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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 소식지 제1호

아연대 2010. 10. 20. 14:53

* 소식지 창간에 맞추어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작지만 의미 있는 모임을 결성한 지 이제 3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모임을 처음 기획하고 만들 때에는 아주 많은 난관을 걱정했었으나, 막상 시작을 하고 나니 너무나 많은 좋은 분들이 앞장서 주셔서 아주 편하게 모임이 결성되었고,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항상 첫 모임 때의 생각, 처음 가입할 때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널리 확산시키고자 어렵게 소식지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소식지는 회원간의 인사, 모임의 진행상황 보고, 즐길 수 있는 정보의 교환 등 다양하게 꾸며 볼 생각입니다.

전문적인 편집진이 있거나 자금이 풍부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냥 시작해보자는 열의만 가지고 소식지 창간호를 만들게 되었으니 좋게 봐 주시고, 한자 한자가 저희 회원의 소중한 마음을 담았으니 정성껏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귀한 글을 흔쾌히 써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선뜻 편집을 맡아서 해 주시겠다고 해 주신 구혜성, 김지택 회원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송기헌 올림


-2009년 6월 10일 창립총회 기념사진



*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의 작은 발자취



-2007년~2009년 ; ‘한국-네팔 공동의료 및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의료봉사활동 및 초등학교 건립 및 지원 활동 시작

- 2009년 4월 준비모임 개최 ;


3개년에 걸친 사업을 마무리하며 참여한 의사들 중심으로 지속적인 지원활동을 위한 모임을 준비하기로 함.


- 2009년 6월 10일 ;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창립 총회 개최


( 회장 ; 송기헌 / 감사 ; 유인철/ 총무 ; 이란주, 안병은/ 운영위원 ; 7명 선출


* 전체 회원수 ; 35명


* 2개의 소모임 구성 ; 네팔 보건진료소 설립 및 자금 지원을 위한 모금을 위한 소모임 )


- 2009년 9월 ; 첫 소식지 발간


- 2009년 9월 ; 첫 운영위원회 개최 (예정)

- 2009년 10월 ; 소모임 회의 개최 (예정)

- 2009년 11월 ; 학교 교사 월급 및 급식비 지원시작 ( 월 100만원 )

- 2010년 1월 ; 1차 정기 총회 개최 (예정)



* 저를 소개합니다 *

아래 내용은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한 회원끼리의 인사를 가지는 내용입니다. 매 회 소식지마다 한 두 분씩의 회원을 인터뷰 형식으로 꾸며볼까 합니다. 유머나 고민, 개인 인생사를 쓰셔도 됩니다. 자문자답으로 인터뷰를 하셔도 됩니다.


첫 호의 인터뷰는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위치한 정내과의원 정문성 원장님’ 이십니다.


Q. 모임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사실은 송기헌 선생이 가입하지 않으면 재미 없을 거라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들어왔지만, 살을 좀 붙인다면, 한국전쟁 후 의 우리나라 실정과 유사한 삶을 사는 맑은 눈동자의 어린아이들 사진을 보면, 우리가 받은 정도의 도움으로, 그들도 가능성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임."


Q. 지금까지 지내오신 삶 중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금방 떠오르는 일이 없음.(보람찬 삶을 못 살았다는 자괴감)"


Q
. 회원 중에 3,40대 의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이전 이발소에 가면 벽에 붙어 있는 시의 한 구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Q. 이 모임에 바라는 점은?


"
적절한 동력으로 꾸준하게 나가기."


Q
좋아하시는 운동이나 취미, 특기가 무엇입니까?


"
등산, 자랑 같지만 백두대간 92 % 완주 했음. 골프 쬐끔.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것."


Q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나 꿈은 ?


"평일에 영화 보고, 교보 문고 가서 책 구경 하는 것."


Q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국민 연금. 개인 연금. 종신 보험 조금."


Q
. 여행 다니신 곳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과 그 이유는?


"피지, 그 곳 사람은 나랑 비슷하게 펑퍼짐 하고 여유 있게생겨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조건 '불라(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삶 자체가 여유롭고 느려서, 바삐 돌아가는 우리랑 너무 대조적이고, 정말 한달 내내 있어도 질리지 않을 자연 환경."


Q
앞으로 의사들이 무엇을 관심 있게 해야 할까요?


