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글
지난 봄에 관상을 좀 본다는 나이 지긋하신 분하고 같은 차를 타게 된 적이 있었습니
다. 그 분이 저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야 오래 살 관상이라고 하더군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당연한 말 이기는 한데 그래도 제게는 와 닫았습니다.
사람이 생을 마감할 즈음에 가장 후회하게 되는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너무 재미없게 살았다는 것,
두 번째는 그렇게도 연연해하고 많은 사람들과 티격태격했던 문제들이 지나고 보니 정말
하찮은 것들이라는 것,
셋째는 가치 있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랍니다.
이를 알고부터 실천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되는 게 없고, 그중에서도
특히 세 번째가 늘 마음에 걸렸지요. 열심히 산다고는 하는데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열심히는 산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
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팔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봉사활동 이라기보다는 그 것을
핑계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숨은 뜻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 작은 기부가 큰 뜻에 쓰인다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일 겁니다.
재미있게 살고 가치 있는 일을 많이 하면서 오래 살고 싶습니다.〈네팔〉도,〈네팔을 사
랑하는 사람들〉도 내게 그럴 수 있는 작은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런 인연이 내게 온
것이 기쁘고, 여러분들과 아름다운 기부를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기쁩니다.
* 작은 소식들
1. 본 모임의 1차 운영위 개최 및 결과보고
- 2009년 11월부터 교사 6분 및 학생
급식비로 매월 100만원씩 지급하기로 함
- 2009년 10월 현재 총회원수 42명이며,
매월 기부액 120여만원임
- 5-8학년되는 학생들 직업교육문제, 마을
내 보건진료소 설립 문제, 자활을 지원하
기 위한 지원 은행 설립 문제 등은 장기
과제로 좀 더 연구해 보고 결정하기로 함
- 본 모임의 줄임말을 ‘네팔사랑’으로 정함
2. 제 1회 정기 총회 개최 안내
- 본 회 첫 정기 총회를 개최합니다.
모든 회원이 처음 만나는 자리가 될 예정입니다.
- 저희 회원분들은 대부분 개원의로서 서울~대전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는 관계로 어느 한 곳에서
모임을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체 회원이 가장 접근성이 좋은 장소를 고민하다가 KTX
광명역 대회의실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 곳 : KTX 광명역 대회의실
- 때 : 2010년 2월 25일(목) 오후 8시
저녁 10시 이후 까지 모임이 있을 예정이니 조금 늦더라도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물도 있습니다.
* 저를 소개합니다
여기에 두 분의 산부인과 여자 선생님이 계십니다.
한 분은 안산에서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한 배현미 원장님 (부군이 김채수 회원님 )이시고 다른 한 분은
능력과 미모를 겸비하였으나 단지 상대를 아직 만나지 못해서 화려한 싱글로 살고 계시는 유정현 선생님
입니다.
이 두 분의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결혼의 의미와 산부인과 여의사로서의 삶에 대
해서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
◎ 주의사항은 임신부나 노약자는 본 내용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읽으시다가 배꼽을 잃어버리실 수 있습니다.
★★★ 안산 고잔동 배현미산부인과 배현미입니다. ★★★
Q :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
1남1녀를 둔 개업 14년차.
47세의진료실에서 환자는 못보고 파리만 잡고 있는 공포의 산부인과 의사 ㅠㅠ
Q : 김채수 원장님과 결혼하시게 된 동기, 그리고 만남 이후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남편이 눈에 콩깍지가 씌워 저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제가 바로 청혼해서 결혼함
친정아버지가 저보고 봉 잡았다고 흐믓해 하셨음
Q : 남편이신 김채수 원장님과 한 건물에서 개업하고 계신데요.
좋은 점과 나쁜 점은(각각 3가지 이상씩) ?
나쁜 점 - 없음
좋은 점 - 1. 운전은 안해도 된다. 하긴 면허증만 있지 한 적도 없다.
요즘은 애정이 식어서 밤 10시(노인성 수면장애로 남편 취침시간) 넘어서 친구들과
놀다가 데리러 오라하면 짜증냄
2. 환자 없어서 파리 잡다가 잡을 파리도 없으면 남편 목 조르러 감
항상 다른데도 없다고 위로해 줌 - 위로가 안됨
3. 항상 남편과 붙어 다니다 보니 지갑이 필요없다 - 혼자 있을 때 군것질 하려다가 돈이
없어 못 사먹을 때도 있다.
