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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사랑 소식지 11호 (2014년 12월)

아연대 2015. 1. 12. 15:37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송기헌

 

# 이야기 1 ; 휴가

 

지난 여름에 휴가들 잘 다녀오셨나요? 저는 1박2일식 휴가를, 그것도 다른 일(수영대회)과 함께 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지난 여름에 휴가를 잘 다녀오신 분들중에는 빌게이츠와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빌게이츠는 세계에서 제일 부자이면서도 가장 기부를 많이 하시는 분으로 유명하지요. 물론 재산의 대부분은 기부를 하겠다고 공언하였고, 지금까지의 행보로 봐선 아마 실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칭찬을 받아야 할 빌게이츠에게 이번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가족과의 휴가에 적어도 5백만불, 우리 돈으로 51억원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서양인들에게 휴가는 아주 중요한 의미이며, 빌게이츠에게 5백만불은 아주 작은 돈일 겁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부분은 빌게이츠의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에게는 거의 1억불(1100억원, 그래도 많은 돈입니다.)이상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단한번의 여름 휴가에 5백만불을 사용할 정도의 생활에 익숙해진다면, 그 아이들은 나중에 결단코 행복한 휴가를 보내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함이라는 게 있습니다. 항상 우리의 유전자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그런 편안함을 이겨내고, 오랫동안 공부를 하였거나, 혹은 운동을 하였거나 해서 우리의 유전자가 요구하는 것을 극복한 사람을 우리는 존경하고 사회적으로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이제 빌게이츠의 자녀들이 화려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은 어찌보면 나중에 행복을 잃어버리는 휴가를 보내는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준비된 자세로 검소하면서도 소박하지만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있다면, 잠깐의 화려함보다는 오랫동안의 행복과 만족감을 가르치는 것이 더욱 더 자녀를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이야기 2 ; 낮춤

 

 

 

 

 

여름에 우리나라를 또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 중의 하나는 교황님의 방문일 겁니다.

저는 카토릭 신자가 아니지만, 교황님의 인기와 행동은 주시할 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교황님의 행보 중에서 아주 화려하고 큰 서명지에 아주 작은 글씨로 긴 이름을 서명하신 일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누구나 같은 생각이겠지만, 한국 카토릭에서 교황의 서명을 보관하고 전시하려고 했던 화려한 서명책자보다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하면서 봉사와 헌신을 강조하신 교황의 뜻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하나의 쾌거였다고 봅니다.

이제 저도 교황님의 팬이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황은 아닐지라도 아마 지금까지 역사속에서 전 세계에서 팬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교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분이 쓰신 작고 못쓴 글씨체의 서명은 우리에게 보다 낮을 곳으로 내려가라는 명령처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하고 있는 네팔의 서로서티 초등학교 지원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만약에, 조만간의 미래에...서로서티 초등학교가 스스로 일어설 힘이 생기고, 네팔이나 다른 곳에 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더 낮은 곳이 있다면, 우리는 과감히 일어나서 그 곳으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시고자 하시는 교황의 명령입니다.

 

 

 

# 이야기 3 ; 귀감

 

이번에 신입회원이 되신 두 분이 있습니다. 모두 한 가정의 자매들입니다. 사회 초년생이구요.

그 가정의 가장은 이미 저희 회원이 되신 분인데, 자녀에게 회사에서 월급을 받을 때 해야 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기부라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자매 모두가 우리 회원이 되신 겁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는 그 자녀의 미래의 행복감과 사회적 역할에 아주 중요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집에 있는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주위를 한번 돌아보고 낮은 곳에 있는 분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무엇인가를 실천할 때 행복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 네팔사랑의 지원으로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 교실건물 바닥을 30cm가량 높이는 보수공사를 했어요.

 덕분에 지난 7-8월 우기에도 아이들은 안전한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

 

 

 

 

 

(추석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서로서티학교 드림아트스쿨 선생님과 학생들.

네팔사랑은 2014년 상반기 드림아트스쿨 운영비를 지원했습니다.)

