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뼈뵈지역에 있는 따판차웅 학교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을 운영하는 공립학교입니다. 

학생이 450명 정도 됩니다. 






운동장이 아주 넓지요?


그런데 운동시설이나 놀이기구가 하나도 없고

돌멩이가 많아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넘어져 다치기 일쑤였어요. 







지역 청년단체 '미지마란', 

한국 후원단체 '촌지회'와 함께 

멋진 일을 벌였습니다!!






트렉터로 땅을 갈아  평평하게 다듬고 돌을 골랐어요

배수시설도 만들어 물빠짐을 좋게 만들었고요~






놀이시설과 축구골대, 배구시설도 만들었지요


자~  어때요?  멋지요???

.

.

.



이 활동에 큰 힘을 보태주신 촌지회에 넙죽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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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에 살던 로힝야 민족은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받아 삶터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가고 

더러는 보트피플이 되어 떠돌기도 합니다



정부의 탄압과 그에 맞선 테러가 맞물려 정치적 상황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총격과 방화를 피해 맨몸으로 도망 나온 이들의 절규는 

너무도 처절하여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여성, 노인이 대다수인 

힝야 난민들의 아픔을 보듬 

인간의 온기를 나누는데 함께 해 주십시오!!





방글라데시 귀환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민간단체를 통해, 


국경지대로 피신한 로힝야 난민에게 생필품을 지원합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T.032-684-0244)

국민 256301-04-24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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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단체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의

 미얀마 파트너 단체 레이알루됴(공기기부단)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 왔어요^^

 

레이알루됴는 중증 환자에게 산소를 기부하는 활동을 합니다.

산소기부...  참 생소하지요?

미얀마는 의료 상황이 좀 열악해서 입원환자나 퇴원환자에게 산소가 필요할 때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단체는 산소통을 사서

산소공장에 가서 산소를 넣어

지원이 필요한 환자에게 배달해 주는 일을 합니다.

 

레이알루됴 활동 내용에서 가장 감동적인 점은

산소를 배달하고 있는 회원들 이야기 입니다.

 

배달맨을 자청한 이들은 이 마을에서 싸이카를 운전하는 분들입니다.

싸이카는 자전거 뒤나 옆자리에 승객석을 만들어 태우는 자전거택시지요^^ 

자기 자전거도 없어서 하루에 1천짯(약 1천원)에 빌려 영업을 합니다.

그만큼 팍팍하게 사는 분들인데, 산소통 배달은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기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환자를 만나면 자기 주머니를 털어 후원하고,

또 집안 청소와 집수리도 돕는 등 헌신적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

.

레이알루됴가 환자들 요청이 많아져 산소통이 더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레이알루됴에 150만원을 지원했습니다.

150만원으로 레이알루됴는

10리터들이 산소통 20개와

산소발생기 1대,

산소공급용 파이프 등 꼭 필요한 물품을 알뜰살뜰 구입했습니다.

 

 

회원들이 모여 조촐한 기념 행사를 갖고 후원품을 선보였어요

 

 

 

산뜻한 모습을 뽐내는 산소통 20개

 

 

유량계와 비강캐뉼라도 샀어요~

 

 

산소통을 배달하는 회원들 모습이 담겼네요^^

 

 

레이알루됴는 네팔사랑의 후원에 감사하며 더 힘내서 산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달려가겠다고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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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레이알루됴의 우쏘윈아웅 부회장이

사회발전을 위해 일하는 귀환이주노동자 워크숍 Link up (2015년)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저는 1992년도에 한국에 갔었 고 1998년에 미얀마로 귀국했습니다.

한국에 가기 전에는 한국 선박업체에서 선원으로 2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에는 김포 공항 인근 고촌면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귀국 후, 지금까지 컴퓨터 복사와 인쇄업에 종사하면서 사회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사회봉사단의 이름은 ‘공기기부단’이라고 합니다.

사실 공기는 산소를 말합니다.

우리 공기기부단은 2012년 8월 7일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활동은 저랑 취미가 똑같고 사회봉사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우띤윈(U Tin Win)과 같이 준비했어요.

