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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음속에 공존과 평화의가치를 심어요

민경, 수진, 지원, 유정의 [아빠 제발잡히지마] 서평

by 아연대 2011. 8. 14.



수락고 1학년 친구들이 쓴 [아빠 제발 잡히지마] 서평입니다.
따뜻하고 정의로운 감수성과 쨍할 만큼  발랄한 모습, 참 이쁘네요~~^^ 




민.경.

이주노동자 : 다른 나라로 옮겨가서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 불법체류자들, 냄새나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사람들 긍정적인 말을 떠올리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고 관심 갖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엔 편견에 사로잡힌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살아오다가 학교 수행평가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읽은 후 그들을 향해 있던 편견은 깨지게 되었다. 그들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고, 자신의 의견을 낼 줄 알고, 삶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주인공들과 같이 슬펐고 억울했고 화가 났고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을 해보니 이분과 관련된 인터뷰도 있었고 이 분이 쓰신 다른 책들도 있었다. 그리고 또 ‘아시아 인권 문화 연대’를 검색해 보았다. 홈페이지가 나와서 거기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이 책에서 소개되었던 꼬마 도서관도 있었고 기부하는 것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난 이번에 처음으로 이런 단체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 홈페이지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일까.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 내 또래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공부하느라 바쁘니까 말이다. 이 ‘아시아 인권 문화 연대’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매우 대단하신 분인 것 같다. 이 연대는 비영리민간단체라고 소개 되어 있었는데 그럼 경제적인 이익을 따지지 않는 것 아닌가? 뜻이 강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을 생각하고 그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실 것이다. 나는 물질적인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나에게는 이분들의 삶이 힘들어 보이기도 하지만 매우 멋져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면 우리 사회는 온정이 넘치는 따뜻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의 이야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가 2층에서 떨어져 죽음에 이른 어느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다. 불법체류자들이 단속반에 붙잡히면 강체추방을 당한다고 한다. 그들이 강제추방을 두려워하는 것은 알지만 죽음을 무릅쓰고까지 도망가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단속하는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꽤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도망가다가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단속반 사람들이 비인간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다뤄서 다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둔기로 때리거나 구타를 당하거나 수갑이 채워져서 검거를 당한다고 한다.

내가 이와 관련된 기사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보게 되었다. 기사 사진에 나온 불법체류자는 단속반의 기습으로 자다가 잡힌 듯하다. 윗도리는 입지 않았고 반바지에 맨발로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누가 봐도 심하다고 느낄 만도 했다. 기사에 따르면 동네 주민들이 보다 못해서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단속반에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단속반은 그런 항의를 묵살하고 오히려 거친 말을 하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들은 불법체류자들을 어떻게 생각을 하기에 그들을 비인간적으로 다루는 것일까.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무시하고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는 불법체류자들이 폭행, 살인 등 범죄를 많이 일으킨다고 단속을 더 강하게 하고 더 많이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불법체류자들 중에서 나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착한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불법체류자들은 본국 또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의 비자가 끝나서 자진 출국을 하고 다시 돌아올 경우 우리나라에서 안 받아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한 번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불법체류자가 되더라도 출국하지 않고 여기에 꼭꼭 숨어 살면서 일하는 것이다.

이러면서 불법체류자들이 늘어나게 되자 우리나라 정부는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4년 미만의 체류자만 합법화하고 나머지들은 모두 출국하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가족동반을 엄격히 금지해 가족과 한국에 같이 살던 사람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전혀 이주노동자를 배려해 주지 않는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제도가 아닌가. 그런데 제도가 가족들을 생이별하도록 하는 비윤리적인 도구라니. 내가 제도나 법 이런 것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세상누구라도 가족과 함께 살길 원하고 당연히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본적인 생각들을 부정하려 드는 우리나라의 제도는 제도가 아니라 제도라고 불리는 무기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3D(dangerous, dirty, difficult) 직종을 꺼려한다. 그리고 육체노동도 3D 직종 중 하나이다. 노동력은 필요한데 그만큼의 노동력이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니까 우리나라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서 그들의 노동력으로 물건을 생산해 낸다. 이주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력을 우리를 위해 쓰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무시하고 깔본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진정한 제도를 만들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도 행복하고 이주노동자들도 행복해질 수 있는 윈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이주노동자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주노동자들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이주노동자들에 관해 좀 더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주노동자들과 연관된 내 경험들도 생각나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모둠별로 사회단체에 관해서 조사해 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단체를 조사해갔다. 그리고 우리조가 우리 반을 대표해서 인터뷰를 하러 가기로 했다. 사전에 연락을 한 뒤에 친구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러 갔다. 우리는 동대문에서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다음에 가파른 언덕으로 되어있는 주택가로 걸어갔다. 이주노동자센터는 한참 위에 있어서 가파른 언덕을 헐떡헐떡 거리며 올라갔다. 우리가 도착한 이주노동자센터는 좁고 그리 깔끔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르는 상태로 갔다면 여기가 이주노동자센터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여자 분이 오셔서 우리의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우리가 했던 질문들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보람찼을 때가 언제였는지 등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 분께서는 친절히 대답해 주셨고 우리는 마무리로 단체사진을 찍으며 훈훈하게 끝냈다. 내 생에 처음으로 해보는 인터뷰라서 매우 뜻 깊었고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와서 완전히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게 생각이 났다. 그때 찍었던 사진이나 썼던 보고서들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 일이 떠올라서 좋았고 이제 저자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이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수 있어서 기쁘다.