"궁극적으로 존경 받는 직업 군에 의사가 수위 안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미국도"


Q. 시의사회나 의협에 바라는 점은 ?


"기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당장 내려 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을 풀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막연한 대답?)"

@@ 정문성 선생님은 조용한 성품의 호인으로 술을 드시면 노래를 잘 부르면서 말이 조금 많아지는 경향이 있으신 분입니다. 2000년 의약분업사태 때에는 홀연히 일어나서 어려운 일을 다 하시고, 올바른 의료 제도를 위해서 온몸(머리카락)을 던지신 분입니다.


(분신하시려는 것을 간신히 막았으며, 당시 체중은 조금 줄었을 것(변신한 것으로)으로 사료됨)


지난 해까지 안산시 의사회의 회장님으로서 많은 일을 하셨고, 현재안산시의사회 윤리위원장으로 있으시며, 안산시 의사들의 비리와 공적을 찾아내시고자 두 눈을 부릅뜨고 주무신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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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생각,,,저런생각,,,N. E. P. A. L


유 인 철



네팔로 떠나는 날 아침,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잠을 설쳤지만 몸은 날아오를 듯이 가벼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에서 오는 홀가분한 마음과 의료봉사를 간다는 뿌듯함 때문이었다.


사실 내게 무슨 거창한 뜻이 있어서 의료 캠프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종종 걸음을 치며 집과 병원 병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에 지쳐있었고, 하루라도 쉬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는 것처럼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에 적잖은 회의가 들던 참이었다. 그런 면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티까지 낼 수 있는 의료봉사는 아주 손쉬운 탈출구였다. 더구나 네팔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했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여 1시간을 기다려 입국 수속을 하고, 또 다시 1시간을 기다려 짐을 찾으며 나는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현재 네팔의 일인당 GDP는 채 300불이 안되니 우리나라로 치면 6.25가 끝난 50년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시내는 인파와 노점상, 릭샤와 자전거,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서로 뒤엉켜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도로 상태가 엉망이고 교통 신호마저 없어 시도 때도 없이 막힌다고 했다. 현지 스텝에게 목적지에 몇 시에 도착할 수 있냐고 물으면 대답하는데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빠르면 얼마 늦으면 얼마 하는 식이었다.


하루는 진료를 마치고 시내 야경을 즐기겠노라고 단체로 릭샤를 타고 북한에서 운영한다는 식당으로 가다 교차로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매연만 잔뜩 들이킨 적도 있었다. 카드만두는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공기 순환이 원활하지 못한데다, 낡은 자동차와 가정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극심한 공기오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경찰들이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근무를 하겠는가?


가장 오랜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곳은 의료봉사를 하게 될 쁘러거티 마을에서였다. 개천을 따라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는 도시 빈민촌 이었다 .흙먼지가 풀썩풀썩 일어 신발이며 바지가 금세 뽀얗게 되는 개천 변을 지나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훅하고 시궁창 냄새가 다가왔다.


시꺼먼 하수로 질퍽거리는 마을 길에는 오물들이 뒹굴어 발을 조심해서 디뎌야 했다. 시골에서 살 길이 없어 혹은 내전을 피해 무작정 카트만두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집이나 상하수도 등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의 도움으로 공동우물이 생겼고, 학교가 세워져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몰려나와 우리를 환영해 줬고, 초등학생들이 주황색 메리골드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일일이 걸어주었다.


나는 꽃 목걸이에 코를 박고 역겨운 냄새를 피하면서 앞으로 1주일이 얼마나 힘들지 걱정부터 했다. 이튿날이 마침 홀리(holi)축제의 개막일이라 마을 주민들의 요청으로 모든 단원들이 진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축제에 참여했다.

민속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을 앞세우고 동네를 돌며 물 풍선을 던지거나 서로의 얼굴에 붉은 물감을 칠해주며 풍요와 행운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힌두교는 피와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색을 중시하여 사원에 있는 신상에는 언제나 붉은 물감이 잔뜩 칠해져 있고, 사람들도 이마나 머리 중앙에 붉은 점을 찍는다.


홀리(holi)축제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얼굴에 물감을 묻히는 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자꾸 묻히다 보니 에라 모르겠다 하며 같이 어울려 즐겼다. 줄이 무척이나 길었다. 낯선 외국인을 진료하는 것이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오진을 하거나 잘못된 처치를 하면 의료캠프에 커다란 누가 되기 때문이다.