우띤윈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7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고, 반나절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한 순간이라도 호흡이 멈추면 살 수가 없다.”고요.

우리나라 환자들 중에는 산소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 친구들과 상의해서 ‘산소기부’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지금은 30명의 단원들이 공기기부단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레이알루됴가 지원한 산소발생기를 사용하고 있는 환자

 

 

 

기부금을 모아서 활동을 막상 시작했는데,

구입한 산소를 환자들에게 가져다 주는 일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 ‘사우스 오칼라파 (South Oakkalapa) 타운십, 10동, 제이야티리(Zay Yar Thiri) 로드’ 어귀에 있는

삼륜 자전거 기사들과 협의를 통해서 배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삼륜자전거 기사들은 하루 1천 짯에 자전거를 빌려 승객을 태워주고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지만,

산소 배달은 운반비를 전혀 받지 않고 봉사합니다.

 

 

우리 공기기부단에 산소기부요청이 오면 가까운 데는 삼륜 자전거로 배달하고 먼 곳은 단원들의 차로 배달합니다.

산소 기부를 요청하러 오는 사람들은 의사 추천서를 가져와야 합니다.

산소를 요청하는 이들은 입원 환자보다 퇴원 환자가 더 많아요.

산소를 집으로 가져다 주지요.

 

환자들 중에는 제법 사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가난하고 나이 많고 가족이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이들도 많아요.

우리는 그 분들에게 약간의 생활비와 치료비도 도와드립니다.

어떤 분들은 집이 너무 엉망이고 누울 자리조차 없기도 해요.

우리가 간단하게 집수리도 해 드리지요.

우리가 기부하는 산소로 어떤 환자는 생명을 구하기도 해요.

혹 돌아가시더라도 산소부족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으니 보다 평안하게 죽음을 맞습니다.

 

 

 

산소통을 배달하는 회원들

 

 

 

처음에는 작은 산소통 2개로 시작해서 종교, 민족, 빈부와 남녀노소 차별 없이 24시간 봉사했습니다.

저희 봉사단내에서도 차별 없이 단원 모두가 똑같이 힘을 합쳐서 봉사해왔습니다.

우리 봉사단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 여러 곳으로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 활동을 신뢰하며 자선을 베풀고자 하는 이들의 기부금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고 바르게 활동한 덕분에 지금은 작은 산소통 150개, 큰 통 42개,

산소공급기 5개, 가래 용해기 1개, 가래흡입기 1개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구는 모두 후원받은 거예요.

우리 단체 회원들이 깊은 이타심으로 열심히 활동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기기부단은 하루에 작은 산소통 20-30개 정도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산소 주입은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하고 있고요, 일부 환자들은 우리에게 다시 기부하기도 합니다.

산소를 주입할 때도 자원봉사자들의 차로 공장까지 가서 주입하고 운반합니다.

우리 공기 기부단 사무실에서 산소 생산 공장까지 1시간이 걸립니다.

산소 주입 가격은 작은 통 하나에 4천 짯 이고 큰 통은 8천 짯 입니다.

작은 산소통으로 환자가 3시간 정도 숨을 쉴 수가 있습니다.

큰 통은 작은 통의 5배가 들어갑니다.

 

우리 공기기부단은 환자들의 건강회복과 건강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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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카니 학교가 있는 네팔 굴미 자야카니 VDC에는 약 1500여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굴미는 안나푸르나 자락 1,300미터 즈음에 자리잡은 산간마을입니다.

카트만두에서 출발하면 버스와 지프차를 갈아타가며 18시간을 부지런히 가야 하지요.

우기에는 지프차도 운영을 못하므로 샹쟈에서부터 꼬박 7시간을 걸어가야 해요.

본래 굴미는 커피 산지로 유명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자야카니는 커피나무를 키우기 적당하지 않은 토양이랍니다.

대신 순딸라(네팔토종 귤)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아요.

주민들 연간 수입은 가구당 약 1,000달러 정도래요.

