을 보관해서 다시 봤을 때 상황이 지금과 같다면 내가 쓴 대로 회사를 하나 설립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마지막 바람은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해서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고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해 가진 편견과 오해를, 그것들을 내가 다 부숴버릴 거다.





영.무.
더운 여름날 창문 하나 못 여는 나라



불과 얼마 전, 한 시민 단체 홈페이지에 실려 있던 논평에서 읽었던 대목이다.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 와서 고통 받고 힘들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해주는 듯하지만, 거기까지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근로자’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만 남아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 대한민국은 강경한 대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최근 8월부터, 출입국사무소에서는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강제 추방’을 실시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국을 물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 ‘한류’, ‘동방예의지국’ 등의 키워드를 떠올린다. 이처럼, 이상적인 나라에 한껏 부푼 꿈을 안고 날아온 그들이 지금은 이렇게 더운 여름날 창문 하나 못 열고 있다. 단속이 심해지면서, 그들은 바깥출입조차 최대한 삼가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70만 명에 이르는 지금 우리는 과연 그들과 그들의 문화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생각해보았다.


임금봉투가 그들을 지배한다.

대다수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에 ‘돈’을 벌고자 들어온다. 하지만,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그들은 돈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출국을 하거나 ‘강제 추방’을 당하는 그들 대부분의 주머니는 빈털터리가 된다. 더 서러운 것은 불법체류자들이다. 그들은 기본 12~13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에, 100~120만원밖에 되지 않는 쥐꼬리 월급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물론 이는 2005년 12월 정부에서 시행한 한국에서 체류하는 모든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적용한다는 ‘근로 기준법’에 분명히 어긋나는 것이다. 근무 도중에 상해를 입거나, 다쳐도 ‘산재’로 인정받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이다. 절대 회사에서는 그들이 입은 피해는 살펴보지 않는다. 무조건, 산재가 아니라며 우기에 바쁘다. 심지어는 산재를 계속 신청하려 한다면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한다며 협박하는 회사들까지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근무환경은 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쥐꼬리만 한 임금이라도 받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일에 종사한다.

책의 부분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이 하나 있었다. 바로 ‘퇴직금’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 ‘이란주’씨 또한, 이 문제에 관심이 많으셔서, 종종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신다. 노동의 대가는 ‘임금 봉투’를 받는 것만으로 끝나는 줄 알았던 그들에게 이제는 ‘퇴직금’이라는 새로운 ‘희망 봉투’를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부푼다. 3년 가까이 일 해온 회사와 임금 문제로 등을 지고 회사를 나온 ‘타릭’씨는 ‘퇴직금’이라는 연금을 알게 되고 회사에 이를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회사에서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국인은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중 약 10%만이 적은 퇴직금을 받는다. 퇴직금이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비자가 3,4년을 전후해서 끝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현 정책상 그들이 비자를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비자를 새로 발급받는 방법만이 있는데, 이 또한. 재입국을 통해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재입국을 시도하여 ‘이상적인’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매우 적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그들의 임금봉투는 얇아진다. 회사의 횡포가 날로 심해져도, 어쩔 수 없는 그들이고, 고국으로 돌아가려 해도 정작 비행기 값 하나 없는 그들이다. 무엇이 이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는가? 답은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피땀으로 얼룩져버린 그들의 임금봉투’