내가 중학교 때에는 국어 서술형이 정해준 책에서 나왔다. 그러다가 중2때인지 중3때인지 국어 선생님이 정해주신 책이 <사이시옷>과 <십시일반>이었다. 모두 인권, 차별 그런 내용들이 주제인 여러 가지 단편 만화가 묶여있는 책이었다. 그중 <십시일반>이라는 책에서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그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었지만 이제 다시 읽는다면 더 새롭게 읽혀질 것 같다. <십시일반>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나라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그래서 한국말이 영어로 소리 나는 대로 쓰여 있었다. 그걸 읽으면서 이주노동자들과 우리의 언어의 차이로 매우 힘들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도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것이 나오는데 매우 처절하고 이것이 나에게는 이렇게 만화로만 보고 끝나는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진짜 생활이라고 생각하니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왜 그들은 나와 같은 ‘인간’인데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부조리 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주노동자’라는 말을 들으면 그냥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좀 냄새날 것 같고 좀 못 배운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었다. 하지만 그건 내 편견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나라에서 대학도 다니고 공부도 많이 했던 사람도 있고 괜찮은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런 타이틀이나 직업을 버리고 한국으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온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 있는 시선과 냉대이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는 물건을 만드는데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과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편견을 버리고 서로 다가가야 한다.

그들과 우리 '같이' 살아보자
살면서 이주노동자들과 말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그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나도 한 번도 대화를 나누어 본적이 없다. 한번 얼굴이 까무잡잡한 사람을 힐끔힐끔 본 적은 있어도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와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야한다.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그들과 우린 같은 사람이고 같은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상황에선 이주노동자들 삶은 힘들고 고달프다. 저임금, 심지어는 월급 주는 것을 계속 미루며 주지 않는 고용주들도 있다. 그리고 악조건 속에서의 중노동, 그래서 일을 하다가 다치는 이주 노동자들도 많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다치게 된다면 치료 받기는커녕 그냥 쫓겨난다고 한다. 그들은 억울하지만 한국어도 잘 못하고 우리나라 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으니 그냥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마구 악용한다. 임금이 싸니까 많이 일을 시킨 후에 돈을 떼어 먹거나 조금만 준다. 다치게 되면 치료도 안 해주고 손해배상도 안 해주고 그냥 쫓아낸다. 악덕 고용주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그저 값싸고 일 잘하는 기계일 뿐이다. 그리고 그 기계가 망가지면 갖다 버리고 또 새로운 기계를 싸게 들여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악덕 고용주들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을 기계 취급할 수가 있을까.

이주노동자들도 이런 악덕 고용주들과 우리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들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바라만 보는 것 같다. 이주노동자들이 제풀에 지쳐 그만둘 때까지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농성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고 무관심했다. 그들의 희망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 주고 있다. 모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고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퍼지고 퍼져서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를 이해하기 쉬워질 것이다. 서로를 이해한다면 우리 사회는 이주노동자들과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공존하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좀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해나간다면 결국 받아들이게 돼 있다. 우리도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만 한다. 그들은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때까지 이주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해봐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이런 일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불법체류자들을 생각해보자. 머리로만, 딱 정해진 제도로만 생각했을 때에는 당연히 불법체류자들을 강제 출국 시켜야 한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나가달라고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말을 꺼내기가 너무 힘들고 가슴이 아플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그리 잘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아픈 과거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옛날에는 노동자들의 인권이 지금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비슷했다. 이 책에 나온 시 <손무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노동자들의 인권이 땅에 떨어져 있었고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으로 모두가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전태일이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근로노동법을 공부하여 노동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정부, 언론, 시민들은 그의 외침을 무시하였다. 낙심한 그가 선택한 방법은 분신자살로 이목을 모아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희생으로 다른 노동자들도 다 같이 단결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들 스스로가 부당하다고 자각 했을 때가 그들이 힘을 합칠 수 있는 때인 것이다.

지금의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잡혀가거나 추방당할까봐 두려워 참여하지 않거나 모르는 척 해버리면 이 상황은 좋아질 수가 없다. 그들 스스로가 부당한 것을 인지하고 그들의 권리를 그들 스스로가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이주노동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 그들이 더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더 한국말도 잘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옆에서 아무리 큰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그들이 그들의 목소리로 말해야만 한다. 모두에게 들리도록 크고 정확하게 말이다.

우리의 최대의 적은 무관심이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서로를 가로지르는 담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그 담을 우리 모두 합심하여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친분을 쌓으며 더 낳은 사회를 향해 같이 나아가자. 더 낳은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는 것뿐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은 선진국에 속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것으로는 선진국에 속하지 못한다. 비싼 음식 먹고 좋은 집에서 산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돈은 좀 부족하지만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여유가 있다면 그거야 말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든 제도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있다고 해도 쓸모없는 제도, 오히려 더 상처만 주는 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정말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제도를 만들어 놓는 건 종이 낭비, 잉크 낭비일 뿐이다.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정확히 그들을 생각해 보면서 만든다면 그들과 우리의 관계는 이렇게까지 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을 가슴으로 품고 생각하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그들을 생각해주자. 내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떤 대우를 받고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자. 그들이 너무 힘들어 쓰러지려고 할 때 와서 손 잡아주고 토닥토닥 해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자. 나도 아직 그럴만한 용기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을 마음으로라도 응원해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서평 쓰는 거 별로 안 힘들 줄 알았다. 금방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게으름도 피웠다. 지금 후회막급이다. 4시가 넘었다. 너무 자고 싶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졸려도 꾹 참고 써서 끝을 보니까 너무 기분이 좋다 선생님이 말한 탈고의 기쁨이 뭔지 지금 완전히 이해된다. 서평을 쓰면서 술술 잘 쓰여서 기분이 좋았던 부분도 있고 소제목 짓는 곳부터 막혀서 간신히 쓴 것들도 있다. 지금 이것만 쓰면 끝난다는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들썩 거린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는 게으름 안 피우고 미리미리 써 놓을 것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매우 괴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번 힘들게 글을 써보니까 작가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직업 같다. 특히 게으름뱅이인 나에게는 말이다. 글쓰기가 이렇게 나를 괴롭혀 본적은 처음이다. 그렇지만 글을 쓰면서 머리가 이렇게 돌아가 본 적도 처음인 것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제 독후감은 진절머리가 날 듯 하다.




수.진.