Q : 부부의사로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은? (3가지씩)
좋은 점 - 1. 같은 동문으로 선후배도 공통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동문 선배들은 무조건 나의
편이다. ㅎㅎ
2.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며 모든 일은 반반씩 분담하는 편이다.
3. 피부관리를 공짜로 받아서 아주 좋지만 돈을 안낸다고 레이져 시술은 귀찮아 한다.
나쁜점 - 둘이 밖에 나와 있어 애들을 잘 못 챙긴다.
Q : 중견 개원의로서 바라보는 10년 후 산부인과는 어떤 상황일까요?
남자 선생님들은 분만 위주의 대형병원과 산부인과 보다는 피부, 비만의 미용을 표방한 여성 병원.
여선생님들은 개인 의원으로 나뉘어 지지 않을까 한다.
Q : 주로 시간이 날 때 하시는 일은?
1. 만화책 보기 - 6살 때부터 만화방에 드나들어 지금도 빌리러 다니며... 돈을 번 후에는 수집도 한다.
2. 운동 -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좋아하는 것 같다. 한 2년 골프 열심히 치고 있다.
혹한기, 혹서기에도 치는데 몸이 골병들고 있는 거 같다. 1년 후에는 테니스 코트 가까운 데
로 이사가서 테니스를 열심히 쳐보기로 남편하고 약속했다.
(대학 때 같은 테니스 써클이었는데 남편은 승부욕이 없는...져도 웃는 이상한 선배였다. )
Q : 개원의 엄마로서의 점수와 그 이유는?
빵점에 가깝다.
육아는 거의 남의 손으로 이루어 졌고, 부모 역할은 거의 남편이 해 왔다고 생각된다.
남편은 부모는 항상 희생하는 존재라고 하는데 나는 잘 안된다.
요즘은 거의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가정을 등한시하고 불철주야 밖으로 밖으로만 나가고 있다.
Q : 우리 모임에서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혹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선생님같으신 분이 많이 나와야지만 활성화 되겠지요.
선 한번 보고 시집갈 수는 없는 것처럼 모임의 활성화에 목슴 걸지 마시고 일단 회비 확보가 일번이고
다음은 좋은 만남이 가능하신 분들이라도 쭉 ~~ 오래 가시면서 회를 깨지 않는 것 정도의 목표가 무
난할 것 같습니다.
Q : 의사회 모임에서 두 분이 항상 같이 다니시고, 옆에서 봐도 금실이 좋은 거 같은데...다시 태어나도
김채수 원장님과 결혼할 생각이 있으신지? 아닌지? 이유는 ?
저는 쭉 ~ 그러고 싶은데, 남편은 요즘 있을 때 잘 하라면서, 눈에 안보이면 집에서 나간 줄 알라고
협박 중입니다. 저 같은 마누라 없다고 그리 세뇌를 했는데 요즘 풀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Q : 부부가 저희 모임에 따로 따로 가입하셨는데...각자 자금 관리를 하시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누가 더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당연 딴 주머니죠. 경제 규모가 워낙 작은 관계로 별 상관이 없습니다.
Q : 가족 자랑 좀 해 주세요.
남편은 음주가무, 주색잡기와 거리가 먼, 고스돕도 모르고 장가를 왔으며, 저는 만화책과 먹을 거와
음악만 있으면 ( 요즘은 골프를 잘 치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 크게 불만이 없고...
저의 딸은 미국에서 대학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12학년인데 갑자기 한국으로 와서 대학을 다닌다고
해서, 평소에 제가 돈 먹는 하마라고 해서 그러나 싶기도 하고요.
저의 막내는 건강을 최우선 주의로 키웠더니 누나와는 너무 차이나게 학비가 안들어서, 남는 돈으로
아들의 미래를 위해 전답을 사야되지 않을까 하고 고민이 많습니다.
아들이 농고를 싫어하는 문제가 ~~
Q : 안산시 의사회의 부회장직을 맡고 계신데, 안산시 의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회장님의 뜻과 상관없이 당연직으로 된 부회장인 관계로 참석을 잘 하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다른 회원들도 모임에 잘 나오고 회비만 잘 내면 90점 이상 되는 회원입니다.
이런 회원이 많아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
★★★ 분당재생병원 유정현 선생님입니다.★★★
Q :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구체적으로, 특히 작년에 있었던 변화...)