사장님은 왜 미치지 않는가

이란주씨의 이 책 ‘아빠, 제발 잡히지마’는 저자 이란주씨가 대개 진보생활문예지에 지난 5년간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끝나지 않을 이야기인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삶의 기록들이 적혀 있는 이 책은 사회 고발적인 성격을 띠며, 우리에게도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 줄 것을 호소한다. 많은 단편 중, 지금까지도 가장 가슴에 남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제 3부에 실려 있는 이야기로 제목은 ‘그가 미쳐버린 사연’이다. 내용은 이렇다. 그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글이 쓰여 지는 때가 설이었는데, 아시아 몇 나라에 있는 풍습에 서로 물을 뿌려 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동남아시아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그와 아내는 한 달 월급으로 110만 원, 95만 원을 받으며 포천의 한 목재회사에서 여러 해째 일하고 있었다. 전 직원이 모두 합쳐 예닐곱 명인 작은 회사라 모두 가족같이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사장님이 도박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회사 운영은 안중에도 없었고, 월급을 미루거나 못주는 때도 많아졌다. 그와 아내가 못 받은 돈이 부부가 합쳐서 2,000만 원 가량이었다. 그래도 그는 사장님이 월급을 떼먹을 사람은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주의 사람들에 의하면 그는 의좋게 지냈던 사장님과 척지게 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분명 그는 속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사람이 돈 때문에 의 상하면 안 된다’며 억누르고 또 억눌렀을 것이다. 결국 얼마 전 갑자기 정신을 놓았다고 한다. 펄쩍펄쩍 뛰며 괴성을 지르고 죄 없는 아내를 때리고 욕하기 시작했다. 그 의좋던 사장님은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본 뒤에야 500만원을 내놓았다. 병원비가 급할 것 같아 급전을 마련했다는 변명과 함께, 나머지 돈은 분명 떼먹을 심산일 것이다. 아내에게는 그가 미친 것이 회사와는 전혀 무관한 일라는 각서를 쓰게 했다. 같은 사람이면서, 어떻게 기본적인 사람의 도리조차 다 하지 못하는 것일까?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인가? 문화가 다르다 해서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도 이 사장님은 그간의 정을 생각했는지 병원비라도 내놓는다. 대다수의 사장님들은 그 병원비조차 아까워한다. 이것이 그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 온 그들에게 대가인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사장님들은 미쳐야 한다. 지금이 정상이라 한다면, 하루빨리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근무환경이나 임금문제 해결 등을 위해 노력하기 위해 미쳐야 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는 좋은 사람인 ‘타릭’씨는 정신을 놓는 그 순간 끝까지 사장님을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타릭씨가 다시 병원에 들어가며 아내에게 한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맴돈다. “사장님한테 자꾸 돈 달라고 하지마. 사장님도 힘들어.” 언제쯤이면 우리의 눈에 미쳐 보일 수 있는 진정한 사장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재작년 여름이었다. 안산 쪽에 큰 당숙부가 계셔 아버지와 함께 찾아뵌 후, 하룻밤을 청하고 올라 올 때의 일이었다. 안산에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위치해 있기에 서울로 상경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에는 한국인들보다 많은 수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산과 시흥지역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수가 많아 최대 외국인 근로자 밀집 지역이라 불리는 곳이다. 바로 그 때였다. 출발을 5분 여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이 버스로 들이닥쳤다. 그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를 포함한 한국인들에게는 양해를 구하며,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 여권을 보여 달라 독촉했다. 소수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버스를 탈출하려 애를 썼으나, 직원들은 이를 저지했다. 여권을 모두 확인하고, 몇 몇의 외국인들을 연행해 나가는 동안, 외국인 근로자들은 모두 침묵했다. 그 중에는 동남아시아 외국인 근로자로 보이는 한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가 연행되는 것을 막아달라고 울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버지와 나를 포함한 차 안의 모든 한국인들 또한, 침묵했다. 버스 기사는 출입국 사무소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버스가 출발하지 못한다고 했다. 결국 환불을 받아 과천을 경유해서 가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롭게 웃고, 떠들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한국인들도, 외국인 근로자들도 모두 서로를 경계하고 불신으로 바라보는 눈빛들이 짙어만 갔다. 모두가 미웠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국인들도 나의 아빠도, 나도 미웠고 우리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미웠다. 외국인들에게 갖은 욕설을 하며 나갔던 버스기사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일명 ‘사회적 폭탄’으로 지칭한다. 이것은 그들이 우리의 문화에 한국화 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집단을 형성하여 사회적 차별을 초래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명 3D직종들은 그들에게 맡기는 형국이면서 3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며, 그들을 국외로 추방한다. 시흥에 위치한 많은 공장들은 주로 힘들고 위험한 일에 한해서는 외국인 근로자 종사자수가 월등하게 높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기 위해 위험하고 힘든 일들까지 불사하고 일하려는 그들이다. 일부에서는 이들에게 송출되는 금액이 외화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임금이 적은 이들이 제공한 노동력으로 우리는 가공무역 따위 등을 통해 그에 반하는 몇 배의 이익을 거둔다. 송출되는 외화보다 우리가 벌어들이는 외화의 액수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가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사회적 폭탄’이라 폄하하기에 앞서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그들의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는 소세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 밖에도 많은 문제들을 짊어지고 있다. 그 중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라면 바로 ‘문화’일 것이다. 이슬람의 경우에는 돼지고기를 금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차 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인도의 경우에는 힌두교도들의 수가 많다. 그런데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이슬람에게 돼지고기를 권하는 것과 같이 타인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음료보다는 차를 주로 마시는 중국인들에게 커피만을 마시게 강요하고, 힌두교도인들에게 성경책을 들고 설교라는 명목 아래 괴롭히는 이들이 그 예들이다. 실제로, 책에 의하면 이러한 문화적 차이로 고통 받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수가 상당하다. 이는 선진국 도입을 문턱에 앞둔 나라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선진국과 같은 경우에는 개인의 가치관과 문화를 존중하여 집단의 발전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후진국의 문화라도 배울 점을 발견한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에 '문화와해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이미 많은 문화들이 유입되었고, 고유한 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서방의 국가 ‘독일’은 주위의 여러 유럽 국가 중 다문화주의 보편화에 가장 앞장선 나라 중 하나이다. 지난 수십 년간 자신들의 게르만 문화는 고유하게 지켜가며, 여러 나라들의 문화들을 수용했다. 대한민국도 1970년 대 경제개발이 가속화 되던 시절, 독일 등의 여러 나라에 외국인 근로자를 파견하여 외화 벌이에 앞장섰다. 그 분들의 노력으로, 경제개발의 초석을 닦았고, 한국인은 불굴의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를 온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때, 독일에는 주로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과 선진교육을 배우고자 하는 간호사들이 건너갔다. 하지만, 그 당시 그들이 독일에서 근무를 하는 동안의 근무 환경이나 임금 등의 여건은 지금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여건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독일에서 겪은 가장 큰 문제가 ‘언어 차이’였다고 한다면, 한국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겪는 문제는 ‘문화’이다. 독일에서는 그들의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강요하지도, 그들만의 문화를 배척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대부분이 자국민과 외국인 근로자가 어우러지는 문화를 생성한다. 타국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독일과 달리 대한민국의 ‘한국인’만의 문화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 개도국의 시절 당시 우리 또한 선진국의 도움으로 세계 일류 국가로 우뚝 서게 되었는데,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전철을 밟고 있는 국가들의 국민들을 우리는 꺼려하고 배척하고 있다. 정부 또한 외국인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애를 쓰는 척 하지만, 정작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겪고 있는 고초 따위는 외면하고 있다. 경제 개발 당시 독일로 파견되어 탄광 일을 했다는 한 광부의 인터뷰 자료를 읽으며 가슴 속에 날아드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이 대한민국은 독일에 가서 받았던 환대와 격려는 지금 모두 잊었는가?’