대책 없는 한국, 외국인 노동자는 어디로

유행처럼 밀려왔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최근에 뉴스나 신문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 소식을 듣거나 본 기억이 없다. 이처럼 그들은 경제 상황이 좋을 때는 값싼 임금을 받고 일하다 경기가 나빠진 후 대책 없이 쫓겨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땅 어디에서도 그들을 반겨주거나 보살펴 주는 손길은 없다. 책을 읽기 전에 불법이든 불법이 아니든 가리지 않고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었다. 실업률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데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을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은 책을 읽으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이주노동자들도 우리와 국적만 다를 뿐 똑같은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권리가 보장되어야하는데 아직도 우리는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은 낯선 한국 땅에서 강제 추방을 당하지 않으려고 숨어 다니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밥도 잘 먹지 못하고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냉대와 따가운 시선만 돌아올 뿐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맞서 싸워 이기는 것보다 우리의 태도와 정책이 변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값싼 임금으로 힘든 노동을 요구할 뿐 이주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외면하고 회피하고 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했더라면 그들의 삶, 우리의 삶이 조금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대부분의 사람들의 전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이란주의 아빠, 제발 『제발 잡히지마』는 독자들에게 많은 면에서 생각을 바꿔주는 책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감동 받았고 나아가, 인식과 지각에 충격을 받았다.

이주노동자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천만 원이 넘는 많을 돈을 주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 곳의 대부분은 말을 듣지 않으면 여권을 빼앗거나, 불법 노동자라는 것을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며 협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물정이나 법을 모르는 서투른 외국인들은 그 말에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못하고 일을 하는데 힘이 들어도 임금을 제 때 받지 못하고도 묵묵히 일한다.

민간단체들은 미등록 노동자들은 전원 합법화 하자고 주장해 왔다. 이로 인해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2003년 8월에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 를 도입했고, 미등록 노동자 중에서 4년 미만 체류자만 합법화 되는 혜택을 받게 되었다. 놀랍게도 한국 정부는 불법적이거나 편법적인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흘러온 미등록 노동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눈감아 주며 부족한 노동력 문제를 해결해 왔다. 어렵게 만들어진 법안은 4년 미만 체류자만 합법화하고 나머지는 출국했다가 다시 재입국하라고 했다. 비자를 받는다고 해도 한국에 몇 년 있지 못한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이런 불합리한 법이 있는지 몰랐다. 그냥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권만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와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입국허가가 까다롭고 타국에서 거주하거나 돈을 벌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기에 더 관심이 없는데 이란주 작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민간단체의 일원으로써 이 책에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얼마나 우리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는지 그 문제점을 인식하게 해준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겉으로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언젠가부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데 이 책을 쓴 이란주 작가는 기억 저 편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는 이 법을 통해서 한국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들을 대신하는 입장에서서 정부에 대응해야 한다. 또 우리가 타국인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지 반감을 사지 않는지, 이 책은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게 하고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사람과 짐승이 차이는? 그들은 짐승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소고기 안 먹어요.’ 중에서 한 외국인 친구가 자신의 나라가 소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농사를 짓는데 많이 도와주는 소를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은 많이 다른 것 같다며 “사실 우리가 비자는 없지만 그 동안 열심히 일했잖아요. 한국 사람들 싫어하는 일, 우리가 다했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짐승보다도 못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라는 말한 구절은 너무 인상 깊었다. 원래 살던 고향도 아니고 얼굴의 생김새도 다르고 문화적 차이가 있는 머나먼 타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보살핌을 받고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따뜻함을 주기보다는 일하는 짐승처럼 생각하고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제일 더럽고 위험한 일을 시켰다. 돈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악조건에서도 꿋꿋이 일했는데 그 중 일을 하다 기계에 손이 잘리거나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 소나 다른 짐승들도 일을 시킬 때 다치면 치료를 해주고 쉬게 해 주는데 짐승보다 못하게 다쳐도 휴식은커녕 돈이 없다고 내빼거나 아프다고 얘기하면 내쫓는다고 협박했다. 또 제일 고되고 힘든 일을 시켜놓고는 최저 임금을 주거나 나중에 오라며 아예 임금을 주지 않는 공장들도 많다. 짐승은 인간에게 도움 주는 일을 하면 칭찬받고 그 대가로 먹이 등을 받는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는 정말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다. 일을 해도 칭찬받지 못하고 더 어렵고 힘든 일을 요구받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해주는 대우가 짐승만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위에서 얘기한 외국인 말고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는 이유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강제 추방당하면 먹고 살 길이 없고, 의사소통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일 큰 문제점은 우리는 우리나라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의 의견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고 짓밟아버린다는 것이다. 이란주 작가는 이런 외국인 근로자들을 상담해주거나 도와주면서 한국인으로서 미안하고 또 미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 혼자 노력한다고 변하지 않는다. 이 책을 쓴 이유도 우리의 행동을 자각하고, 노동자들에게 일할 권리, 사람답게 살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가 다른 사람이기 전에 일하는 사람이기 전에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강제 추방과 생명은 같은가
외국인 노동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강제 추방’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한다. 빚이 많은 이들은 더욱 두려워한다.”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즉 비자를 받지 못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단속반에 걸리기만 하면 바로 짐을 싸서 고국으로 강제 추방 된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고비이다. 낮에는 방 안에 꼼짝없이 있어야하고 저녁이 되어서야만 일자리를 구하러 다닌다. 그러나 밤에 단속반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밤에 거리를 활보하다 잡히거나 기숙사에서 불법으로 문을 따고 들어온 단속반에게 발각되는 경우도 있다.