 

이 지역에 자리잡은 자야카니 학교에는 1~10학년 학생이 130명 정도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워낙 산골이고

학교에도 교과서 외에는 책이라 할 만한게 없다보니

학생들이 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2016년 12월,

자야카니 학교 선생님들의 요청으로 2,000달러(약 230만원)을 지원해서

학교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빈 교실에 책장과 책상, 의자를 넣고

책을 642권 꽂아넣었어요.

지구본과 현미경도 구비했습니다^^

 

이 지원활동은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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쫀지학교는 미얀마 양곤 서쪽에 자리잡은 흘라잉따야 지역에 있어요.

양곤에도 큰 항구가 있으니

 '바다'가 아주 생경하지는 않지만

쫀지학교 어린이 대부분은 바다구경을 해 본적이 없대요

 

그. 래. 서.

준비했습니다!!!

 

촌지회가 마련한 '쫀지어린이 바다여행 프로젝트'~^^

 

 

 

 

촌지회 회원님들이 후원금을 마련하여

쫀지학교를 방문했어요.

 

아이들을 만나 같이 놀이를 하고

밥도 해 먹었죠

아이들이 한국음식을 궁금해 해서

고추장을 넣고 한국식 '닭볶음탕'을 했어요.

매워할까봐 아주 쬐금만^^;;

 

 

 

 

 

 

 400인분을 요리하는 일은 완전 전문가의 영역이라

요리 전문가 마을 아주머니들,  선생님들과 같이 했습니다.

우리 짱짱하신 아줌마들은

감자까며

커다란 칼로 닭을 퉁! 퉁! 자르며

장작으로 불지피고

닭을 슥슥삭삭 볶으며

연신 재미나고 신나는 표정으로

같이 이야기나누고

노래불렀어요.

아시죠? 숟가락 마이크!?

마이크 하나씩 들고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주신 아줌마들께 감사~ 감사~

 

 

 

 

다행히 욘석들 아주 맛있게 먹지 뭡니까!!

새벽부터 학교에 왔으니 엄청 배도 고팠을 거예요. ㅎㅎ

 

 

한편, 아이들은 오자마자 가방 내려놓고

고무줄 놀이를 씬나게 한바탕 하더라구요

청소당번은 교실 바닥을 싹싹 쓸어 정리하구요

누가 따로 시키지 않아도 맡은 일을 단정하게 하는 친구들이 아주 장하고 이뻤습니다.

 

 

 

 

 

아이들과 무슨 놀이 했냐구요?

축구, 바람개비, 공기놀이, 종이접기, 고무줄총, 리코더 불기 등 ~

정성껏 준비한 놀이에 폭 빠진 녀석들,

아주 재미났던가 봐요^^

 

 

 

 

 

다음날 아침에는 5학년 학생들과 같이 차웅따 해변으로 달려갔어요

무려 5시간 반!

지치고 힘겨운 길이었지만 모두들 씩씩하게 잘 버텼습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함께한 빵뾰렛 청년 회원들도

바다를 보고 모두 와~~~~~~!!!!

이렇게 가까이 바다를 보고

물속에 뛰어든 것은 처음이라고,

정말 신난다고

좋아합니다.

우리 어린 스님들도!

 

 

 

 

 

에... 또...

우리끼리 뮤직비디오도 만들었어요.

요즘 미얀마에서 국민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노래에 맞춰

그룹마다 아이디어를 내고 연기에 참여해서

작품을 한편 멋지게 찍었어요.

아마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보며

바다여행 추억을 되새기고 있겠지요?

 

쩌어~기 위에

버스 앞에서 찍은 사진에 현수막이 하나 보이죠?

그 현수막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쫀지학교 어린이들, 사랑해요"  라고^^

그래요! 쫀지학교 어린이들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기로 약소~옥!!^^

 

이렇게 막강 촌지회의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함께 하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 바다여행은 지난해 2016년 11월 19~27일에 다녀왔습니다.

보고가 너무 늦었지요.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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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럭치미 학교를 기억하시는지요?

2015년 4월 지진으로 무너졌던 네팔 고르카 타플레 지역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단과대에 해당하는 12학년까지 650여 학생이 다니는 학교 말입니다.