글을 마치기 전 ‘모루’를 소개하고 싶었다. 이 친구는 책이 쓰여 질 당시 3학년으로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가 있다. 모루의 아빠와 엄마는 조심성이 무척이나 많은 사람이어서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연하게 모루의 엄마가 장을 보러 가던 중 단속에 걸리게 되면서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되었고, 모루도 덩달아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모루의 아버지는 6개월만이라도 남아 고국에 작은 가게를 차릴 수 있는 돈을 벌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6개월이 늘어지고 늘어져 3년이 되었고, 지금은 3년이 몇 년으로 늘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모루의 가족들에게 여름은 ‘공포의 계절’이었다고 한다. 단속이 강화되어 가정집까지 출입국 사무소의 직원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고, 정말 더운 여름날 창문 하나 못 열고 말도 크게 못했다는 것이다. 이웃에 외국인근로자가 살고 있다면 한 번 더 보듬어 보고 삶의 고통을 나눌 일이다. 네팔과 같이 내전이 한창 중인 나라의 국민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싫어한다. 이러한데, 도대체 누구에게서 우리가 이들을 제한하고 추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말인가. 제 4부는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강제추방이라고 소개한다. 모든 불법 체류자의 소망은 그저 합법적인 자격을 얻어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땀 흘려 일해 온 미등록 노동자는 여전히 버려둔 채로, 새로운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고, 오래된 노동자들은 계속 쫓기고 강제로 추방당한다. 이제는 이들의 분노가 점점 쌓이고 있다. 그 분노가 표출되고, 대한민국이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이러한 흐름은 반드시 바뀔 것이다.