5일 내내 밀려드는 환자들로 캠프가 미어터질 것 같았지만 자신의 일보다도 더 열심히 하는 단원들의 열정이 이들을 압도해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 현지 통역과 간호학생 등 4명이 한 팀이되 진료에 임했다.


특히 현지 통역은 한국에서 몇 년씩 노동을 했던 사람들로 그 때 번 돈을 기반으로 경제적인 자립을 이뤄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생업을 잠시 쉬면서 까지 의료캠프를 위해 참여해 준 우리 편(?)이었다. 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은 돈을 벌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진료하는 틈틈이 질병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 현지 간호학생들의 적극적인 자세도 예뻐 보였다.

보통 오전 진료를 마치면 점심시간에는 꼭 쉬어야 하는데, 네팔에서는 온종일 환자를 보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으나 피곤할 줄을 몰랐다. 똑같은 진료인데도 이곳에서는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이었고, 환자가 많을수록 오히려 힘이 더 났다.


그 만큼 의료캠프는 내게 에너지를 주고 행복감을 주었다. 한번은 여성 단원이 무거운 박스를 들고 가기에 대신 들어주려고 하니 이 일은 자신의 담당이라며 계속 씩씩하게 들고 가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의료캠프에는 사랑과 헌신이 가득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들만 같다면 싸움이며 반목은 모두 없어질 것 같았다.


아침마다 새소리에 잠이 깼다. 그 것은 집에서는 해보지 못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공기오염도 심하고, 나무도 없는 삭막한 도시 한복판에 있는 호텔인데 어떻게 된 것일까? 답은 네팔 사람들의 신앙심에 있었다. 거리 곳곳에 있는 사원이나 작은 제단의 신상 앞은 너저분한데 그 것은 아침마다 사람들이 붉은 물감, 곡식, 과일, 꽃 같은 공양물을 바치고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이 공양물은 바로 새나 개, 고양이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그들의 개체수가 많은 것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정작 사람들은 말랐는데 짐승들은 비둥비둥 살이 쪄 어기적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아무데서나 잠을 자고 있었다.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고, 괴롭지만 표정이 밝은 것은 생활과 종교가 한 몸이라는 데서 연유한다. 풍족한데도 행복지수가 낮고, 아무 일도 없는데도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의 우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 들은 인사를 할 때 손을 모아 얼굴 높이까지 들고 나마스테(namaste) 하며 고개를 숙인다. 나마스테는 우리의 안녕하세요? 와 같은 것으로 ‘나는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신을 공경합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사만 봐도 그들의 생활이 곧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네팔에 가면 갑자기 우리나라가 좋아진다. 하루 이틀만 있어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살고, 사회 체계가 얼마나 잘 잡혀있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네팔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오래된
진료시간이 되려면 한참 있어야 하는데도 기다리는 환자들로 과거 속에 머물러 있었다. 하루 종일 막히는 무질서한 거리, 극심한 환경오염, 하루 4시간도 채 들어오지 않는 전기, 오랜 내전을 끝냈으면서도 여전히 불안정한 정치, 대다수 주민은 하루 1달러도 못 버는데 일부는 최첨단 디지털 혜택을 맘껏 누리는 엄청난 빈부격차… 등등 이루 다 열거 할 수 도 없다.


진료 마지막 날 아침에 YCL(young communist league, 마오반군계열)소속 사람들이 몰려와서 자기네들을 먼저 진료하라고 요구했다. 밖에는 매일 그랬던 것처럼 많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 최대한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었다. 먼저 진료를 해주지 않으면 모든 진료를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경찰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총선을 앞두고 세를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파워게임이라고 했다. 말려들 수 없어 결국 진료를 포기하고 말았다. 몇 시간을 걸어서, 심지어는 다른 지역에서 하루 전에 와 주변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 일찍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못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 같으면 벌써 엄청 시끄러웠겠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창가에 서서 아주 작은 권리마저 빼앗기고도 돌아서야 하는 주민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네팔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면 바로 맞닥트리는 혼란스러움에 놀라고, 뒤이어 주민들의 순박한 마음씨에 반하고, 환상적인 히말라야에 매료돼 뭐든 해주고 싶어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나라다. 문제는 그 감정이 대부분 일회성이라는 데 있다.