 

 

 

 

* 저를 소개 합니다

 

세상에는 참 기인이 많습니다. 이번에 소개시켜 드릴 분도 기인에 드는 분입니다.

 

이 분은 젊은 시절의 저에게는 하나의 우상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은연중에 이 분을 간접적으로 뵌 적이 있을 겁니다. 80년대 중반 이후에 학교에서나 혹은 대부분의 대형

 

집회장소에서 주먹을 쥐고 분노와 환희가 섞여있는 힘찬 얼굴을 그린 걸게 그림을 보셨다면, 아마 이 분을 만나신 겁니다.

 

그러나 이 분은 또 최근의 기인적 행동으로 많은 분들에게 통쾌함과 분노를 동시에 안겨 주었습니다.(정치적 중립적인 발언임)

 

집에서는 사모님(윤애리 회원/윤정신과 원장)에게 애처가이자 공처가적인 행동을 하시면서 괜히 가만히 있는 다른 여자에게

 

 시비를 걸어서 문제를 일으키십니다.

 

 

그 분의 권력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 분의 본질을 파헤치고자 합니다. 그 분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인데, 참 운 없게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높으신 그 분에게 시비를 걸어서 또 다른 고초를 당하셨던 일로 기인반열에 오르신 분입니다.

 

 

이번 10문 10답에서 보여주신 모습은 거칠은 싸움꾼이지만,

 

절대로 약하고 선한 자와 싸우지 않고, 악하고 강한자와 싸우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 올리게 합니다. 또한 이 분의 그림은

 

선이 굵고 어둡지만 아이처럼 순수한 면이 더 깊이 보여지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창시자이자 기인이자 대단한 입담꾼이신 홍성담 선생님을 이번 호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 본 내용은 본 회의 취지와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10문 10답의 내용에 대해서 반하는 의견이 있으신 분은 홍성담선생님에게 직접 욕 하셔도 됩니다.

 

이 분은 그런 욕을 즐겁게 들으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아마 아주 오래 건강하게 사시는 것이 필요하신 분입니다.)

 

(글이 길더라고 곱씹어서 읽어보십시오.  윤애리회원과의 연애담도 있습니다.)

 

 

 

 

1.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저는 목포 앞바다 멀리에 있는 작은 섬 하의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목포중고등학교를 졸업했지요. 저는 교육대학을 진학하고 싶었는데, 공부를 못한 죄로 조선대학

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입학했습니다. 정말 멋들어진 미술선생이 되고 싶었는데.... 대학시절 교육과정을 배우면서(저의 대학시

절은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사회에서 좋은 선생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화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즉, 무명의 화가로써 가난을 참을 수만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화가가 되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내 맘대로 그림 그려서 전시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시절에 연극반과 탈춤반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광주의 딴따라(농악 사물패, 연극쟁이, 마당극패 등을 우리는 ‘딴따라’라

고 부릅니다)들과 어울리면서 연극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대본도 쓰고 연출도 하고, 기획도 했습니다. 아마 내 인

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이 아닐까 생각되는 군요.

 

이때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광주로 내려와서 함께 문화운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3대 구라(참고로 우리나라 3대 ‘구라’는 백기완

선생님을 필두로 방배추선생, 그리고 황석영선생입니다. 요즘은 유홍준선생을 더해서 4대 ‘구라’라고 하는데 엄밀하게 말해서 유홍준

선생은 ‘구라’라기 보다는 건전한 ‘교육방송’에 가깝지요) 중의 한 사람인 황석영은 문화 전반에 대한 감각도 역시 탁월합니다. 당시

광주에서 활동하던 딴따라들이 황석영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1979년부터 1987년까지 광주문화운

동이 대한민국의 문화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1980년 오월항쟁 당시에 우리 딴따라들은 시민군 문화선전대로 열심히 현장을 뛰어다녔습니다.

 

여기에서 1980년 광주 오월의 10일간의 항쟁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당시에 죽은 사람들에겐 참으로 미안합니다만,

정말 행복했던 10일간 이었습니다.