 

 

 

 

 

 

 

 

 

 

 

 

이렇게 부서진 학교를 바라보며 참담함에 가슴이 먹먹했죠

 

 

 

 

 

 

 

하지만 교실이 무너졌다고

우리 희망까지 무너지게 놔둘 수는 없지요

 

양철로 임시 교실을 짓고 무너진 교실에서 성한 책걸상을 옮겼어요

그리고 다시,

꼬마들이 여전히 명랑한 모습으로 양철교실을 꽉 채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약속했어요.

우리 힘을 모아 학교를 다시 짓자!!

 

 

 6개월간 모금으로 학교 건축비 1차분을 마련했습니다.

우리 단체 아시아인권문화연대와 한국희망재단, 한살림이 같이 뜻과 자금을 모았습니다.

 

 

 

 

2015년 11월,

설레는 마음으로 착공식을 했어요

 

 

 

 

 

 

 

 

 

 

학교를 가득 메운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은 너나없이 설레는 얼굴이었어요.

 

 

 

 

어영차~~!!

이제 차근차근 공사를 시작합니다.

 

 

 

 

 

 

 

 

부서진 건물을 깨끗하게 철거하고

바닥을 다집니다.

 

 

 

 

 

 

 

2015년 12월~2016년 1월

 

큰 지진이 다시 와도 힘껏 견디도록 기초공사를 튼튼히 했습니다.

 

네팔 교육부는 지진을 대비하여 교육시설 건설 기준을 강화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하기 시작했어요.

마야럭치미 학교는 그 기준에 따라 정성껏 짓고 있답니다.

 

 

 

 

 

 

 

공사현장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

마을 주민이자 학부모로

주 5일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주 하루는 무료 자원봉사하고 있어요.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니 당연한거 아니냐고 웃음 씩~

 

씩씩하고 멋진 분들입니다!!^^

 

 

 

 

 

 

 

 

 

마야럭치미 학교의 라함툴라미아 교장선생님

원래 2015년 60주년 행사를 잘 마무리하고 정년퇴임하고자 했으나

급작스런 지진으로 인해 모든 계획을 접고

재건축을 위해 백방 뛰어다니고 계시죠.

 

 

 

 

 

 

2016년 2월

 

아래층(반지하층)은 화장실입니다.

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지라 터가 좁은 학교 사정을 감안한 설계입니다.

 

 

 

 

 

 

2016년 5월,

 

이제 번듯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총 공사비는 약 1억5천만원입니다.

공사 도중에 인도에서 전량 수입하던 오일이 끊겨

대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고요

건축자재 반입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역경도 훌쩍 넘어서는 힘이 생겼으니 이제 걱정 없습니다.

 

 

마을주민과 학교가 힘을 합치고

네팔에서 총 진행을 맡고 있는  SoD Nepal이 든든히 버티고 있으니까요.

 

 

네팔 친구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멋진 한국 친구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네팔을사랑하는사람들,

네팔희망나무,

한국희망재단,

한살림을

비롯한 모든 후원자들)이 있으니까요~^^

 

 

 

 

 

 

 

6월 17일 현재, 학교가  더 이뻐졌죠?

 

 

 

 

 

 

2016년 6월 29일 모습입니다.

이젠 거의 끝나 갑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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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체 해외활동 담당자는 지난 5월말~6월초 네팔을 방문하여 지진피해 상황을 살폈습니다.

현재 파트너 단체를 통해 하고 있는 활동을 점검하고

앞으로 복구와 재건을 위해 함께 할 활동을 정했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마야럭치미초중고등학교(고르카 타플레 소재)는 타플레 지역의 유일한 고등학교로

마을 주민 모두가 소중히 여기는, 역사가 60년이나 되는 학교입니다.

 

우리 단체는 SoD Nepal과 함께 이 학교의 임시교실 마련을 도왔고

이번 방문시에는 학용품과 응급약품을 지원했습니다.

 

앞으로 재건 노력을 함께 하기 위하여

이 학교의 라함 툴라 미아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 마을 주민들과 함께 협의하고 있음을 보고드리며,

다음과 같이 이 학교와 마을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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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되기전 새 학교 지었으면.....