책의 사례 중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숙사에서 쉬고 있을 때 단속반이 들이닥친 것이 이었다. 몇몇은 재빨리 도망쳤지만 누르와 싯디는 단속반에게 잡혔다. 누르는 싯디에게 도망간다며 2층에서 뛰어내렸지만 검물 틈새로 떨어져 대동맥과 간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는데 병원치료를 받다가 끝내 숨졌다. 또 단속을 피해 기숙사 창문에서 뛰어내린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외에도 계속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단속반이 쫒아오면 강제추방 당하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나 남들은 다 죽어도 나는 살아서 도망갈 수 있겠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생명의 가치는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반면에 단속반들은 단속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뒤통수를 때려 머리를 찢어지게 하거나 구타를 한다. 한 이주노동자는 단속반에 걸려서 도망치다 단속반이 때리는 봉에 맞아서 뇌사상태에 빠진 외국인도 있고 정신적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도 있다. 지금과 같은 단속이 이어지면 죽음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작가는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합법화가 최우선이며, 지금과 같은 형태의 단속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불법 이주노동자들을 다 합법화해주기는 힘들다. 모든 미등록 노동자들을 합법화해주는 것보다 한국 노동 시험이라고 만들어서 한국어 시험 등과 같이 한국에 대해 시험을 봐서 통과하는 사람은 합법화 시켜주는 방법이 나을 것 같다. 자신의 직장과 같은 한국에 일하는 사람들을 한국에 대한 지식도 없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것보다 한국 문화 등에 관해 더 잘 아는 사람이 일하기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또는 합법화 기간을 4년에서 8년으로 늘린다. 4년은 충분히 돈을 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4년에서 8년 까지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을 늘려준다.

싯디와 같이 타지에서 일하는 자식들의 갑자기 죽으면 그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싯디 가족들도 싯디가 죽은 후 이란주 작가가 소송을 요청하여 돈을 받을 수 있다며 소송을 하자고 이야기해보았지만 아이가 죽었는데 소송이 무슨 소용이라며 통곡하던 가족들을 보며 이란주 작가도 그 소식을 알릴 때 정말 죄송하고 미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죽은 후에 소용이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은 절대 살아나지 않는다. 사회제도가 빨리 바뀌고 그 사이에 죽거나 다치지는 이주노동자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무서운 한국,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곳
우리나라를 안 좋은 소식으로 알릴 수 있던 세계적으로 큰 파장이 되었던 일이 있었다. 불법 노동자가 자신이 일한 곳에서 임금을 받지 못하고 계속 일하다고 다치게 되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사장은 치료비도 안 줄 뿐더러 수당은 나중에 줄 테니 다음에 오라고 하고 소식이 없었다. 그녀는 매일 돈을 달라고 찾아갔는데 사장은 돈을 못 주겠다며 얼굴에 염산을 뿌렸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지고 한 쪽 눈은 실명되었다. 이 사건은 전 세계로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처음에는 이주노동자를 위해서 대안을 마련해주는 척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묵묵부답이었다.

이 책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이 사건이 생각났다. 이 사건이 어린 나이의 나에게는 매우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5천년 역사에 매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수백 번의 싸움이 일어나도 마지막까지 우리나라를 지킨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주위를 둘러볼 줄 알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물질을 추구하는 이 사회에 맞추어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것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꼭 일본인 무자비하게 한국인들을 폭행하고 죽이고 비난했던 것처럼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약한 나라를 대상으로 이용하고 있다. 만약에 미국과 같은 강대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했으면 방치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 치료해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머리를 조아리며 들어줬을 것이다. 어쩌면 정부는 그들아 후진국에서 온 사람들이어서 힘이 없다고 무시하고 깔봤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 일했다면 적어도 조금의 임금을 주었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사회에서 발언권도 거의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어 악덕 한국 사장들은 이것을 이용해 계속 부려먹는다. 프레스기에 손이 잘려나가도 보상받지 못하고 매일 야근을 하고도 백만원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며 혹시 잡혀가진 않을까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꼭 사자에게 쫓겨다니며 가족을 보호하는 어미사슴 같았다. 어미사슴과 같은 이주노동자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동생의 공부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노동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인간이 인간답게 대우 받으며 사는 세상이 올까? 왜 인간답게 사는 삶이 한국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지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우리 사회가 안타까울 뿐이다.

평소에 이주노동자를‘불쌍하다’고 생각했다면 책을 읽고 난 후 이주 노동자들의 아픔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쩌면 나도 그들을 우리국민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르다는 시선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우리나라의 이익만 따지려고 했다. 자신들의 고통이나 슬픔을 표현 할 때도 없고 낯선 한국에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준다면 그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을 텐데 막상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우리가 먼저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줬더라면 그 사람들은 비록 자신의 고향은 아니지만 형제와 같은 나라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을 시체로 돌려보내거나 다쳐서 혹은 강제추방 당해서 쫓겨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란주씨는 이 냉혹한 현실에 마음이 아프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미안했을 것이다. 이 책을 엮으며 아직도 바뀌지 않은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법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나도 책을 읽으며 이란주 작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와 국적, 외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 받고 천대받는 그들에게 희망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희망을 우리가 짓밟아버렸다는 것을 알고 반성해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정부가 하지 못하면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 이주노동자 외에 다문화 가정도 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들을 진정으로 보듬어주고 포용해 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항상 다르다고 보기 이전에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를 가져야한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 한국인을 대신하여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며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줄 생각을 하면 좋다는 이주노동자들의 착한 마음씨가 나의 심금을 울렸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엄청난 잔인한 짓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 주위에 힘들어 하는 사람은 없는지 여유를 가지고 뒤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란주 작가의 두 번째 책『아빠, 제발 잡히지마』는 세상을 좁게 봤던 나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지고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게 해주었다. 책을 읽기 전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으로 그들을 바라봤던 내가 책을 읽은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모든 이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이나 안 좋은 인식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대우받는 세상은 한국인에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대우받는 세상이 빨리 오길 바란다. 책을 읽은 후 내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우리나라로부터 힘들어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귀가 되어주고 눈이 되어주고 입이 되어주고 싶다.