와 하고 단체로 몰려가서 약을 나눠주는 의료봉사도 마찬가지다. 금방 어필할 수 있는 손쉬운 이벤트이기는 하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병의 속성상 잠깐 동안 실시하는 진료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한 의료캠프였는데 귀국하는 길은 가져와야 할 짐을 두고 온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가난하고 하루하루가 고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순박한 미소가 아름다운 네팔 사람들의 N.E.P.A.L(Never Ending Peace And Love)을 기원한다. 

그 후…. 자금 사정으로 쁘러거티 마을의 초등학교를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할 상황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빈민촌 사람들의 구심점인 학교가 없어지는 것은 단순한 학교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난 3년 동안 한국의 지원으로 한창 키워가던 희망이 사라짐을 뜻한다. 네팔 의료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좀 더 힘을 모아 마을에 보건지소를 만들고, 경제적 자립을 위한 교육 사업을 하는 꿈도 꾸고 있다.


@@ 유인철 선생님은 본 모임의 감사이면서 문인이자 섹소폰니스트이시며, 온갖 잡다한 재주를 많이 가지신 분입니다. 특히 머리(카락)는 한국에서 몇 번째로 비싼 것으로 유명하며, 프랑켄슈타인처럼 외모가 밤낮으로 변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곧 첫 작품집을 출판할 예정으로 전 회원께서 10권 이상씩 판매하여 주지 않으면 감사에서 본 모임의 비리를 전국에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계시므로 전 회원께서는 미리 선 주문을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책 판매 수익금은 본 모임에 기부하시겠다고 하신 점을 가슴 깊이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색소폰은 케니 G 다음으로 잘 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언론을 기피하는 성격으로 인해서 방송 출연은 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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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김영순


이번 여름, 안동에서 봉화가는 국도 35번을 거쳐 낙동강 물줄기를 보고 왔다. 구불 구불 산을 친구로 하며 돌아가는 강줄기와 고운 모래 백사장, 얕은 수심 때문에 몰려드는 물새들... (한번 꼭 가보세요. 병산 서원, 도산서원을 들러 청량산 안쪽으로 비포장 도로 달려보시고, 범바위에서 낙동강 보시고...)

이러한 풍경들이 소위 4대강 살리기라는 프로젝트 하에 훼손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팠다. 혈압환자가 혈압으로 인하여 동맥경화가 왔다고 치자. 동맥경화가 온 혈관을 다 수술을 하면 그 환자는 건강해질 것인가? 아마도 수술 후유증으로 죽고 말 것이다.


우선 혈압이 올라가게 되는 원인을 파악하고, 음식, 운동 등의 생활 습관을 고치고, 혈압약이나 고지혈증약을 먹어야 한다. 동맥 경화가 너무 심한 곳은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으나, 수술은 최소화 해야 한다. 그것이 그 환자를 살리는 길이다.


4대강 살리기도 마찬가지다. 우선 4대강으로 들어가는 물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나무를 많이 심거나 하천 주변에 인공시설물을 최대한 없애고, 잔디, 갈대, 논 등으로 물이 한꺼번에 유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이 부족한 것은 물의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중수로 등을 이용하여 물을 재이용 해야 한다. 그래도 상습적으로 물이 부족하거나 침수 되는 지역은 그 지역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도 면밀한 검토를 거쳐 자연훼손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 일본의 아라카와강은 100년을 내다 보고 설계를 하여 15년을 걸쳐서 강을 살렸다고 한다. 그런데 2년 반 만에 4대강을 살린다는 계획을 들여다 보면 어안이 벙벙하다.


첫 번째가
준설이다. 홍수를 막겠다는 것인데, 수심을 6미터나 파야 홍수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어찌 나온 것인지 설명이 없다. 배가 다니려면 수심이 6미터여야 된다고 하는데, 배가 다니면 강이 사는가? 강은 배가 다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준설을 하면 강바닥에 있는 오염물질을 파내서 강이 깨끗해진다고도 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강바닥을 파내면서 오염물질들이 일시에 강에 퍼져 생태계에 끔찍한 일을 일으킬 것을 걱정하고 있다. 아주 심각한 오염물질이 있는 곳은 아주 조심스럽게 제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의 자정능력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생태계에 이롭다고 한다. 또한 강바닥을 깊게 파면 팔 수록 지하수의 수위도 같이 내려가서 지하수를 얻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한다.