무너진 학교, 도움 부탁합니다. 

 

큰 지진 두 번이 네팔에 남긴 상처는 크고 또 깊었다. 수백 년을 굳게 서 있던 고대 도시는 가뭇없이 무너져 내렸고, 산골마다 깃들어 살던 사람들은 죽고 상처 입은 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산악지역인 고르카 타플레 마을은 지진 진앙지에서 가까워 어디 하나 성한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망가져 있었다. 차를 타고 카트만두에서 고르카 도심까지 다섯 시간, 다시 비포장 산길을 삼십분 가량 달리면 타플레 마을이 나타난다. 우리 행정단위로 치면 구(區) 쯤 되는 타플레에는 산속 골골이 자리 잡은 9개 동이 속해 있다. 각 동은 두세 시간은 족히 걸어야 가 닿을 만큼 멀찍이 떨어져 있다. 타플레 4동에는 마야럭치미초중고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과정인 1-5학년, 중학교 과정인 6-8학년, 고등학교 과정인 9-10학년, 국제적으로는 고등학교 과정에 속하나 네팔에서는 단과대 정도의 개념으로 보는 11-12학년까지, 모두 65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터전이다. 타플레에서는 유일한 고등학교다.

 

 

 

 

 

 

 

 

 

 

 

언덕위에 들어선 학교는 넓은 부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땅을 한뼘씩 얻는대로 건물을 앉히는 바람에

삐뚤빼뚤 들어선 건물 7채에  교실 20개가 들어있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이 학교에는 건물 7채에 교실 20개가 앉아 있다. 삐뚤빼뚤 앉은 건물은 땅을 조금씩 얻을 때 마다 하나씩 늘려간 탓이리라. 7채 중 6채가 이번 지진으로 부서졌다. 학교 운동장에는 햇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양철건물이 일자로 길게 서 있다. 한국인들의 후원으로 지은 임시 교실이다.

 

한국인 불교성지 순례객을 대상으로 여행사를 운영하는 네팔인 어르준 파울델 씨와 인도인 너윈 신하 씨가 지진 이재민과 나눌 구호 식량을 들고 타플레를 찾았을 때, 이 학교의 교장 라함 툴라 미아(50세)는 이들의 손을 왈칵 잡아 학교로 이끌었다.

 

“식량으로 배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은 마음과 머리를 지식으로 채워야 합니다. 교육청에서는 당장 학교 문을 열라는데 아이들을 깨진 벽돌 더미에 앉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제발 이 학교를 도와주시오.”

 

 

얼결에 학교를 둘러본 두 사람은 깨지고 무너진 학교와 참담한 교장의 마음을 보았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계속되는 지진으로 흔들리고 있는 여물지 못한 땅에 다시 벽돌을 쌓을 수도 없고, 또 그럴 돈도 없었다. 필요한 교실이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스무 개나 되지 않는가!

 

처음에는 천막을 칠까 생각도 했지만, 당장 우기가 시작되면 거친 비바람을 견뎌야 하니 천막으로는 가당치도 않았다. 거듭 회의를 거듭한 결과 우선 빈 운동장에 대나무로 기둥을 단단히 세우고 양철로 지붕과 벽을 둘러 임시 교실을 짓기로 했다. 공사비는 한국인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했고, 또 이 공사에는 한국인 생태건축가 강대건 씨가 참여했다. 비록 양철 임시 건물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더 안전하고 튼튼하게 짓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학교선생님, 마을주민들과 함께 지은 임시교실

 

 

 

교실을 짓는 사나흘간 참여한 주민들은 연인원 600여명에 달했다. 낫 한 자루를 허리춤에 차고 오는 이들, 가느다란 줄톱이나 망치를 들고 오는 이들. 각자 되는 만큼 연장을 챙겨든 이들은 새벽부터 두세 시간을 걸어와 아이들을 위한 교실 공사에 참여해 땀을 흘렸다. 한국인 건축가에게 대나무를 깊고 단단하게 고정하는 방법, 맞배지붕을 얹는 방법을 배운 이들은 양철가옥 기술자로 대접받으며 주변 학교를 짓는데도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세운 임시교실을 어루만지며 미아 교장은 목이 메었다. 그러나 공사에 애면글면 매달리느라 몸이 많이 상한 교장은 정작 개학날은 병원에 누워 소식만 들어야 했다.