지.원.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해

색안경=선입견
작년에 인권위원회에서 만든 여섯 개의 시선 중 이주노동자 의 이야기인 ‘말해요 찬드라’를 본적이 있다. 찬드라는 라면을 먹고 돈을 분실해 라면 값을 지불하지 못하여 경찰서로 이송 되었다. 경찰관이 이름을 대라하자 한국말을 못해 “차....차.....” 했지만 정신이상자 로 판단되어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다. 차선미 라고 불리며 정신이 멀쩡했는데도 불구하고 6년을 정신병원에 갇혀 살았던 찬드라. 고작 2500원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이 영화는 ‘말해요 찬드라’책의 내용으로 만들어진 실화이다. 이주노동자의 이야기 1편이 ‘말해요 찬드라’라면 2편은 ‘아빠, 제발 잡히지마’이다. 책을 읽어보면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한국 욕이라더니. 근거 없는 말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난 인권영화를 볼 때만 잠시 이주노동자에 대해 생각했었지 그 이후에 이주노동자 에는 사실상 별 관심이 없었다. 이주노동자가 아니었다면 노동력 부족이 심각했던 한국사회가 이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답은 아니다. 한국 사람은 3D(Dirty, Difficult, Dangerous)업종에 종사하길 꺼린다.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남들이 피하는 일을 하고 싶을까?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돈을 위해서 3D 업종에서 일하는 것 이다.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어떨까? 동남아인을 떠올려 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씨커먼스, 냄새 날것같다 라고 쉬이 판단한다. 하지만 네팔인 들은 흰 옷을 즐겨 입지만 더운 날씨 때문에 적어도 하루에 한번 씩 은 꼭 갈아입는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욱 깔끔할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세상에 연쇄 살인, 힘없는 여자아이 성폭행 처럼 무서운 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 단연 무서운 건 바로 다수의 선입견 즉, 색안경 이다.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볼 때엔 이미 그 사람 에 대한 판단이 머릿속 에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사회라는 다수가 선입견 이라는 색안경을 쓰고서 소수인 이주노동자를 바라본다는건 있어서는 안 된다. 색안경을 벗고 그들의 본질을 볼 때서야 비로소 보인다. 색안경을 끼고는 볼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깨끗한 마음이.

죽거나 떠나거나
“이주노동자를 쫓아내고 새로 받기에 바쁜 법은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정부는 십 수 년간 불법적이거나 편법적인 경로를 통해 들어온 이주노동자를 눈 감아 주며 부족한 노동력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 깨달아 법 제정을 요구 할 때 인 2003년에서야 외국인근로자고용허가제를 도입했는데 그 내용이 한국에서 체류 기간이 4년 미만인 체류자만 합법화 할 테니 나머지는 다 출국하라는 허무맹랑한 내용이었다. 6년 동안 또는 9년 동안 한국을 위해 일 해왔던 노동자들은 허탈할 뿐 이다. 비자를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불법 체류자가 되어 단속을 피해야 한다. 잡히는 순간 그들의 한국 생활은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단속망을 벗어나기 위해 옥상과 옥상사이를 건너 도망가려던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례 가있다. 비자 유무 가 뭐 길래 사람 목숨을 앗아갈까? 비자가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는 거다.

최근 우리나라는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 가정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단일민족을 외치며 그들이 적응 하고 삶을 꾸려나가려 할 때 재빨리 고향으로 강제출국 하도록 한다. 대체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어디를 뿌리로 해서 나오는 걸까? 단군이 뿌리인걸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단일민족은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 이주노동자 가정의 아이는 태어났을 때 혹은 정체성이 잡히기 전부터 한국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점점 자라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책의 이야기 중 일부인 자크 는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자크 엄마는 찜질방에 다니며 일한다. 일자리에 목을 매고 살다보니 이리저리 떠돌게 되고, 힘든 한국 생활에 자크 엄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자크는 계속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떠나기도 쉽지 않다. 정부에서 자크 가족에게 2008년 2월까지 준비기간을 줄 테니 그 이후에는 출국 하라 했지만 자크는 자신도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자기 나라말을 까먹어버린 자크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길을 잃은 처지이다. 3월에 태권도 2품 심사를 보니 비자를 15일만 더 달라고 애원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자크 는 피터팬이 되고 싶어 한다. 단순히 동화책을 읽고 난후의 환상 때문이 아닌 피터팬이 되면 단속 그물망을 빠져나오기가 더 쉬울 테니 피터팬이 되고 싶다는 자크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생각하게 만든다. 이주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게 외국인근로고용허가제 라고는 하지만 이게 과연 이주노동자를 위한 최선일까? 그들을 생각해주는 척하며 그들을 밀어내고 배척하기에 바쁜 현 법. 진정 법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주노동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세상을 제대로 이해 한 뒤 법을 만들어야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은 2004년부터 계속 되고 있다. 6년 어쩌면 7년째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농성. 금방 끝이 나겠거니 라고 생각해 의지가 넘쳤던 처음과 달리 6년째 계속해서 진행되지만 아무 소득이 없이 의미 없는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국내 인권위원회 에서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 라고 한다. 정부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다’ 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걸 증명 할때다.