40대 초반 줄에 들어서면서 몸도, 정신도 다시 돌아 보았읍니다.
이렇게 살면 50세가 될 때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막연하게 불안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체중을 8% 가량 줄여 20대의 몸무게로 돌아 왔읍니다.
옆과 뒷모습은 S-라인이 살아나지만 앞 모습은 얼굴을 아직 못 건드려서 조금 아쉬
우나 그런대로 만족합니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멀쩡하게 잘 되고 있던 동업을 접고 종합병원에 봉직의로 취직
한 것입니다.
Q : 요즘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는 무엇입니까?
뭐니 뭐니 해도 확 줄어든 봉급으로 어떻게 잘 쓰고 잘 모을지 고민입니다. 차, 집은
줄이기 어렵다고들 하죠. 그래서 일단 차는 유지하되 거의 몰지 않고, 집은 전세나
마 현재 평수로 계속 유지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Q : 대체 결혼은 못한 겁니까? 안한 겁니까?
둘 다인 것 같아요. 결혼하자고 오랫동안 구애한 남자가 없었으니 못한 것이고, 가
끔 남자 측에서 결혼하자는 의사를 보내도 내가 응하지 않았으니 안 한 것이기도 합
니다.
Q : 유선생님과 결혼하기 위한 남자의 조건 5가지만 이야기해 주세요.
음... 첫째 나를 만나면 즐거울 것
둘째 약간의 경제력, 학벌, 좀 안정된 직장, 나름 평범한 가족들과 유소년시절
셋째 BMI 30이하, 현재 밝혀지기로 심각한 질환이 없을 것
넷째 결혼할 의사가 분명하게 있을 것
다섯째 다른 환경에서 오랫동안 각자 다르게 생활한 노처녀를 이해해 줄 포용력과
노력할 자세
이런 조건을 갖춘 남자더라도 유부남은 사절입니다.
( 휴~~~ㅠㅠ ; 편집자 추가 내용임)
Q :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내용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은 절판되어 저도 복사본으로 봤는데, 미국 정신과여의사 메리앤 존슨의 ‘ 완전
한 여성’ 입니다. 출간 당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였답니다. 여성의 불감증에 대한
발생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산업화 이후 닥친 여성의 변화, 그로부터 변화된 가족,
가치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산부인과 의사로써 환자
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인식을 주었읍니다.
Q : 인생의 좌우명이 있다면?
요즘 나 자신을 개조 중이라 과거부터 쭉 유지되는 건 없어요. 하지만 요즘 ‘현실을
직시하기’, ‘새술은 새부대에’, ‘과거의 경험과 인식으로 현재를 보지 않기’ 등 모두
같은 말이예요. 뭐 결국 지혜롭게살자는 겁니다.
Q : 앞으로 10년 후에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헉, 50세가 넘어서 어떻게 사냐구요? 눈 어둡고, 힘없어 분만은 못하겠지요. 내시경
수술은 약간 할 수도 있겠네요. 지금부터 노력하면 변화된 의료 환경에서 잘 살아남
은 산부인과 의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거구요, 주위에 단단한 가족관계가 만들어
져 있으면 좋겠는데 이건 도저히 모르겠네요.
Q : 자신에 대한 자랑거리를 5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솔직하게, 겸손하지 않게 )
1. 연령별 표준치를 뛰어 넘는 늘씬한 몸매
2. 선입견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
3. 솔선 수범형 인간
4. 늘어만 가는 요리 실력.
5. 다들 좋다고 하는 인상.
Q : 신상 정보 좀 알려주세요. (나이, 신체 조건, 특히 재산 등등 )
(이유는? 결혼시킬려고요)
1967년12월 29일 산으로 1968년산과 비슷하게 봐야 됨. 신상 163 cm, 체중 50 kg
대, 재산은 요즘 세상이 험해서 밝히기 그렇지만 부채없이 살기에 넉넉한 재산을
갖고 있읍니다.
Q : 경험해 보신 네팔의 부인과적인 상황을 요약해 주신다면?
네팔은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질염이나 생식기 감염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실제로 가보니 절반 가량의 여성이 속옷도 안 입고 왔는데, 의아하게도 생식기 감염
은 거의 없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해 출산하고, 피임은 거의 무료로 프로
제스테론 제제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호르몬제에 의한 자궁 출혈은 많았지
만, 생리통, 자궁근종 등 출산을 미뤄서 생기는 질환 또한 적었습니다.