 

 

 

벽돌 한 장이 아쉬워요

 

 

학교가 개학하던 6월 1일, 타플레 마을과 학교를 찾았던 우리는 결국 열혈교장선생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여러 날 지나 6월 4일,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카트만두 큰 병원으로 옮겨온 미아교장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미아교장은 마침 며칠을 괴롭히던 고열이 가라앉았다며 학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가 올해 60주년을 맞아요. 38년 전에는 저도 이 학교 학생이었죠. 그때는 커다란 나무 밑에 나뭇잎을 깔고 앉아 공부했는데, 그나마 3학년까지만 다닐 수 있었어요. 4학년부터는 두 시간 씩 걸어 다른 학교에 다녔죠. 그때 저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고등학생이었어요. 친구들은 가난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학교가 너무 머니 하나둘 공부를 포기하고 농사를 지었어요. 결국 저 혼자 남았죠. 저는 10학년에 다니고 있을 때 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신청해서 교사가 되었어요. 제 나이 열다섯 살 때입니다."

 

" 저는 제가 겪은 어려움을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학교운영위원회와 같이 마을 주민들께 호소해서 땅을 조금씩 얻어 건물을 하나씩 짓고 운동장도 만들며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우리 학교는 공립학교지만 정부가 다 지은 게 아닙니다. 마을 주민들이 손바닥만큼씩 땅을 내놓고 돌 하나씩 나르며 거의 주민 땀으로 지은 거예요. 나중에 정부도 예산을 좀 내고, 외국인 후원자들도 힘을 보탰지만 가장 큰 힘은 주민에게 나온 거랍니다.

 

 

 

 

 

 

 

지진으로 인한  임시 휴교가 끝나고, 개학날 모여든 학생들

 

 

 

 

 

 

 

지금도 하루 한두차례 여진이 오지만

아랑곳없이!

 

크리켓을 하며 놀고 있는 꼬마녀석들^^

 

 

 

우리 마을은 유독 이슬람 인구가 많아요. 예전 고르카 왕국 때 공예기술자로 무슬림(이슬람교도)을 이주 정착시키면서 그리 된 것이죠. 저도 무슬림입니다. 무슬림인 제가 힌두인들의 학교에 다닐 때 처음에는 비아냥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교사가 되고 또 이 학교 교장이 되면서 무슬림들도 공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어요. 지금은 무슬림 여학생들도 우리 학교에 아주 많아요. 여자아이는 교육시키지 않는다는 이슬람 종래 관습을 누르고 모든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또 카스트제도로 가장 차별받는 달리트(불가촉천민)들도 다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카스트제도는 워낙 뿌리가 깊어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우리 의식과 생활에 아직 그대로 남아있거든요. 적어도 우리 교문 안에서는 신분에 의한 어떤 차별도 없도록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원래 저는 올해 60주년 행사를 마치고 교직을 내려놓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지진이 그 계획을 흔들어 놓네요. 저도 그냥 마무리하기 마음이 편치 않고 운영위원회에서도 학교를 새로 짓고 정상화될 때까지 맡아 달라고 요청해 왔어요. 저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시교실을 지어 당장 급한 교육은 재개했지만 갈 길은 참으로 멀다. 하지만 미아교장의 총총한 눈은 의지로 차 있다. 기력 없는 몸을 당장이라도 일으켜 금방 마을로 달려갈 태세다.

 

 

 

 

 

 

이 마을의 주택도 대부분 큰 피해를 입었다.

겉에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안에 들어가면 벽이 무너지고 천장이 내려앉아

도저히 생활이 불가능하다.

 

주민들은 집근처 공터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농사일을 하고 있다.

 

 

 

 

 

원래 물이 귀한 산마을,

이번 지진은 주민들에게 생명과 같은 물을 내주던 샘물을 거의 다 막아 버렸다.

