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마다 국제연대는 필요하다는 단순하고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국제’라는 단어는 우리가 한국에서 접하는 이주민에게서 느끼는 국제라는 단어와는 차원이 다른 아주 멀고 먼 것이고, 나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왔다. 2010년 11월 2일부터 5일까지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이주와 개발 그리고 인권에 관한 세계민중행동(PGA; Peoples Global Action on Migrant, Development And Human Lights)’이 개최되었다. 나는 산 넘고 물 건너 멕시코로 갔다. 한국에서 멕시코로 가는 직항은 없었다. 20시간 넘는 이동시간과 평소 같으면 엄두도 못 낼 만만치 않은 비용을 치르며, 우리가 얻을 것인가? 거기서 얻는 것들이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까? 라는 손익계산이 멕시코를 향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국적인 정취에 감동을 받을 시간도 없이 시차 적응이 안 되어 몽롱한 정신 상태로 이주, 인권, 개발에 관한 세계민중행동개막행사에 참여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저마다 고민거리를 안고 찾아온 사람들을 보며 이들을 묶는 공통의 단어 두 가지를 떠올려 보았다. ‘이주’ 그리고 ‘연대’.
수많은 워크숍이 진행되고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사안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내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회의장 바깥 사진전에서 보았던 한 장의 사진이었다.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 담장에 붙어있는 숫자들. 매년 그 국경을 넘다 사막에서 갈증으로, 사고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살해된 이주민들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317, 343... 이 충격적인 숫자들... 워크숍에서 한 미국 활동가는 멕시코와 미국 국경을 넘게 해준다는 코요테라는 밀입국 조직을 찾는 이주여성들은 밀입국 과정에서 대부분 성폭행을 당하고 있으며, 그래서 대부분 여성들이 밀입국을 하기 전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이주를 떠나는 사람들의 절박하고 절절한 현실이 가슴을 저몄다.
또한 남미, 아프리카, 서아시아 등 서로 다른 대륙에서 온 많은 이주관련 활동가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 속에서 이주에 관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꺼내며 경험을 나누고 있었다. 작은 방 하나에 간판만 출입국 보호소라고 붙여 놓은 열악한 보호소 상황, 최저생계비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수준, 강제노동에 가까운 임금착취, 항상 생명과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작업 및 생활환경. 어쩌면 한국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어떤 지점들은 이런 상황에 비하면 훨씬 고상한 것은 아닐까? 다른 대륙과 국가에서 온 많은 활동가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지역 문제를 꺼내 놓을 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과 국내적 상황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무력감이었다.
한국에서 수천 킬로 떨어진 이곳에서 이주의 문제는 어쩌면 우리가 겪는 문제 이상의 비참함을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주의 문제가 어떤 특정 국가나 지역의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 막상 이곳에 와서 느끼는 체감은 매우 달랐다. 많은 현실적 비용에 대해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국제연대를 통해 무엇을 얻어 갈 것인가에 관한 내 고민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주라는 전 지구적 과제가 새삼 다르게 와 닿기 시작했다.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나눌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국제연대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 문제가 심각하다고 늘 칭얼거리며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 달라고 말하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골몰했던 것은 아닌가? 한국적 상황에서 다른 곳에 비해 아주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경험이 적지 않다는 점을 대회 내내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연대’를 꿈꾼다. 함께해야하는 당위는 늘 존재하지만, 변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수많은 사안에 대해 때때로 ‘연대’라는 단어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함께 분노하며 부당하고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는데 어깨를 나란히 해준다면 그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2012년에 한국에서 세계이주사회포럼이 열린다. 세계사회포럼의 한 분과였던 ‘이주’가 그 심각성과 광범위성 때문에 별도의 포럼으로 조직되어 독립되었다. 대회를 1년 반 남짓 남겨두고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이주사회포럼을 개최하며 우리가 얻을 것에 대한 계산이 머릿속에 분주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무엇을 얻을 것인가?’, 무엇을 나눌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함께할 것인가? 우리가 가진 허름하고 작은 곳간 문을 열어 그 곳에 무언가 나눌 것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이완
GFMD, PGA
유엔은 국제사회에 이주와 개발이 미치는 혜택을 최대화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채택하고자 2006년 뉴욕에서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였다. 이 회담의 결과로 유엔 회원국과 유엔 감시단, 유엔 산하 기관들 그리고 국제 감시 기구들로 구성된 ‘이주와 개발에 관한 국제 포럼(GFMD ; The Global Forum on Migration and Development)’이 2007년부터 매년 열리게 되었다. 세계시민단체들은 이주와 개발에 문제로 실제적으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GFMD가 열리는 시기에 맞추어 매년 PGA를 개최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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