출산은 대부분 집에서 이뤄지고 있었고, 폐경되지 여성인데도 과도한 육체 노동으
로 생식기 탈출이 생기고 있었읍니다.
Q : 해외 진료에서 산부인과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네팔이란 나라만 본다면, 가임기에 있는 여성과 임신한 여성의 영양에 대한 교육과
관리, 출산과정과 출산후 관리에 대한 교육, 신생아 관리에 대한 교육 등이 필요하
다고 봅니다.
Q : 우리 모임에서 가장 좋은 점, 고쳐야할 부분 1가지씩을 꼽는다면?
좋은 점은 시키지 않은 일을 열의를 가지고 한다는 것, 고쳐야 할 부분은 현실이 쌓
여서 미래가 열리는데 더 앞서 나가려 한다는 것 입니다.
Q : 자문자답 한가지를 해 주세요.
‘왜 결혼하려고 하나’ 당연한 인생사인데 엉뚱한 질문 같지만 40 넘도록 혼자 살다
보니 이 질문에 나 스스로 답해야만 결혼할 것 같아서요.
답은 외롭게 살기 싫어서, 관계를 배우고 싶어서,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 편집자 광고 - 참신한 총각을 찾습니다.
‘자칭’ S 라인 몸매에 꿈과 희망만 가득한 처자가 있습니다. 이 처자에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해 주면서 아주 가끔 미소 짓게 해 줄 총각이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100% 성공 확률로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 유정현결혼추진위원회 ]
**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는 AHRCDF에 대하여
이란주 ( 본 모임 총무 )
우리 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차별과 무관심 속에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를 돕는 상담단체들의 활동도 활발하고, 송기헌 선생님처럼 의료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처럼 국내에서 혹은 국제사회에서 펼쳐지는 ‘이주노동’과 관련된 활동 대부분은 이주노동자가 취업국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기서 한 발 나아가 이주과정에서 사기당하거나 목숨 또는 건강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한 활동을 고민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이주노동자 송출 국가의 빈곤 문제로 관심을 넓혀 가게 됩니다. 이주노동자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줄기를 하나씩 걷어내다 보면 그 끝에는 고구마처럼 큰 덩어리로 맺힌 출신국가의 ‘광범위한 빈곤과 실업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어쩔 수 없이 ‘이주’를 선택하도록 몰아붙이니까요.
우리 단체(아시아인권문화연대) 또한 ‘이주’와 관련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네팔을 비롯한 인력송출국의 빈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주노동을 마치고 귀환한 노동자가 왜 다시 이주노동을 떠나는가?’ ‘왜 모국에 재정착하여 그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못 하는가’를 고민하던 중, 결국 ‘빈곤’이 그것을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귀환이주노동자들이 모국 사회의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도록’ 돕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현재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네팔에서 현장 활동을 하고 있는 AHRCDF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이 있는 네팔인 중에 선량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 의기투합 하여, 여러 해에 걸쳐 훈련을 받으며 단체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AHRCDF의 주요 사업은
○ 서로서티 학교 운영 ○ 한국이나 중동에서 일하다 생명을 잃은 노동자의 자녀를 위한 장학사업 ○ 예비이주노동자를 위한 교육 ○ 빈곤해소를 위한 여성·청소년 직업훈련 ○ 프러거티 마을 등 가난한 마을 주민을 위한 의료캠프와 치료 지원 활동 등입니다. |
이러한 활동은 대부분 한국에서 보내는 지원과 후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네팔에서 하고 있는 서로서티 학교 운영 등 여러 사업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네팔인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이를 응원하는 한국 친구들이 함께 펼치는 <공동 노력>인 것입니다. 모쪼록 이 노력에 힘을 보태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함께 가는 이들이 많다면 좀 더 신나고 재미나게 갈 수 있을 테니까요.
☆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 서로서티 학교 소식
우리 모임이 매달 1백만원씩 네팔 서로서티 학교에 지원하는 후원금은 선생님 임금과 급식비
(매일 우유와 빵) 등으로 쓰입니다.
서로서티 학교에는 비나라마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일곱 분의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 중 다섯 분은
우리 모임 후원으로 임금을 지급하고요,
한 분은 정부에서 임금을 받습니다. 2008년 말에 우리 학교가 정식 학교로 인가 받으며 정부에서
정교사 1명을 파견했습니다. 이 선생님은 영어를 담당하고 있어요.