간신히 살아 있는 샘에서 물을 받고 있는 주민들

 

 

 

 

“한국인들 도움으로 임시교실을 지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진 이후로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던 아이들이 새 교실에는 다람쥐처럼 드나들어요. 그걸 보면 새 교실 덕분에 아이들 마음속에 생겼던 지진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고 있구나 싶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여진이 가라앉고 우기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재건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도 그런 계획을 발표하고 있으나 워낙 힘이 없고 돈도 없는 나라라 그 약속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미 많이 도와주셨지만 한번 더 요청드립니다. 정말 벽돌 한 장이 아쉬워요.”

 

 

 

 

 

 

과로로 일주일 넘도록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미아 교장 선생님,

병원에서도 내내 학교 생각만 하고 있다고

가족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

 

 

 

삶은 참으로 모질고도 얄궂다. 숱한 죽음과 상처를 딛고 산 사람은 또 살아간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어른 된 자들은 아이들에게 그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마땅하다. 얇은 양철판이 한겨울 한기를 얼마나 막아줄까 모르겠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땅도 단단해 지고 새 학교 짓는 일도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 된 자들이 외면하지 말고 이 책임을 잘 이어갈 수 있기를! 지진님도 이제 그만 오시기를!

 

 

 

 

 

 

 

 

신고

 

   많은 분들이 모아 주신 정성, 이렇게 전달했습니다~~

 

 

 

 

 

2015년 6월 17일 현재

날짜

지원내용

지원금액

파트너단체

기타

1

5월 3일

고르카 타플레마을

천막, 구호식품, 생필품

1,300,000

SoD Nepal

2

5월 4일

카트만두 따라께숴르 마을

구호식품

함석판(임시주택용)

2,719,850

AHRCDF

3

6월 1일

마야럭치미초중고등학교

저너조띠초중학교

전석띠초등학교

바그바이럽초등학교

칼리까데비절럭초등학교

서로서티초중학교

공책, 연필

비상약품

2,160,000

SoD Nepal

AHRCDF

4

6월 10일

나바두르가초중학교

스리산스크리트초중고등학교

니벨초등학교

야나데비초중학교

함석판(임시교실용)

5,700,000

SoD Nepal

네팔사랑

5

6월 11일

바캉·리핑 티벳공동체마을

함석판(임시주택용)

도로복구(산사태)

10,028,024

Sengedag

Service

Society

아름다운동행(지선스님)

합계금액

21,907,874원

 

 

 

 

 

 

신고

 

 

5월 18일 현재,

지금 네팔 고르카 타플레 마을에서는

마하 럭치미 하이어 세컨더리 스쿨의

임시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학교 운동장에

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함석으로 반벽과 지붕을 얹은 큰 건물 4동을 지어

교실 12개를 만드는 공사!

또 마을 공터에 4동을 따로 지어 이재민 공동 숙소로 만드는 공사!

 

이 프로젝트에는 고건축, 생태건축 전문가인 강대건 님이 함께 하고 있어요.

우연히 네팔을 여행하다 지진을 만나고

네팔인들과 함께 재건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강대건 님은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건축을 진두지휘하고 있어요.

 

 

 

임시건물이지만 비바람도 지진도 두렵지 않을 만큼 튼튼하게 짓기 위해

네팔사람, 인도사람, 한국사람이 힘을 모으고 있는 현장입니다!!!

자, 함께 가볼까요~~

 

 

 

 

 

 

 

건축자재를  빠짐없이 사고

 

 

 

 

으라차차~~ 

학교 운동장으로 나릅니다!!

 

 

 

 

 

 

지붕에 얹기 위해

건축자재상에서 산 함석도 들여오고

 

 

 

 

 

 

기둥으로 세울 대나무를 하나하나 다듬어

행여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합니다

 

 

 

 

 

마디마디 꼼꼼히 손질합니다

 

이 대나무는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준비한다는 원칙에 따라

자재상에서 사지 않고

마을이 직접 마련한 것입니다

 

 

 

 

 

여기는 숙소 공사 현장!

무너진 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마을 주민이

너나없이 일손을 돕기 위해 나왔어요.