승.범.
너도 소중하니? 나도 소중한데


오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간호사들과 예기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의 발가락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찾아왔는데, 말을 잘 이해를 못하셔서 계속 똑같은 말만 하고 계시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답답한지 뒤에서 욕까지 하며 짜증을 내댔다. 그 얼굴을 보여 내 얼굴이 더 붉혀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한 시간 정도 물리 치료를 받고 나왔는데 그 할머니가 밖에서 폐 종이 수레를 끄시며 정말 아찔하게 도로를 다니시는 걸 보았다. 아 할머니, 가족들은 어디 계시며 왜 혼자서 그 힘든 일을 해가시며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욕을 받으셔야 하는 건가요. 왜 이 세상은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요. 차와 닿을 듯 말듯 한 할머니의 수레를 보며 이 말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들의 이야기,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온 이유, 조국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러왔다. 이주노동자들,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가도 돈이 없어 인정받지 못하고 한국에 와서도 거의 모든 한국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그들은 몰려온다. 그리고 쫓겨난다. 누군가를 위해서, 몸이 부서지는데도 피땀 흘리는 그들. 나는 이제서야 그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평소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몰랐다. 그러던 도중 ‘아빠, 제발 잡히지마’ 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 이란주 씨가 이주노동자들을 도우면서 직접 경험한 모든 이야기를 기록한 글이다.

이 책을 보는 내내, 주변에 있는 분들이 “제목이 참 신기하구나 어떤 이야기니?” 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냥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인 것 같아요.” 라고만 말했다. 그 것은 큰 실수였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책은 끝까지 읽지 않는다면 그들의 진정한 마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빠, 제발 잡히지 마’ 책 제목만 봐도 무언가 간절함이 느껴진다. 무엇 때문에 아빠보고 잡히지 말라는 거니.


“아빠, 제발 잡히지 마” 라고 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온 불법체류자 부모의 아들이다. 그의 가족은 출입국사무소 직원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사람이 사는게 맞는가 할 정도로 쥐 죽은 듯이 살았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출입국 사무소에 걸려 강제 출국을 당하게 되자 그는 어머니와 함께 조국으로 가게 되었다. 비자가 없으면 한국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름도 무서운 강.제.출.국. 그는 한국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버지를 놓고, 자국으로 돌아간게 불안해서, 먼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한 것이다.


불법체류자라는 더러운 껌딱지 때문에, 하루하루가 불안해 지쳐있을 그들. 자기 몸보다 조국에서 기다리는 자식들과 부모들 걱정이 훨씬 우선인 이주노동자들. 그들에 대해 진작 알았더라면, 일찍이 그들을 위한 따뜻한 시선을 가졌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쫓겨 나가는 겁니까?

한국에는 일자리가 매우 부족하다. 그런데도 50만개 이상의 서민일자리가 외국인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이 그들을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중국인들은 심지어 한국인 직원을 왕따로 몰고 간 뒤, 서러워서 떠나게 만든다고 한다. 물론 이런 이유들을 들어 봤을 때, 나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우리나라 많은 공장에서 불법체류자의 월급을 적게 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에게 150만원을 주며 일하게 한다면 이주노동자들에게는 100만원을 주고 고진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돈만 밝히는 사회에서, 사장들이 한국인들을 고용하지 않고 이주 노동자 위주로 고용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그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고 애꿎은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들로 인해 그들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사람으로 보는 것은 단지 억울한 핑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땐, “어차피 내가 신고하면 너는 끝인데 내말 안 듣고 버틸 수 있겠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장들과 한국인밖에 보이지 않았다.