또 1분은 무보수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학교 정리와 급식을 담당하고 있는 도우미 선생님이 있습니다.
( 편집자 추가 - 우리가 다른 많은 가난한 나라들 중에서 네팔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
는 바로 이런 단체(AHRCDF)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모은 소중한 회비
를 이 분들은 진정성있게 그 나라의 가난한 분들에게 최대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
고 계신 것을 봐 왔기 때문에 저희는 이런 기반이 이루어진 나라를 우선적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
다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지원 받고 있는 현지에 공정한 시민단체가
필요하며, 이런 단체가 있는 가난한 나라에서 지원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다른 나라에도
추가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해적들을 위한 변명
- 소말리아는 말하고 싶다.
송기헌 ( 본 모임 대표 )
얼마 전까지 평화롭던 그리 크지 않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 조상중의 한 부류가 살던 오래된 나라였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자급자족하면서 평화롭게 살던 나라에서 어느 한 순간부터 그 친했던 이웃을 미워하고 서로 싸우면서 더 이상 편안하게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워지자 서로 자신들만 살겠다는 힘있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나라를, 그 나라의 국민을 힘쎈 다른 나라에게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땅을 팔고, 그 나라의 앞 바다를 팔았습니다.
그 나라의 땅에서는 힘쎈 나라의 대기업이 곡식을 일궈서 가져갔습니다.
그 나라의 앞바다에서는 힘쎈 나라의 대기업이 폐기물을 버리고, 큰 배가 와서 앞 바다에 사는 고기를 다 싹쓸이 해 갔습니다.
이들 앞 바다에 버려진 폐기물은 핵물질로 밝혀졌으며, 이후 핵폐기물에서 나온 독소들에 의해서 힘없는 나라의 사람들은 죽거나 기형아를 낳게되는 황당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일은 이제 이 나라의 배고프고 힘없는 국민들은 더 이상 먹을 거리가 없어졌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곡식을 기르지도 못하고, 땅을 거름지게 할 비료도 없고, 심지어는 그 땅에 심을 씨앗조차도 없었습니다.
나무 가지로 몇 개로 엮어서 만든 뗏목배로는 고기가 잘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그 많던 물고기와 새우들은 저 앞바다의 큰 싹쓸이 배에서 다 잡아가 버렸고, 그나마 해안가에 남은 고기는 폐기물에 의해서 중독되어서 먹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버림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들의 나라에서 나쁜 권력자들에 의해서 버림받았고, 또 위정자들를 이용하는 힘쎈 나라의 알지도 못하는 폭식가들에 의해서 이용당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할 수없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기를 들었습니다.
남아 있는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 앞 바다에 있는 큰 배들을 볼모로 자신들을 이용했던 사람들에게 돈을 갈취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비록 양심에 찔리고, 적개심이나 원한이 뭔지 모를지라도 자신들이 살기위해서는, 그 들의 아이들이 배고픔에 죽어가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게 위해서라도 그들은 총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이들을 탓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더 이상 이들이 고통당하지 않게 도와준 나라가 있을까요?아무도 이들의 고통을 알지도 혹은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그 들이 선량한 선박을 붙잡고 선원을 인질로 잡고, 돈이나 요구하는 나쁜 사람으로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많은 돈을 들여서 커다란 살상 무기를 실은 배를 보내서 많은 배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다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겁니다.
해결책은 단 하나, 그 들에게 먹을거리와 적절한 일거리를 주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이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할 겁니다.
어느 비용이 덜 들까요?
만약에 그들의 땅에 거름을 주어서 이들이 농사를 짓고 먹고살 수 있게 해 준다면, 해양폐기물을 무단 방류하지 않고 적절한 처리를 거치고, 적합한 비용을 지불하고 버렸다면, 싹쓸이 어선들이 이 나라의 영해에는 침범하지 않고 공해상에서만 고기를 잡았다면...
과연 이들이 해적질을 하고 있을까요?
다시 한번 고민해 봅니다.
우리는 소말리아를 더 이상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소말리아 뿐만 아니라 인류 3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을 편안하게 여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심지어 우리는 바로 수 십 km 밖에 있는 같은 민족의 나라인 북한도 왕래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다 우리 세대에 혹은 근 100년 안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몇 개의 나라를 편안하게 여행하고, 서로 교류할 수 있게 만들까요?