또한 준설 할 곳의 지질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2년 반 만에 그 많은 준설을 하겠다고 하니, 준설에서 나오는 모래와 자갈, 바위들을 어떻게 보관할 수 있을지 거기에 대한 대안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준설을 하면 또 다시 모래 등이 떠 내려와 강바닥이 높아질 것인데, 수심 6미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년 강바닥을 파내고 있지 않을지 걱정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실제로 대부분의 홍수는 4대강이 아닌 지천(지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4대강을 깊게 판다고 해서 대부분의 홍수를 예방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가
보의 건설이다. 가뭄이 심각하니 20개나 되는 보를 만들어서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름에만 비가 많이 온다. 그렇다면 여름에 물을 보에 가득 담아서 1년 내내 쓰겠다는 것인데, 그 물이 과연 썩지 않을 수 있을까? 강원도에서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댐을 만들었는데, 결국은 물이 썩어서 그 물로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양식을 할 수도 없어서 주민들이 댐에서 오는 물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방류하는 물로 오히려 홍수가 심해졌다고도 한다. 왜 그런가? 자연의 자정능력이 배제된 채 모아두어 더 오염이 심화된 물을 간헐적으로 한꺼번에 방류하기 때문에 더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한껏 양보하여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보가 필요하다 하더라도20개씩이나? 이건
‘4대강살리기’가 아니라‘대운하’이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대운하란 한강까지 연결되는 것이라 했다. 즉 자신의 임기 동안에만 한강과 연결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국 대운하를 반대하니 4대강 살리기로 이름을 바꾸어 대운하 사전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운하가 강을 살리고 대운하를 해야만 한국이 살 수 있다면 대운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운하를 해야만 한국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운하로 강이 죽을 것이 명약관화해 보인다.


(4대강 살리기에 필요한 인력은 고도의 전문직 조금과 대부분의 일용직이다. 고도의 전문직도 2년 반 후에는 실업자가 될 것이며 대부분의 일용직은 아마도 외국인 노동자로 충당될 가능성이 크다. 건축업이 고용효과가 크다는 계산이 있으나 이는 실내장식 등에 필요한 노동력이 함께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주로 기계를 이용하는 운하 사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과대 포장되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일시적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 경제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강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훼손하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불행히도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돈은 채권을 발행하면 된다 하고, 강 근처의 땅들은 다 국유지여서 땅을 빌려 농사짓는 것에 대한 보상만 하면 된다하니, 그것도 간단한 일이라 한다. 여대 야소 국회에서 막아줄 수도 없을 것 같고, 밀어붙이는 것이 특징인 대통령의 의지가 너무나도 확고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없어 보인다. 



‘살려주세요. 강을 살려주세요. 인간의 잘못으로 강을 죽이지 말아 주세요. 차라리 인간을 벌하세요.’라고 기도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인가? 

@@ 김영순 선생님은 본 모임의 운영위원이시면서, 기독의료인회의 회장, 동네의원살리기모임의 회장을 역임하고 계신 분입니다.

대부분의 모임에서 회장을 하시는 분으로 작은 키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는 최홍만이가 무릎을 꿇고 항복할 정도라고 합니다. ( 그래도 최홍만이 한참 내려다 봤음)

특히 동네의원살리기 모임은 2000년 이후 동네의원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인 명칭이 될 정도로 혁혁한 활동을 하였으며 창립 이후 꾸준히 회장을 맡아오고 계신 선생님의 역할이....(흠흠)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영숙선생님의 무궁무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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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마스떼 그리고 나



                                                                                                        구혜성
 


쳇바퀴 도는 일상에 젖어 살던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한 여성 산악인이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에서 실족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면서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네팔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료인도 아니면서 “네팔의료봉사”라는 거창한 명목 하에 여행가는 가벼운 기분으로 무작정 따라 나섰던 나의 엉뚱함에 살짝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내가 의료봉사랑 그리고 네팔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렇게 씩씩하게 나섰는지... 하지만 나를 네팔로 이끌었던 그 엉뚱함은 아마도 소리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인연과 만나기 위한 것이었나 보다.