“한국이 가라 해서 집에 갔더니 가족들은 다시 외국 가래.”
책에서 ‘자신이 송금한 돈은 벌써 바닥 나있고 자신은 빈털터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미 돈을 쓰는데 익숙해진 가족들이 은근히 자신을 다시 밀어내며 다시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 보내기를 바란다 는 것도 그때서야 깨닫게 되지요’ 한국에서 이방인취급에 지쳐가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몸서리 쳐가며 월급 100만원중 80~90만원을 꼬박꼬박 고향으로 송금하고, 고향에 돌아가 가게라도 내볼까 하는 생각으로 돌아갔더니 자신의 돈은 그 어디에도 없고 다시 돈을 벌어오라고 은근슬쩍 자신을 밀어내는 가족들 한국이나 고향 그 어디에서도 오라 하지 않고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버린 이주노동자의 현실. 3줄 속에는 이주노동자의 애환이 가슴 깊숙한 곳에 절절하게 와닿는다. 이주노동자는 고국에 들어가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좌절하게 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많은 수 의 이주노동자들이 그러하다. 자신 나름대로 가족과 재결합 하는 소박한 꿈에 부풀어 귀환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책의 슬픈 아버지의 알리. 알리가 한국에 있는 동안 어렸던 아들이 청년이 되어 술과 마약 에 찌들었다고 한다. 알리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아들과 말해보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결국엔 아들과 싸우며 끝난다 고한다. 어쩌면 아버지의 오랜 부재가 아들을 더욱 더 엇나가게 만든 것 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지다 보면 관계가 멀어져 돌이키기가 힘들다. 돈이 한 가족의 평화를 부수는 셈이다. 알리는 다시 돈을 벌어보려 한국에 왔지만 빚만 생겼다. 글쓴이는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도입국과 보내는 송출국 정부는 제도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어둠의 길로 들어오는게 대부분인 이주노동자가 브로커에게 돈을 뜯기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글쓴이는 이주노동자가 떠나기 전 충분히 교육하여 이주노동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고 이주노동자가 삶을 적극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기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시작되기 위해선 이주노동자가 저임금에 착취당하는 현재 상황 을 막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헴’ 은 1999년 어린나이에 자신이 돈을 벌어 가족들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으로 이주한 효자이다. 한국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들어 설레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공장 사장 은 이주노동자를 폭행 하고 악담을 하는 것을 당연히 하는 상종 못할 사람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주노동자 들의 현실이다. ‘헴’은 한국에서 3년만 일하다가 고국으로 귀환하여 작은 구멍가게 를 내고 싶어 한다. 과연 헴 이 고국에서 구멍가게를 낼 돈이 지켜질 수 있을까? 다른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꺼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헴’ 은 고국에서 구멍가게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밝게 웃었다. 왠지 그 모습이 곧 깨어질 아지랑이 속의 희망 같아서 너무 안쓰러운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들 스스로 만든 밴든 스탑 크랙다운(단속 탄압 중지)의 보컬리스트인 미누 목탄씨가 2010년 10월 7일 자신의 집 앞에서 잠복 중이던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원들에 의해 체포되었다고 한다. 당연한걸 조금만 알아 달라고, 이주노동자들의 말을 하나로 묶기 위해 노래 불렀을 뿐인데 미누 목탄씨는 체포되었고 여전히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배짱이들은 노래를 부른다.

이주노동자의 喜怒哀樂이 아닌 努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존재들로만 느껴지던 이주노동자들이 ‘아빠 제발 잡히지마’를 읽으니 우리 사회가 책임지고 보호해줘야 할 존재로 피부에 와 닿았다.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온 인생을 가방 하나에 쓸어 담고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사람들 버스나 전철에서, 어디서든 커다란 가방을 끌고 다니는 이주민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일자리를 찾아가거나 누군가에게 잠자리를 의탁하러 가는 사람이다’ 사촌오빠와 강남구청에서 집에 오는 전철을 탈 때 이태원에서 인생을 가방에 낑겨 넣은 이주노동자를 본적이 있다. 사실 갈 곳 이 없는 것 같은데 갈 곳 있는 듯 행동 했지만 이리저리 불안히 움직이던 눈동자를 나는 아직 까지도 기억한다. 그 분의 눈동자를 본 순간 마치 내가 그분께 죄를 지은거 같아 눈을 도저히 마주 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동안의 내 시선과 소리 없는 무시가 이들에게는 ‘많이 아팠겠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왜 그랬는지 이제 와서 돌아보니 많이 부끄럽지만 이주노동자는 감정 없는, 욕을 들어도 대꾸 못하는 인간 이하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똑같은 외국인인데 서양사람 한테는 동경을 품고, 동남아시아 사람한테는 냄새 나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품기도 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의식의 변화가 생겼고 반성도 많이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에 온지 4년 미만인 체류자 에게만 비자를 내어 준다는 것과 비자 재발급이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6~9년 동안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해 우리의 경제성장에 보탬이 되어준 이들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강제추방 하는것 은 너무나 가혹하다. 이제는 한국 욕 이 자연스럽고 한국 생활의 경력이 단단히 쌓인 그들을 홀대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책에서 ‘왜 이주노동자의 귀환 후 까지 우리 사회가 걱정해야 할까?’에 대해 저개발 국가의 건강한 노동자를 받아들여 생산을 유지하고 이윤을 창출 했다면 그것을 나눠주려는 노력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라고 책에서 말한다. 우리 사회를 위해 노동력을 나눠준 고마운 이주노동자들이 귀환 한 뒤 제대로 정착하도록 지원 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이다. 새롭고도 다양해진 구성원들과 어떤 방식으로 화합을 이룰 것 인가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진흙 속에서 피는 꽃
이주노동자 가정의 청소년은 693명으로 외국계 주민 자녀들은 3888명으로 매년 증가 하고 있다. 외국계 주민 자녀들은 영등포구, 구로구, 관악구 등 공단과 외국 커뮤니티 밀집 지역, 주거비용이 상대적으로 싼 곳 에 거주하고 있다. 자녀들은 삶의 근거지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부모와 갈등을 겪는다. 이주 청소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에서 보낸다. 그 이유는 언어적 소통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정보 부족, 낯설음의 이유 때문이다. 이들은 지역사회와 교류하는데 있어 어려움으로 선입견과 편견을 꼽았다. 이주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고 말한다. ‘완득이’라는 책에서 완득이의 엄마는 가난한 나라에서 팔리다시피 해서 한국으로 와 완득이 아빠를 만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녀에겐 그녀만의 어쩔수 없는 사정으로 완득이를 아빠에게 맡긴 채 도망치다시피 집을 떠난다. 가난한 가장을 만나고, 가난한 회사에 취직하게 되지만 단지 부자의 나라라는 이유로 그녀를 낮춰보고 그녀 또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책에서는 그녀의 아픔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곧 이주노동자의 아픔이다. 작가는 이주노동민의 대변인이 되어 이주노동자의 차별로 인한 피해와 아픔 상처들의 모두 대변해준다. 이주 노동자들은 모두 기계에 가깝다. 책에서 언급한 것 보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이 계속되고 있고 인권유린 역시 많아지는 추세다.