이제 이웃 나라도, 아니 이웃집도 무서워서 못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네팔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과 8000미터 이상의 고봉 8개중에 6개가 있다고 합니다.
이 산들은 인류에게 내려진 축복이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공의 재산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네팔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네팔도 우리가 가지 못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곳이 생기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 점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1. 제 1회 정기 총회를 개최합니다.
- 전 회원 여러분께서는 꼭 참석하셔서 회원간의 친목, 회무 안건 논의 및 회계 감사에 임해 주
시기 바랍니다.
- 당일 큼지막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본 회의 감사이인 유인철 문인의 첫 수필집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유선생님의 의사로서
의 일생에 대한 회한과 기쁨을 맛깔스럽게 적어낸 재미있는 책을 저희 회원에게는 선물로 주
시겠다고 합니다. 아울러 책의 판매 수익금은 저희 모임에 기부하여 네팔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할 예정이니, 총회에 오셔서 책도 받고 유선생님의 사랑도 함께 받아가시기 바랍
니다.
- 일시 ; 2010년 2월 25일(목) 늦은 8시
- 장소 : KTX 광명역 대회의실(지하1층)
좌석수가 130석이며 극장식 회의실로 전 회원이 참석하셔야 추위를 면할 수 있습니다
식사는 부폐식 빵과 음료를 준비할 예정이며, 일찍 도착하신 분은 역사 내의 다양한 식당에서,
늦게 도착하신 분은 회의 끝나고 있을 회식에서 굶주린 배를 채우시면 됩니다.
장소는 멀리 대전에서부터 서울의 끝자락에까지 분포된 회원의 참석을 위해서 가장 접
근성이 좋은 곳을 택했습니다.
. 대전 ~ 광명 40분
. 영등포 ~ 광명 10분 이며 내리신 곳에서 한층만 올라가시면 됩니다.
2. 년말 기부금 영수증을 보내드렸습니다.
1월 초에 회원 여러분에게 2009년도 기부금 영수증을 보내드렸습니다. 못 받으신 회원이 있으시면
다시 연락을 주시면 재발급해 드리겠습니다.
3. 본 회 이란주총무가 1월 중순부터 2월초 까지 네팔에서 활동하였습니다.
현지의 따끈따근한 소식을 가지고 왔으며, 총회에서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소개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 외에 다른 일거리를 많이 가져 왔는지 총회에서 확인해 봅시다.
4. 본 회의 감사이자 문인인 유인철선생님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총회에 오시면 선물로 주신다고 합니다.
유선생님의 책이 서점에 널리 배포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도록 서점에서도 추가
로 구매하시면 좋겠습니다. 서점에서 주문을 해 달라고 해야 책이 널리 배포될 겁니다.
책 제목은 “시간의 벽을 넘어서”입니다.
$$$ 간단한 회무 보고 $$$
- 2010년 1월 현재 총 회원수 49명 ( 약정 회원 1명 포함)이며 회비 납부 회원수는 46명입니다.
- 2009년 6월 ~ 2010년 1월까지의 회비 모금 현황
* 회비 수입
2009년 6월 ; 695,000
7월 ; 985,000
8월 ; 965,000
9월 ; 1,225,000
10월 ; 1,315,000
11월 ; 1,345,000
12월 ; 1,345,000
2010년 1월 ; 1,315,000
수입 총계 ; 9,190,000
* 지출 (서로서티 학교 지원 ; 월 ; 1백만원 )
2009년 11월, 12월
2010년 1월 ; 합 3백만원
총 잔액 ; 6191154원 ( 이자 1154원 포함 )
- 회비납부 회원 명단(2009년 9월-2010년 1월)
; 강동숙, 고경옥, 고광섭, 고완, 구혜성,
김경수, 김동섭, 김성수, 김세헌, 김신애,
김영순, 김채수, 김태완, 배현미, 백영일,
서진활, 성덕규, 송기헌, 송병주, 송진남,
심주용, 안두원, 안병은, 오병기, 오창수
원찬연, 유경진, 유인철, 유정현, 이동인,
이병주, 이성근, 이수금, 이정현, 이준호,
이천환, 이호진, 임동수, 정문성, 조주열,
조진영, 조호제, 진성오, 천영덕, 최지영,
황복진
( 약정회원; 이재윤 )
- 단체 기부
서울 향린교회 여신도회
안산 꿈나무어린이집
- 후원계좌안내
; 국민은행 314801-04-017645
(예금주; 이란주아시아인권문화연대)
* 저희 소식지는 흑백입니다.