 

국가가 백주대낮에 3.8선에서 북한의 침략야욕을 지키던 군대를 빼내서 광주에 투입하여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했던 사건 아닙니까?

국가는 한 도시 광주를 포기해 버렸지요.

 

군인들이 시민들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무참하게 발포하자 시민들도 무장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시민들이 군대를 조직하여 학살자들인 계엄군과 공수부대를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시민 자치제 즉, 시민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광주의 치안을 담당하게 되었지요. 관공서나 은행등을 지키고 금은방을 지키고 전화국을 지켰습니다.

사실 인구 40만이 넘는 도시는 날마다 강도 절도 강간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치안을 맡았던 기간 동안에 강절도 강간이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백성이 스스로

일으켰던 민란이나 폭동 중에 이렇게 도덕적이고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준 예는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사재기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길거리에 내놓고 누구나 필요한 만큼 가져 갈수 있도록

했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기뻤던 세상이었지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까짓 국가니, 대통령이니, 국회의원이니, 시장이니, 관료니, 검찰이니, 경찰이니.... 이런 사기꾼덜이 없어지면 백성들은 오히려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고 한사람이라도 그 귀함을 인정받고 자신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찾아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하는 사회, 우리는 그런 ‘대동세상’을 보았고 경험했던 것이지요.

 

 

아마 지금도 우리는 분명히 그런 ‘대동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국민을 알기를 지렁이 꼽자구 보다 못하게 보는 대통령이라든가, 또는 국회의원들, 장관 나부랭이덜, 정치권력 앞에만 서면 떡실신을

 하는 검찰덜, 사이버 사령부까지 만들어서 국민들의 선거행위에 개입하는 군대, 뭐 이런 것들을 죄다 없애버린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금방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민덜의 피 빨아먹고

 사는 그따위 정치권력자들인 빈대나 메뚜기들이 없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를 ‘대동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1980년 오월 항쟁기간 10일 동안 죽음을 넘어선 빛나는 생명들을 보았습니다.

아니, 생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빛나는 생명들과 함께 우리의 세상을 이루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향후 아무리 어려운 고통스러운 일을 마주한다고 하더라도 지난 1980년 오월 현장의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저는

평생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네팔 초등교육 과정에서 컴퓨터 교육이 의무화 될 예정입니다. 우리 서로서티학교도 컴퓨터 5대를 마련해서 도서관에 설치했어요. 학교와 아이들이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습니다.)

 

 

 

 

2.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태두로 알려지셨는데요, 민중미술이란 뭔 뜻인가요?

--- 여기에서는 ‘민족’과 ‘민중’이라는 단어를 좀 구별할 필요가 있군요.

우리나라 미술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이 일제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적 가치가 소멸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제식민지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 근대화(개화기라고 합니다만)가 이루어지면서 일본을 통한 서구의 문물과 사상이 사회전반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민족적’인 것은 촌스럽고 수구적인 것으로 폄하되고, ‘서구적’인 것은 새롭고 진보적인 것으로 일반화됩니다. 특히 ‘서구적’인

 것의 유입에 대해서도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비판적인 것은 제거되고 일본에게 우호적인 내용만 수입이

 됩니다. 그래서 일제시기에 유입된 서구문화는 허무주의나 자연주의등이 대부분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면서 미군정이 들어오고 친일파들에 의해서 반공정권이 들어서면서 일제시기의 문화적인 모든 정책과

제도와 사람을 그대로 사용하게 됩니다. 해방은 되었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요. 나찌 잔재를 일소했던 독일이나

프랑스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는 친일파의 세상이 된 것이지요.