흙먼지와 악취의 뒤범벅 속에서 우리를 반기던 쁘러거티 마을의 호기심 가득한 어린 눈동자들......그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당황해 하던 내 모습..... 아마도 입으로는 친근한 척 나마스떼를 외치면서 정작 내 마음 깊이에는 가난과 더러움에 찌든 이들에게 몇 겹의 벽이 둘러쳐 있었나보다.


어른들의 이기로 가난과 내전에 시달리며 진흙쿠키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아이티의 어린아이들을 보며 울컥하고 아프리카 말리의 신생아들이 저체온증으로 죽어간다는 말에 수십 차례 엉킨 코를 풀며 신생아용 모자를 뜨던 내 열정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나는 우리를 둘러싼 이 어린아이들을 보며 나는 결코 김혜자도 신애라도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4일간의 의료봉사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접수라는 비교적 단순한 일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인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줄 세우고 급식하던 아이들의 수가 나에게는 최대의 단체였음을 감안하면 4일간 3000여명은 또 다른 나의 도전이었다.


낯선 곳, 낯선 말,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낯선 일을 하면서 내가 보탬은커녕 오히려 방해가 된 것은 아닌지 하며 나답지 않게 의기소침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격려한 것은 그곳에서 함께 일한 스텝들과 봉사자들의 열정과 진심이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한마음으로 일하는 그들을 보면서 꺼져가던 내 열정과 자신감을 깨우고 싶었다.


나는 어드벤처라는 말을 좋아한다. 목표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강한 의지보다는 좀 더 즐기면서 도전하는 어드벤처!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열어야 하듯이 내 마음을 네팔에 놓는 그 순간부터 나는 훨씬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마른 먼지와 흐릿한 날씨에 대비되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사리와 소박하지만 멋스런 장신구들 사이로 내비치는 순박한 미소가 아름답고 우리네 시골밥상보다도 더 소박한 그들의 음식이 편안하게 느껴졌을 때 나의 네팔 어드벤처는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다.


솔직히 나는 4일 동안 3000여명의 진료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첨단의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이벤트성의 봉사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좋은 의료진을 갖춘 병원을 지어서 지속적인 의료혜택을 받게 하는 것도 필요하고 근본적인 생활환경을 개선시키고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꾸준한 교육 사업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일하면서 가졌던 그 열정과 마음인것같다.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그때 그 마음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결성된 것이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그리고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네팔에 대한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갖는 든든한 이 모임은 나에게는 네팔 어드벤처의 그 나머지 절반의 성공이다.


@@ 구혜성 선생님은 이번 3차 네팔 의료 활동에 참여하신 분으로 주로 가사일을 돌보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외의 활동으로는 본 모임의 운영위원이신 김지택 선생님과 아들 1명을 기르고 있음.


네팔 진료 활동 당시에 외모적으로는 김지택 선생님의 딸로 보였으나 김지택 선생님이 꼼짝 못하시는 것으로 봐서는 김원장님의 사모님으로 판단됨. 이번 창간호 소식지에 많은 도움을 주셨으며, 앞으로도 본 모임의 활성화에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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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고합니다 ‐ 네팔 활동가들과 함께한 교육‐

이란주


지난 7월말, 비가 많이 내리는 네팔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출장 목적은 네팔사무소(AHRCDF) 활동가들의 역량 강화 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한국과 네팔이 함께 사업을 고민하고 결정하여 진행하되, 한국에서는 주로 후원금을 조성하여 뒷심을 받쳐주고, 네팔에서는 그 지원에 힘입어 직접 주민을 만나고 조직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데 AHRCDF 식구들이 별다른 훈련과정 없이 바로 현장 활동에 투입되다 보니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사실 출신과 정치적 의견, 이해가 다른 수많은 이들과 협의하고 조정을 거쳐야 하는 일을 해 내야 하니 보통 내공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답니다.


서로서티 학교를 세우고 확장해 온 과정을 예로 들어 볼까요? 우리 학교는 본래 마을 주민들이 운영해 왔던 것이라 기본적인 부지는 있었지만 너무 좁아 건물을 세우기에는 부족했답니다. 학부모와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학교 운영위원회가 이미 있었으나 학교도 너무 보잘것없는 상태였고 교사들도 안정적이 질 못했으니, 운영위원회도 이름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네팔 활동가들은 그 운영위원회에 결합하여, 우선 운영위원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을 설득하여 운영을 안정시키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 교육이 왜 중요한지, 학교가 왜 마을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학교를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입 가진 자들은 누구나 떠들었답니다. 물론 지지도 있었고요, 한편에서는 학교 자체를 반대하고, 누구는 학교를 마을 구석으로 옮기라 하고, 누구는 그깟 돈으로 안 되니 더 쏟아 부어라 요구하고, 누구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들은 가라하고 ...