 

 

 

 

 

기둥을 박아넣을 자리를 정하고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기둥을 세웁니다

 

 

 

 

 

 

자~ 멋지게 선 기둥이 보이나요?

으쓱으쓱~~

 

이 건물은 낮에는 아이들의 학교로,

밤에는 집을 잃은 이재민들의 숙소로 쓰이게 될 겁니다.

 

 

 

 

 

이제 지붕을 얹을 수 있도록 뼈대를 엮어야죠

대나무 틀은 여러 사람이 올라가도 끄떡없습니다

 

 

 

 

 

 

이렇게 단단히 고정시켜 다시 한번 점검하고

 

 

 

 

 

 

차근차근 지붕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벽을 반만 가려

빛과 공기가 드나들며

아이들 뺨을 어루만질 수 있도록 해야죠

 

 

 

 

 

 

이 구덩이는 뭐냐구요? 

 아~ 화장실 몰라요? 화장실~!! ^^

 

 

 

 

 

 

부서진 건물은 이렇게 철거되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애쓰고 있군요!

 

 

 

 

이 공사는 앞으로도 4-5일 더 걸릴 예정입니다.

 

 

 

 

몸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든 분들,

마음으로 힘을 보태고 있는 모든 분들,

우리 모두

힘냅시다!!!

 

 

 

5월 20일 공사를 마치고 ... 추가 사진 몇 장^^

이웃마을에서도 공사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아이들이

무너진 벽돌더미에 마음까지 무너지지 않도록

함석판 지원과 건축기법 제공에 대해

논의 중입니다^^

 

 

 

 

이야기와 이야기...  의견을 모으고 협력방안을 찾아 봅니다

 

 

 

 

적당하게 벽을 두르고 ...

욘석들 이 정도 높이로 막아주면 공부에 집중하기 좋으려나~???

 

 

 

 

이제 거의 완성되어 가는군요!!

 

 

 

 

내부모습,

사방에 골을 쳐서 빗물이 들어오지 않게 막았습니다.

그래도 비가 많이 오면 아랑곳없이 진흙바닥이 될까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멋지죠?

 

 

 

 

책걸상을 옮겨 넣고 있어요

 

 

 

 

책걸상이 자리를 잡으니

교실 태가 제법 납니다^^

대나무와 양철골이 이루는 조화가 꽤나 멋스럽지요?

 

 

 

 

애태우고 힘쓰고 노력한 이들, 찰칵찰칵^^

 

 

 

신고

 

네팔 간다키 고르카 타플레 VDC(Village Development Committee, 지역개발위원회)에 있는

마하 럭치미 하이어 세컨더리 스쿨은 

초등학생부터 12학년(우리 고등학교 3학년)까지 600여 학생들이 다니는 공립 학교인데,

이 학교도 이번 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2층짜리 건물이 다 부서져 도저히 아이들이 들어가 공부할 형편이 안되는군요.

 

네팔 교육당국은 전국 학교에 5월 31일부터 수업을 재개하라고 하면서도

이런 형편을 살뜰히 살펴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없는 교실은 각 학교와 마을이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학교와 타플레 마을, 우리 파트너 단체인 Solidarity for Development Nepal 은 협력회의를 통해,

우선 5월 25일까지 운동장에 함석으로 교실 12개를 지어

낮에는 학생들을 위한 배움터로

밤에는 주민들을 위한 긴급 대피소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임시 교실 12개를 짓는데 예산이 800만원 가량 필요합니다.

 

 

급한 불은 이렇게 꺼가며

우기가 끝나고 건축을 시작할 수 있는 9월 중순까지 재건축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준비하여

아이들의 배움터를 새로 짓기 위해 꼼꼼히 준비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엄청난 비와 우박이 쏟아져 간신히 버티던 천막을 여럿 찢어놓았다는 소식입니다.

또 머지 않아 세번째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겁나는 예보도 있습니다.

흔들리는 땅에서 달아날 수도 없고

새처럼 날아 하늘에 떠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같이 손잡고 견딜 도리 밖에 없나 봅니다....

 

우리가 비록 멀리 있지만

마음의 손은 길게 뻗어 같이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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