얼마 전 1박2일에서도 이주노동자를 특집으로 한 것이 방송되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조금 아쉬웠던 건, 이렇게 방송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모두 합법적으로 체류를 하고 좋은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1등급 이주노동자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편에 속하는 데, 이렇게 생활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0%에 가깝다. 그들은 기계도 아니고 노예는 더더욱 아니다. 1박2일 속 의 이주노동자가 당연시 되어야 한다. 1박 2일로 사람들의 인식에 조금은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이주노동자의 밝은 미래
서평을 처음 쓸 때는 점수에 매달려 시작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어느새 이주노동자의 입장이 되어보고, 법은 어떻게 고쳐져야 하는 생각도 해가며 몰입해 가는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학교에서 토론을 했을 때 “법이 변화한다면 사람들이 적응을 하지 못할 테니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입장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의 법이 시정된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 개혁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소리일까? 말도 안되는 소리다. 첫 단추가 잘못되었으면 다 풀어내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부의 편협적인 시선이 아닌 전체적인 사회의 시선이 이주노동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 이주노동자들의 앞날이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행복해질 것 이라는 확신이 든다.




유.정.

그들에게 사람답게 살 권리를 주세요.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을 떠올리면 까무잡잡한 피부, 깊은 쌍꺼풀, 이국적인 분위기가 떠올랐다. 또한 불법체류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이주노동자는 우리나라에서 불법체류를 하며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그들의 고달픈 현실이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주노동자를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를 겉도는, 그런 존재로 생각했다. 이주노동자도 그들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편협한 생각이 얼마나 무지몽매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들도 우리처럼 소중한 가족이 있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 그들은 지금 자신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해답이 한국에 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 한국에 오는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순진한 그들이 믿고 온 한국은 그들을 지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내쫓기 위해 강력하게 단속했다.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라는 허울만 좋은 불합리한 제도를 만들어 한국에 오래 머무른 이주노동자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단속에 걸릴까봐 무서워 밖에 함부로 나가지도 못하고 단속을 피해 건물에서 뛰어내려 다치거나 죽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며, 심지어 그런 그들을 모른 체 하는 출입국 직원들을 보며 이게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 회피하고 싶고 가슴이 아팠다. 더 나은 삶은 살고자 부푼 희망을 안고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왜 우리는 그들을 짓누르는 커다란 절망만 안겨줘야만 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 책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존재인가, 모든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숨도 크게 내쉬지 못하며 사는 그들이 과연 지금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인가를 나 자신에게 묻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 끊임없이 생각하여 작가 이란주 선생님이 이 책을 쓰신 의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이 책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아이들 중에 말하는 것을 보면 대견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샤프라라는 방글라데시 여자아이의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한국말도 곧잘 하게 된 샤프라는 집안의 공식 통역사 노릇도 톡톡히 한다.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던 파키스탄 사람 박카르 씨가 ‘여권밀매’라는 누명을 쓰고 강제출국 될 상황에 처하자 상담소를 찾아와서 엄마가 서투른 한국말로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말들도 또랑또랑하게 전한다. 이런 샤프라의 소원은 한국에서 공부를 계속 해서 ‘한국 사람들을 위한’ 선생님이 되는 것과 방글라데시에 계시는 할머니를 가끔씩이라도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샤프라는 당장 지금의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소원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방글라데시에 출국했다가 다시 재입국해야만 비자가 발급되는 샤프라 엄마는 샤프라의 어린 동생을 데리고 출국해야만 하고 같이 입국할 수는 없다. ‘가족 동반’은 엄격하게 금지되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같이 살고 싶은 그들의 소박한 소망을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가 막아서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은 샤프라의 소망도 ‘제도’라는 것이 막아설까 봐 두렵다. 단지 이주노동자의 자녀라는 이유로 덩달아 움츠러드는 샤프라의 조그만 어깨가 느껴져 서글퍼진다. 그 아이가 잘못한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고 적응하여 평범하게 살고 싶은 샤프라에게 당장 동생과 떨어져 살아야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제도’는 냉소적이고 비정하다. 그들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떼어놓으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제도’를 만든 우리나라 사람들도 냉소적이고 비정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또 자크라는 13살짜리 남자아이가 있다. 자크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자크네 가족은 모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자크는 모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국이 익숙해졌고 모국어는 이제 낯설고 기억조차 흐릿하다. 자크는 태권도도 배운다. 태권도 심사는 3월에 있는데 2월에 자크네 가족은 모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15일만 비자를 연장해달라고 출입국에 사정해봤지만 거절당했다. 자크는 태권도 2품을 따놔야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기 쉽다고 생각해 이렇게나 간절한 것이다. 자크는 한국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고 한국에 뿌리를 내려 살고 싶어 한다.


자크처럼 이주노동자의 자녀들 중에는 모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익숙해진 아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부모가 단속에 걸리면 꼼짝없이 같이 모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에 와서 적응했던 것처럼 또 모국에 가서 적응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이런 상황이 그들에겐 얼마나 혼란스럽고 괴롭겠는가. 자크는 모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모국어와 그들의 문화를 습득해야 한다. 이것은 자크에게 벅찬 숙제일 것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태권도 2품을 따는 것이 절실한 자크의 마음이 나에게도 가슴으로 와 닿아 절절히 느껴져서 한국 사람들의 이런 비정함이 나 역시 원망스럽다.


이 두 아이에게는 한국은 모국보다도 더 익숙한 나라일 것이다. 어쩌면 샤프라와 자크는 자신들이 우리나라의 국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써 인정해주지 않고 왠지 모를 차가운 눈빛을 보낼 때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샤프라와 자크의 주변 상황은 그 둘을 너무 혼란스럽게 만든다. 두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어디서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게 될까 걱정이다. 정체성의 혼란은 대부분의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겪는 문제일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한국 사회에 묻는다,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우리는 한국 사람이 아닌가요?’