결국 굳센 인내심과 정성이 통해 주민들이 마음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학교 옆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집을 옮기면서 그 집터를 학교부지로 넣어 점차 학교가 자리를 잡아가게 된 것입니다. 학교 건물을 처음 지을 때도 사실 한국에서 보낸 지원금은 벽돌 값 200만원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건물을 올릴 때도 모두 품앗이로 참여하여 학교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 활동가들도 훈련되고 역량이 쌓이기는 했습니다만, 미리 교육을 받아 준비된 상태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갈급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주민건강협회, 사랑병원과 3년간 진행해 왔던 컨소시엄 사업을 마무리하며, 그 지원으로 네팔 활동가들의 역량강화 교육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교육에는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의 강인남 선생님이 강사로 참여하여 열정+헌신적인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네팔 활동가들은 처음 접해보는 교육 방식과 내용에 감동하며 6일 내내 밤낮으로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활동을 준비하고,어떻게 주민을 만나 자립하도록 도울 것인가....를 논의하며 내내 반짝이는 눈으로 함께 한 네팔 AHRCDF 활동가들과 강인남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한국에서 응원하며 마음을 합쳐주신 모든 분들께도 상냥한^^ 인사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마을 소식 하나. ‘우기’라 정말 많은 비가 쏟아지는 네팔... 학교와 마을도 여러 차례 물이 찼다 빠졌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며 마을 골목이 진흙 창이어서 한번 들어가면 발목까지 공짜 머드팩을 할 지경입니다. 학교 시설 일부도 물에 잠겨 며칠간 운영을 못했습니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와 골목길에 잔돌을 깔아 길을 확보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학교시설을 일부 보완했습니다. 학생이 늘어나며 화장실이 너무 부족해서 소변용 화장실을 세웠고요, 운동장이 비 때문에 자꾸 진흙뻘이 되어 잔디풀을 심어서 상태가 좀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비에 잔디풀이 뽑히고 죽어 울상들을 하고 있습니다.


@@ 이란주 선생님은 본 모임의 총무이면서 아시아문화인권연대의대표이시고,이주노동자의대모이시며, 한국이주노동자 역사에서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루고 계신 분입니다.


바깥일에 너무 바빠서 집안일을 잘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가족들은 묵비권을 행사 중) 본 모임의 통장을 관리하고 계신 분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비자금을 조성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음.
( 아이고 몰매 맞겠다... 나 도망간다~~~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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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아아~~ 소식지에 대해 안내 말씀드리걷습니다. (시골이장님 방송 중...)



1. 우리 모임에서 이번에 첫 소식지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부탁하신 모든 분들이 단 한분의 거절도 없이 흔쾌히 글을 써 주셨고, 또 약속하신 날짜(일명 마감날)도 잘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를 빌어서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주장하려고 합니다.


“지금의 전통을 꼭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
글 부탁하면 흔쾌히 써주기, 마감날짜 지키기


2. 다음으로는 소식지의 질적인 문제입니다.


녹색성장시대를 맞이하여 근검 절약과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방지하고자 저희 소식지는 당분간 (앞으로도 쭈~욱 ) 흑백으로 인쇄하기로 하였습니다. 저희 모임의 자금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니 상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소식지 편집에 대해서 의의가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소식지를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시간이 철철 넘쳐서 이거라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회원분이 계시면 즉시 연락주십시오.
2‐3분의 회원을 추가해서 편집 위원회를 만들겠습니다. 연락을 주시지 않으면 전화를 드려서라도 강제적으로 편집일을 맡기겠습니다.

4. 소식지는 나만 봐서는 안됩니다.