누구든지 가족이 없다면, 남들보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 벅찰 것이다. 내가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 있을까? 그런 버팀목이 되는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추방당할 걱정과 직원들의 협박으로 제대로 된 생활도 못하고 있는다. 게다가 월급을 전부 받는 것도 아니고, 사장이 마음 내키지 않거나, 돈이 부족할 때는 안주면 땡 이라는 것이다.


“나 한국올 때 1,000만원 줬어요. 1,000만원 만들어,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 500만원 갚아요. 또 500만원 남았어요, 내가 생각했어. 경찰 나 잡으면 말할꺼요. 슛미, 슛미 (나에게 총을 쏴라). 여기서 죽어, 가서 죽어, 똑같아. 나는 돈 없어. 그냥 죽어야돼.”


-‘아빠, 제발 잡히지 마‘에서 이주노동자가 한 말-


외국인 노동자의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이 세상에서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는 것일까. 생명보다 돈이 소중한가?! 이런 생각에 한참동안 고민했다. 단지 돈과 명예, 그리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을 사회의 약자로 평가하고, 사회의 쓰레기로 취급한다.

나는 수학, 국어, 영어 등등 이런 것들을 배우기보다 먼저, 인격이라는 것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별에 찌들어있는 이 사회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돈 때매 인격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이 세상(世上)에서, 말 그대로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사회‘에서, 더 이상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지친 영혼을 달래는 약이었다.”


-‘아빠, 제발 잡히지 마’에서 작가의 말-


이 말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의 강제추방에 잡히지 않게 도망가다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죽어서도 아무런 보상 따위를 받을 수가 없다. 죽은 그들의 집에 가보니 거기에 남는 것이라곤 빈 술병밖에 없었다. 빈 술병으로 널브러져 있는 쓸쓸한 방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곤 차가운 한기밖엔 없었다.

항상 쫓겨만 다니며 사는 그들.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회만이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만 소중한 게 아니다.

중학생 때 한 만화책을 본 기억이 났다. 그 책에 잠깐 불법체류자들이 출입국사무고 직원들에게 쫓기고 쫓겨 산으로 도망가는 장면이 나왔었다. 그때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들은 왜 이렇게 두려운 표정으로 쫓겨야 하고 그들은 왜 이렇게 무서운 표정을 하고 그들을 쫓아가는 거지? 하는 생각만을 했다. 그뿐이다.

그 만화를 그린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 또 다른 아이들은 이 만화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생각들을 왜 그 때 해보지 않았나 싶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면 지금에 나는, 중요하지 않은 곳에서 학교 봉사시간을 얻으려 할 때, 한번쯤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봉사를 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다른 우리나라에 온 모든 외국인들. 그들은 진정 사람취급을 받고 있을까.

나는 평소에 사회에 대해서 비판을 많이 가졌었다.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살라는 우리 형의 말과는 달리 이 사회에서는 내가 비판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직 고등학교1학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 정도는 많이 보고 들었었다. 그중 대부분은 음악으로 알게 됬는데, 힙합장르를 좋아하여 힙합노래를 찾던 도중 이런 노래를 알게 되었다.


내 피부색이 너희들과 조금 다른 게
정말 그렇게 너희들을 화나게 해?
나 역시 니들과 똑같은 언어를 써
우리 엄마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면서 왜 계속 엄마를 놀려?
난 틀린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거야. 알아?
흰 건반에 올려진 검은 건반 역시 피아노의 일부야
내 검은 피부가 그렇게도 실수야?

-노래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가수 : 피노다인-



이밖에도 여러 가수들이 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노래들을 많이 만들어왔다.