초라하지만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적은 예산으로 제작하였습니다.
더 많은 돈이 생겨도 그 많은 돈은 우리가 사용할 돈이 아니라 책 한권 없어서 공부를 하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이 사용할 돈 이기에 저희 소식지는 검소하게 만들겠습니다.
- 편집자 겸 대표 송기헌 올림 -
** 2010년 1월까지 가입한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명단 및 조직표
- 대표; 송기헌 ( 송기헌소아청소년과의원 )
- 감사; 유인철 ( 유소아청소년과의원 )
- 총무 ; 이란주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
안병은 ( 정신과의사 )
- 운영위원
김세헌 ( 수원시 금곡동 성모가정의학과의원 )
김영순 ( 수원시 화서동 김영순내과의원 )
김지택 ( 서울시 중구 명동푸른안과의원 )
유정현 ( 분당 재생병원 산부인과 과장 )
이수금 ( 인천시 산곡동 이수금내과의원 )
이천환 ( 안산시 선부동 한사랑외과의원 )
이호진 (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전임의 )
진성오 ( 안산시 월피동 진외과의원 )
- 회원 명단
강동숙 ( 대전시 법동 기린의원 )
고경옥 ( 건양대학교 소청과 교수 )
고광섭 ( 안산시 고잔동 고내과의원 )
고완 ( 안산시 성포동 연세내과의원 )
구혜성 ( 서울시 도곡동 도록렉슬아파트 )
김경수 ( 천안시 안서동 열린사랑의원 )
김동섭 ( 서울시 천호동 강동밝은안과의원 )
김성수 ( 안산시 선부동 한사랑외과의원 )
김신애 ( 서울시 내자동 한빛빌딩 3층 )
김채수 ( 안산시 고잔동 제이제이피부과의원 )
김태완 ( 서울시 응암동 홍익안과의원 )
배현미 ( 안산시 고잔동 배현미산부인과의원 )
백영일 ( 안산시 원곡동 성화산부인과의원 )
서진활 ( 부천시 중2동 서안과의원 )
성덕규 ( 인천시 구월동 로데오프라자 )
송병주 ( 서울시 송중동 하나안과의원 )
송진남 ( 서울시 대방동 송가정의학과의원 )
심주용 ( 서울시 성수동 성모가정의학과의원 )
안두원 ( 대전시 대동 안두원정신과의원 )
오병기 ( 수원시 율전동 제일성모의원 )
오창수 ( 군포시 금정동 오소청과의원)
원찬연 ( 안산시 고잔동 미모산부인과의원 )
유경진 ( 서울시 창전동 유내과의원 )
이동인 ( 안산시 초지동 세종정형외과의원 )
이병주 ( 광명시 광명동 현의원 )
이성근 ( 인천시 구월동 참빛통증의학과의원 )
이정현 ( 안산시 고잔동 치항병원 )
이준호 ( 안산시 월피동 동안산병원 )
임동수 ( 안산시 고잔동 임정신과의원 )
정문성 ( 안산시 선부동 정내과의원 )
조주열 ( 서울시 미아5동 명동안과의원 )
조진영 ( 수원시 탑동 상쾌한이비인후과의원 )
조호제 ( 안산시 고잔동 안산방사선과의원 )
천영덕 ( 안산시 선부동 한사랑외과의원 )
최지영 ( 대전시 송촌동 튼튼소청과의원)
황복진 ( 안산시 고잔동 우리동네정신과의원 )
- 특별회비
(단체 기부금이나 일시불로 기부하신 회원)
서울 향린교회 여신도회
안산 꿈나무어린이집
** 회원을 모집합니다.
저희 모임은 취지만 동의하신다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는 모임입니다.
모임의 출발은 의사들이 시작하였으나, 학생이나 주부 등 어떤 분도 회원으로 환영합니다.
회원은 일정액을 기부하시면 자격이 주어집니다.
기부하신 모든 금액은 전액 기부자의 취지에 맞게 쓰여질 예정입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주위의 친지, 동료 중에 취지에 동의하시는 분이 계시면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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