가족 또는 주변 친지들과 나눠 보셔야 합니다.
특히 우리 모임에 관심이 있거나 가입여부를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면 주소와 성함을 알려주십시오. 소식지와 함께 가입 원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 간단한 회무 보고 $$$


- 2009년 9월 현재 총 회원수 39명 ( 약정 회원 4명 포함)이며 회비 납부 회원수는 35명입니다.
- 2009년 8월말까지 회원의 회비로 모금된 총액은 2,645,000원입니다.
- 회비납부 회원 명단(6-8월)

    ; 고광섭, 고완, 구혜성, 김경수, 김세헌
     김신애, 김영순, 김채수, 김태완, 배현미
     백영일, 송기헌, 송진남, 심주용, 심홍섭
     안병은, 오병기, 이성근, 이수금, 이정현,
     이준호, 이천환, 이호진, 임동수, 정문성
     조진영, 조호제, 진성오, 천영덕
    (약정회원) 김성수, 원찬연, 이동인, 황복진
 
- 단체 기부
     서울 향린교회 여신도회
     안산 꿈나무어린이집
 
 - 후원계좌안내
    ; 국민은행 314801-04-017645 (예금주;이란주아시아인권문화연대)

  ** 2009년 9월까지 가입한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명단 및 조직표

- 회장; 송기헌 ( 송기헌소아청소년과의원 )
- 감사; 유인철 (유소아청소년과의원 )
- 총무 ; 이란주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
         안병은 ( 정신과의사 )

- 운영위원
   김세헌 ( 수원시 금곡동 성모가정의학과의원 )
   김영순 ( 수원시 화서동 김영순내과의원 )
   김지택 ( 서울시 중구 명동푸른안과의원 )
   유정현 ( 평택시 합정동 예일산부인과의원 )
   이수금 ( 인천시 산곡동 이수금내과의원 )
   이천환 ( 안산시 선부동 한사랑외과의원 )
   이호진 (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전임의 )
   진성오 ( 안산시 월피동 진외과의원 )

- 회원 명단
   고광섭 ( 안산시 고잔동 고내과의원 )
   고완   ( 안산시 성포동 연세내과의원 )
   구혜성 ( 서울시 도곡동 도록렉슬아파트 )
   김경수 ( 천안시 안서동 열린사랑의원 )
   김성수 ( 안산시 선부동 한사랑외과의원 )
   김신애 ( 서울시 내자동 한빛빌딩 3층 )
   김채수 ( 안산시 고잔동 제이제이피부과의원 )
   김태완 ( 서울시 응암동 홍익안과의원 )
   배현미 ( 안산시 고잔동 배현미산부인과의원 )
   백영일 ( 안산시 원곡동 성화산부인과의원 )
   송진남 ( 서울시 대방동 송가정의학과의원 )
   심주용 ( 심홍석 회원 가족 (학생) )
   심홍석 ( 서울시 성수동 성모가정의학과의원 )
   오병기 ( 수원시 율전동 제일성모의원 )
   오창수 ( 군포시 금정동 )
   원찬연 ( 안산시 고잔동 미모산부인과의원 )
   유경진 ( 서울시 창전동 유내과의원 )
   이동인 (안산시 초지동 세종정형외과의원 )
   이병주 ( 광명시 광명동 현의원 )
   이성근 ( 인천시 구월동 참빛통증의학과의원 )
   이정현 ( 안산시 고잔동 치항병원 )
   이준호 ( 안산시 월피동 동안산병원 )
   임동수 ( 안산시 고잔동 임정신과의원 )
   정문성 ( 안산시 선부동 정내과의원 )
   조진영 ( 수원시 탑동 상쾌한이비인후과의원 )
   조호제 ( 안산시 고잔동 안산방사선과의원 )
   천영덕 ( 안산시 선부동 한사랑외과의원 )
   황복진 ( 안산시 고잔동 우리동네정신과의원 )

 - 특별회비
    (단체 기부금이나 일시불로 기부하신 회원)
    서울 향린교회 여신도회
    안산 꿈나무어린이집
 
 ** 회원을 모집합니다. 


 저희 모임은 취지만 동의하신다면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는 모임입니다.
모임의 출발은 의사들이 시작하였으나, 학생이나 주부 등 어떤 분도 회원으로 환영합니다.

회원은 일정액을 기부하시면 자격이 주어집니다.
기부하신 모든 금액은 전액 기부자의 취지에 맞게 쓰여질 예정입니다.
 ( 운영비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음 )

신종플루가 아닌 기부의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지는 그날까지 저희 모임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주위의 친지, 동료분들 중에 취지에 동의하시는 분이 계시면 언제나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이에 가입신청서를 보내드리오니 주위 분들에게 동참을 권유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