 

미술도 그런 사회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미술 화단은 친일파들이 확실하게 장악하게 되지요. 그래서 1970년대

한국화단의 모더니즘 미술마저도 서구에서 원래의 모더니즘의 중요한 덕목인 ‘문명에 대한 비판정신’은 완전히 제거되고 화면에

보이는 겉모습 즉, 형식만 차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1980년 오월광주항쟁을 겪어내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술에서도, 서구의 형식을 벗어나 우리만의 특별한 형식은 없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술은 어여쁜 꽃이나 풍경,

여자의 누드도 그릴 뿐만 아니라 뭔가 사회적인 발언을 할 수 없는가라고 자문하게 됩니다. 일반 사람들도 잘 알아먹을 수 없는

추상화 같은 것 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있는 언어로 우리의 사회 구석구석을 표현할 수는 없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민족적 형식으로 민중적인 내용을 그린다’는 테제가 마련되는데요, ‘민족적인 형식’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 전통의 미감,

즉 우리의 감성적 DNA에 유전적으로 새겨져 있는 미적 감성을 말하는 것이고, ‘민중적 내용’이라는 뜻은 우리들 민중의 구체적인

삶의 아름다움과 고통스러운 현실을 표현해보자라는 말이겠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쉽게 설명하자면,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도 우리의 미적 언어(미학)로 해석해야 비로소 피카소의 그림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우리 땅에서 우리의 화가들이 창작한 그림마저도 서구의 미학, 요즘은 융, 라깡, 데리다, 푸코 등등의 이론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혓바닥이 오그라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이렇게 미친넘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민중미술이란  ‘민족적 형식으로 오늘의 민중적 내용을 그리는 미술’을 뜻합니다.

 

 

 ( 제주강정/ 30 x 45 cm / 종이에 먹과 수채 / 2011년作 홍성담)

 

 

 

 

3. 안산의 마지막 남은 꽃인 윤애리 원장님을 부인으로 맞이하셨는데, 어떻게 만나시게 되셨는지요?

   (완벽하게 보이는 윤원장님의 장단점도 있으면 같이 설명해 주셔도 됩니다.)

 

 

1995년 제1회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광주 비엔날레 한국작가로 선정이 되어 작품을 출품하게 되었지요.

 

제가 존경하는 광주의 안과의사 선배님이 윤애리씨를 데리고 전시관에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평소에 말이 조금 거칠기로 광주에서

소문이 자자하지요. 저의 ‘입’을 두고 주변사람들이 ‘고장난 고사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어요. 한번 제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적이고

 우리 편이고 대중없이 모두 상처를 받게 됩니다. 제가 말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면 시체가 즐비해요. 네편 내편 없이 모두 저의

고사포에 맞아서 쓰러진 것이지요.

 

선배님께서 우선 저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고급 카메라를 선물했습니다. 제가 아주 갖고 싶은 기종이었지요. 그리고 혹시나

 제가 말실수를 할까봐 선배님이 초조해하며 우리의 첫 만남을 시종일관 바로 옆에서 노심초사 지키고 있었지요. 그런데 저의 관심은

 선배님이 선물로 주신 카메라에 꼿혀 있었어요. 콘택스 소형 카메라인데 특별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리미트-골드버전 이었지요.

아주 콤팩트하고 굉장히 예쁜 외관입니다. 저는 그 카메라의 심플한 디자인에 매혹되어버렸어요. 카메라를 손에 쥐면 마치 여자의

매끈한 손을 잡는 느낌이 듭니다. 카메라 바디가 메탈인데도 마치 사람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당장 필름을 장착하여 찍어보고 싶은

 생각 때문에 내 앞의 두 사람이 빨리 일어서기를 바랐습니다. 온통 마음을 카메라에 빼앗긴 나는 선배님과 윤애리 원장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항에 대해서도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무튼 이 두 사람과 헤어져서 나는 즉시 상점으로 달려가 필름을 카메라에 장착

하고 사진 촬영하러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첫 만남에서 윤애리 원장에 대해서는 도대체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윤애리 원장이 읽는다면 나는 한 달 쯤 밤마다 마루에서 의자 들고 벌서게 될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1995년 9월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평생에 가장 후회하는 사건입니다. 이것 땜에 내

인생은 ‘잃어버린 10년’을 맞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10년 후에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윤애리를 보자마자 ‘저 사람이야말로 내가 평생 섬기고 살아야 할 여자다!’라고 순간적으로 느꼈습니다. 아! 그녀는 여자가

 아니라 여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윤애리 꼬시기(?)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저의 순정과 의리를 그녀에게