벼랑 끝에 선 그들
마흔여덟 살인 거례 아저씨는 얼핏 보면 환갑도 넘은 노인처럼 보인다. 두 개나 빠진 앞니와 하얗게 센 머리칼은 아마도 그의 녹록치 않은 삶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거례 아저씨는 네팔에서 가게를 했는데 한동안 잘 되다가 어려워져 문을 닫고 가진 돈을 긁어모아 한국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돈벌이는 시원찮고 일은 힘들기만 했다. 그는 강제추방을 시킬 거면 차라리 자신을 총으로 쏴 죽여 달라고 말한다. 강제추방을 당해 초라한 모습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거례 아저씨를 ‘한국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는 로니가 있다. 로니는 필리핀에 그의 어머니가 사는 지방이 홍수가 나서 온 마을이 휩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전화를 해봤지만 통화가 되지 않자 내내 어머니 걱정뿐이었다. 그러다 소식이 들려왔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어머니 안부가 걱정되어 집에 갔던 로니 형님까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로니는 어깨를 들썩이며 작게 흐느낄 뿐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이란주 선생님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다고 하셨다. 살을 에는 추위를 이겨내며 농성을 해봐도 우리나라 정부는 절박한 그들을 외면한다. 아무리 악다구니를 쓰며 절박한 심정을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꼼짝없이 강제추방을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나름대로 그들만의 어려운 사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분명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우리나라로 건너왔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가면 당장 가족들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이렇게도 절박한 그들에게 우리는 너무도 차가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벼랑 끝에 선 그들은 ‘희망’을 가지기 위해 우리나라 정부와 싸우고 또 싸울 것이다.


목숨을 건 그들의 선택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단속반이 대거 투입된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익산은 한국에서 형님을 잃었다. 익산의 형님인 누르는 기숙사 방에 있다가 단속반의 급습을 받자 2층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대동맥이 파열되어 수술을 받던 중 다음날 새벽에 사망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2000만 원이나 되는 수술비가 쌓였다. 그 전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단속을 피해 기숙사 창문에서 뛰어내린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발목이 부러졌고 수원 출입국에서 미등록 체류 문제로 조사받던 중국인 여성과 터키 노동자가 투신해 자살했다. 누르가 사고 난 일주일 후에는 창원에서 중국인 노동자가 단속을 피해 공장 건물 외벽을 타다가 떨어져 뇌사 상태라고 한다. 자꾸만 나쁜 사고 소식만이 들려올 뿐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단속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단속에 걸려 강제추방 당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또한 단속이 거세지면서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대체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은 정말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 정부는 그들을 옥죄어야만 하는 것일까. 또한 불법적인 단속 절차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불법체류자’를 ‘불법적인 절차’로 단속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형태의 단속이 없어지지 않는 한, 죽어가는 이주노동자는 계속 생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급하다. 미등록 노동자들을 합법화해주고 단속 절차상의 불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듯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처지개선을 위해 갖은 애를 써 봐도 돌아오는 건 정부의 차가운 외면뿐이다. 오늘도 그들은 차가운 외면과 거센 단속을 피해 오늘도 ‘목숨을 건 선택’을 하고 있다. 그들 앞에서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내뱉기조차 민망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책 속이 아닌, 현실 속의 이주노동자
나는 책을 읽고 나서 이 책 속에서만이 아닌, 현실 속의 이주노동자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없을뿐더러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라도 찾아보기 위해 ‘이주노동자’라고 검색했다. 그랬더니 인터넷뉴스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곧바로 떴다. ‘해고 억울하다, 네팔 이주노동자 목매 숨져’ 정말 책 속에만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한 번도 검색해본 적이 없는 내게는 처음 접해보는 기사였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A씨는 회사가 정신병자 취급을 한 것이 억울하다며 해고를 당한지 닷새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유서에는 본국에 있는 아들과 딸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정말 현실 속에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읽은 이 책도 겪었던 일을 수필로 써서 엮어낸 것이지만 나에게는 정말 ‘책’처럼 느껴졌다. A씨는 해고를 당하고 앞길이 막막했을 것이다. 본국에는 아들과 딸까지 있는데 돈을 부쳐 보낼 수 없게 된 이 상황이 그에게는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 그는 가장으로서의 부담감과 부당한 해고를 당한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자살한 것이다. 어느 회사의 몰인정함이 두 아이에게서 소중한 아빠를 빼앗아 갔다. 이런 비극도 곧 사람들 기억 속에 잊혀갈 것이다. 그저 억울해서 자살한 이주노동자 중 한 명으로 기억하면서 말이다.


나는 또 이주노동자에 관한 기사를 찾다가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발견했다. 기사의 제목은 ‘12시간 노동, 제대로 먹지 못한 이주노동자 파업이 죄?’였다. 열악한 건설 노동 환경 때문에 파업에 돌입했던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검찰이 최고 징역 3년의 중형을 구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정상근무 시간인 8시간과 초과근무 시간 4시간을 합쳐 12시간씩 고된 일을 하며 휴일인 일요일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하루에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값으로 끼니 당 4000원씩, 매일 8000원씩 공제해가며 하루에 한 끼 밖에 주지 않았다고 한다. 식사의 질 또한 열악하다고 한다. 이런 그들에게 ‘벌’을 내리는 우리는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노동을 하는 환경에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했을 뿐이다. 그들은 단지 적당한 노동시간과 제대로 된 식사만을 원해 파업을 했을 뿐이다. 그런 정당한 권리 주장을 묵살하고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우리 정부의 태도에 나는 화가 난다. 그들이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그런 그들에게 ‘업무방해죄’로 중형을 구형했다. 현실 속의 이주노동자는 내가 읽은 책 속의 이주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책 속이 현실이었고 현실이 책 속에 녹아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나름대로의 가슴 절절한 사연을 안고 한국에 왔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라는 말 앞에 ‘불법체류’라는 말이 덧붙여지면 그들은 인간이라면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 또한 단속을 피하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들은 정말 단속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긴장 속에 살며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한다. 몇몇의 악덕 고용주들은 그들을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줄 리 만무하다.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매몰찬 고용주들의 대우 속에 이주노동자들을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벼랑 끝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말만 번지르르한 ‘외국인근로가 고용허가제’는 정말 그들을 위한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역지사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늘도 그들은 제일 낮은 곳에서 낮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사람답게 살 권리를 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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