이 음악은, 피부색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서, 단지 그 이유로 사람을 무시하고 더럽힌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피부색에 대한 아픔이 있다. 그걸 뼈저리게 아는 건 나 자신이다. 왜냐하면 내 피부가 햇빛에 잘 타기 때문에, 여름만 되면 피부색이 금방 어두워진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흑인이라는 말을 섞어가며 장난을 칠 때가 많았다. 그들에게는 장난이자 친해지고 싶다는 표시겠지만,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진지하게 울었던 적도 있었다. 그들은 말 한마디로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 모른다. 그나마 나는 그렇게 까만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흑인가정의 아이들은 얼마나 편견에 압력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을까. 몇 일전 인터넷에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외국인아이들의 말을 많이 찾아 봤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교실에서 물건이 없어지기만 하면 외국인 아이들부터 의심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선입견이 존재하는 걸까. 길가면서 많이 보는 휠체어에 탄 장애인들,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외모를 한 외국인들, 우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모를까. 혹시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는 건가?


한국, 돈 때문에 사는 나라?!

최근에 나에게 있었던 일이다, 뉴스에서 택시 기사들이 외국인 손님들을 태울 때 하는 짓에 대해 들었다. 택시에서 어떤 버튼을 누르면 돈이 더 빨리 나간다한다. 그 말들 듣고 며칠 지나지 않고 친구들과 택시를 탔는데 그 버튼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뭐라 말도 못하고 그냥 내렸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한심스러웠지만, 우리나라의 돈밖에 모르는 현실에 대해 매우 화가 났다. 길을 모르고 우리나라 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 아니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뺏어먹을까 궁리만 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 한국인한테도 돈 뺏을 궁리만 하는데, 외국인들은 얼마나 힘들까. 비싼 돈 주고 관광하러 온 외국인까지, 피해를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사회의 소외자라고 생각하여 함부로 대하는 사례들 또한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 이주노동자 12.5%가 우리나라 직원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있었고, 그중 48.9%가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건. 그 가해자들이 이게 ‘한국식’ 이라면서 마음대로 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국식’ 이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써대면서, 그들을 어떻게든 내몰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 덕분에 우리나라의 이름은 점점 더러워지고 나중에는 우리나라 또한 소외될 것 이다.

언제부터 한국 사회가 이런 식으로 변해가고 있었을까. 처음에는 여러 나라들에 의해 약했던 나라, 강해지고 싶고 살고 싶어서 온갖 애를 쓰며 발전해온 나라가 아닌가. 그 나라가 이제는 바깥일만 신경 쓰고 정작 자신 안에 일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 시대 이길래,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힘들어 하고 있을까.

돈이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불리는 이 시대에서, 심지어 개 취급도 못 받는 불법체류자는 우리나라에서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안 그래도 고된 일과 불안으로 잠을 설칠 그들에게, 손이 기계에 찍혀 손가락이 날라 가는데도 도와주기는커녕 자기 책임을 안 묻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불법체류자들을 억압하고 쫓아내려는 한국 법만을 만들게 아니라, 그들도 우리의 한 가족 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나는 항상 이 생각을 잃치 않으려고 한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일본인도 어느 나라 어느 사람이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심지어 동물도 행복하길 원할 텐데, 아무리 우리나라에 해가 끼친다 해서 내몰려고 하고 인간취급조차 하지 않는 사회는 좋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가 조금씩 좋은 길로 발전하듯이 불법체류자를 위한 마음도 발전할 것이다. 한국인도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듯이 외국인도 우리나라에서 살고, 일할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피부가 다른 것은 죄가 아니라 특별한 것이고, 그들의 나라에서는 평범한 것이다.

언젠가 불법체류자라는 껍질을 벗겨내고 모든 게 합법화 될 수 있도록 되는 날이 오길 기다리며, 이제는 그들이 아닌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다.




고마운 친구들,
너무 늦게 올려 미안합니다.
그래도 약속 지키려고 엄청 버벅대는 컴과 인터넷으로 네팔에서 올렸다고 하면 용서해 줄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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