모두 바쳤습니다. 이런 일에 능한 지인들과 날마다 작전회의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애리는 변죽만 울릴 뿐 저의 불타는

 가슴에 안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애타는 상황을 두고 밤늦게 작전회의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담이는 남자로서 매력이 좀 부족하다. ‘매력’이란 무엇인가? ‘섹시美’가 한참 부족하다. 그러면 ‘섹시美’는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눈(眼)’이다. 담이의 눈에서 나오는 강력한 힘이 윤애리를 휘감아서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강력하고 섹시한 눈빛을

 위해서 지금부터 매일 한 시간씩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눈에 힘을 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저는 작전회의의 결과에 따라서 매일 거울을 보면서 한두시간씩 눈에 힘을 주는 연습을 했습니다. 아~~~ 그런데 십여일도 지나지

않아서 저는 눈병으로 보름 이상을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 다친 망막 땜에 안과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와 땀을 흘리는 온갖 노력에 감동한 윤애리는 결국 저의 청혼을 받아주었습니다.

 

2004년에 결혼했으니 이제 딱 10년이 되었습니다.

윤애리와 함께 살아가면서 나는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롭게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윤애리를 만날 수 있는 축복을 저에게 주신 신에게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습니다.

아차! 단점도 있습니다.

결혼 4년만에 윤애리는 허리수술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주변사람들은 저를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2년만에 다시 허리수술을 했습니다.

주위사람들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핀잔을 합니다.

‘홍화백이 도대체 부인을 어떻게 했길래 허리를 두 번이나 부러뜨려 놓았는가? 쯧쯧’

윤애리의 두차례 허리수술 때문에 저는 짐승 같은 남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저를 ‘살아있는 비아그라’로 바라보았습니

다. 그런데 저는 맹세코 짐승 같은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불면 꺼질까, 쥐면 깨질까 저는 윤애리를 애지중지 사랑합니다.

결혼 10년이 되었으니 아프터서비스 기간도 지나버렸고........

 

 

 

 

 

(에베레스트호라이즌 클럽』 회원들. 이 클럽은 서로서티학교 졸업장학생들의 봉사모임입니다. 장학생에게는 네팔사랑이 마련한 장학금으로 연간 10,000루피(15만원)의 장학금이 4차례로 나누어 지급합니다. 학생들은 장학금을 등록비, 시험비, 학용품 구입에 사용합니다. )

 

 

 

 

4. 미술 이외에 요즘 주로 관심을 가지고 하시는 일(취미)는 무엇입니까?

 

저는 요즘 숲이나 정원을 설계하는 취미에 빠져 있습니다.

 

지난 4월의 세월호 사건 이후 약 200 여일의 시간을 지켜보면서 저는 사실 매우 심한 절망감에 빠져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과 그

이후 이 사건의 수습과정은 우리 한국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병환을 앓고 있는지 알려준 것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학생들의 등교시간이 8시냐, 혹은 9시냐라는 것을 두고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는 이런 야멸찬 사회가 향후 지속 가능할 것인가

라는 물음 앞에 저는 자신있게 낙관적인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빼앗긴 부모의 눈물이나 진상규명을

 두고 종북좌빨이라고 매도하는 이런 사회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라는 의문에 빠지게 합니다.

 

4대강 죽이기가 ‘4대강 살리기’로 언어의 훼절을 겪으면서 우리 강토가 완전히 망가졌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자원외교라는 명목으로 20조원이 증발되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서해와 동해에 있는 핵발전소가 짝퉁

부속이 사용되고 엄청난 운영 비리에 빠져있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재벌과 기업들이 외국에 빼돌린 돈이 1천조원에

달하고, 국민들 가계빚 총액이 1천조원을 넘어도 이러한 경제정책에 누구하나 책임있게 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금융과 정보라는

두 개의 축에 의해서 빈인빈 부익부의 사회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드디어 중산층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해체는 빈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OECD 가입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를 10년째 유지하고 있고 2위 국가와 더욱 격차를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적 팽창과 한미일 안보조약은 동아시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밀어 넣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 전후로

양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던 서북청년단의 재건위원회가 엊그제 백주대낮에 광화문에 출몰하여 세월호 유족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했

습니다. 친일파 후손들과 우익보수가 일본의 우익들이 만든 역사교과서를 그대로 판박이 마냥 베껴 쓴 한국사 교과서가 곧 출판을 앞

두고 있습니다. 이젠 언어의 훼절을 넘어 역사의 훼절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방부는 북한 국방비의 40배의 국방비를 사용하

면서도 북한의 군사력이 무서워서 전시작전통제권을 향후 20년은 더 미군의 손에 맡겨놓아야 한다며 자랑을 합니다. OECD 가입 국

가 중에서 출산률 최하위라는 수치 앞에서 더 이상 미래를 논할 수 없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따위의 사회에서 도저히 미래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한국사회는 두 가지의 선택밖에는 없습니다.

 

첫째, 여기저기서 자살을 하고, 이곳저곳에서 대형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대량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산과 강이 무너지고

막혀서 국토가 병이 들고, 오염과 공해가 찌들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가 점점 없어지면서 온국민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죽어가는

선택과

 

둘째, 영광 고리 월성에서 핵발전소가 폭발을 하여 한꺼번에 죽거나, 또는 다시 한반도에 전쟁이 휩쓸어 동시다발적으로 급하게,

분초를 다투며 급하게 죽어가는 선택.

 

즉, <천천히 죽느냐 혹은 급하게 죽느냐>라는 두 가지 선택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제자신이라도 치유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숲과 정원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즉 <치유의 숲> 또는 <치유의 정원>

을  제 마음 속에 담는 일을 요즘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5. 남미와 같은 제3세계의 민중 미술과 우리나라의 민중 미술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남미의 민중미술’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멕시코의 혁명미술이라고 합니다.

 

리베라, 시케이로스, 프리다 칼로 등등 걸출한 화가들에 의해서 진행되었던 벽화중심의 미술운동입니다. 그들은 서구미술의 오랜

전통에서 벗어나 남미의 고유한 전통으로부터 미학적 아키타입을 찾았습니다. 아즈텍문명이나 잉카문명에서 보여주는 문화적 원형

들을 자신들의 미술형식에서 실험하여 남미 특유의 미술양식을 만들어냈습니다. 문학작품에서 예를 들자면,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케

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나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등등에서 보여주는 남미 특유의 문학적 형식을 일반적으로 ’환상적 리얼리

즘 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말합니다. 멕시코의 혁명미술에서도 이러한 남미 특유의 리얼리즘을 완성하고 있으며 바로 그 점 때

문에 감상자들을 감동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미술은 멕시코에 혁명정부가 들어서서 정부 재정의 엄청난 지원으로 가능했습니다.

 

이것에 비해서 한국의 민중미술은 정부의 지원 대신에 정부권력의 엄청난 탄압 속에서 성장했던 미술운동입니다. 수많은 화가들이

고문을 받고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이러한 물리적인 탄압뿐만 아니라 온갖 사찰과 감시를 앞세워 은밀하고 교묘한 탄압을 지금도 계

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멕시코의 민중미술은 혁명정부의 지원 아래서 완성된 미술이라고 한다면, 한국

의 민중미술은 독재정권이나 모순된 현실과 싸우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성숙을 해가는 미술운동입니다.

 

 

 

6. 네팔 사랑 모임에 대해서 알고 계신 바와 앞으로 지향해야 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팔사랑모임>에 관해서는 오래전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1998년부터 스리랑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타이완 등지를 떠돌면서 그곳 인권단체나 시민단체들과 결합하여

인권운동 차원의 많은 전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활동가들과 지금도 연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네팔을 가본

적은 없으나 그곳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아주 미미하게 알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과 고

유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도 식민지시대나 한국전쟁 직후에 서구 여러나라의 의료와 교육을 지원받아서 문맹과 질병에서 얼마간 벗어날 수 있었던 역

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점을 반성해야 합니다. 서구의 선교사나 의사들에 의해서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

나는 도움을 받았지만, 더불어서 우리 민족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고유한 문화적 전통 마저도 무분별하게 벗어던져버리는 우를 범했

습니다. 산업화와 서구화가 한 시대의 최고 가치로 자리매김 되면서 인간성과 공동체라는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가 여지없이 파괴되

어가는 과정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평생 동안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집에서 살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노래를 듣고, 똑같은 기도를 하고, 똑같은

춤을 춘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황망한 세상이 되겠습니까.

 

바로 이점입니다. 우리는 네팔이 우리와 다른 점을 사랑하고 그들의 고유한 문화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생성될 수 있도록 보살펴 주

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점을 잘 알고 있고 그 앎대로 실천하고 있는데 제가 괜한 기우를 하는 것이지요?

 

 

 

(발표수업을 위해 차트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

네팔사랑은 안정적인 교육 운영을 위해 교사 인건비를 전액 지원하고 있습니다. )

 

 

 

 

7. 가장 최근에 읽으신 책과 내용 및 간단한 평을 좀 해 주세요.

 

나는 지난 봄 부터 D.H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첫사랑’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하루에 대여섯 페이지씩 읽다보니 서너달이 걸렸습니다. 물론 누구나 젊을 적에 이 책을 읽었듯이 저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책을

수업시간에 책상아래 숨겨놓고 몰래 읽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책을 네 번 읽었습니다. 이 책이 다른 것보다 뭔가

특별한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허심할 때 이 책을 뽑아드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 때 처음 읽고서 ‘나에게 육체라는 것이 있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4살 되던 해에 병환 때문에 약 1년6개월간 요양소 생활을 하면서 이 책을 다시 손에 들었습니다. 그때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영혼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깊이 했습니다.

 

그리고 34살에 감옥에서 3년여를 보내면서 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0.75평 독방에서 이 책을 읽고 난후에 저는 ‘육신과 영혼, 이

둘 중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으로 혼돈에 빠졌습니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오늘 59세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있을 때 가장 완벽한 인간이 탄생한다’

 

 

 

8. 앞으로 15년 후의 선생님의 모습을 말씀해 주십시오

 

15년후, 나는 75세가 됩니다.

 

1997년 42세에 고향을 떠나서 서울로 파주로 안산으로 많이 떠돌았습니다. 15년후, 나는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결국 고향에 스며들

겠지요. 그리고 어느 양지 바른 벽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내 청춘을 바친 금남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바라보며 옛날 생각을 하겠지요.

 

 

그때 나를 닮은 어떤 젊은이가 바쁘게 걸음을 떼며 지나갑니다.

 

‘휘리릭~’

 

내가 텁수룩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슬며시 웃습니다.

 

 

‘이눔들아!

 

나도 왕년에 그렇게 바쁘게 내달았나니.

 

인생 벌 것 없드라. 그러니까 여기저기 이눔저눔 눈치보지말구 더 뛰어라.

 

니덜이 가장 좋아하는거 먼저 졸라 하고,

 

그래도 남은 시간이 있거등 남덜이 행복할 수 있는 일도 함 해봐라!

 

속 알창 읎는 젊은 눔들아!’

 

 

 

 

 

** 2014년 1월~2014년 10월 회계 보고

 

- 회비납부 회원 명단 ( 2014년 1월~2014년 10월 )

 

강동숙, 고경옥, 고광섭, 고완, 구혜성, 김경수, 김성완, 김세헌, 김신애, 김영수, 김영순, 김영희, 김채수, 김태완, 김희준,

 

배현미, 백영일, 백한창, 성덕규, 송기헌, 송병주, 송진남, 안두원, 양영란, 오병기, 오성한, 오창수, 유경진, 유만열, 유인철,

 

유정현, 윤애리, 이동인, 이병주, 이수금, 이양규, 이용민, 이정현, 이준호, 이천환, 이호진, 임동수, 장병예, 전송화, 정두영,

 

정문성, 조유원, 조주열, 조진영, 조호제, 진성오, 최광원, 최다정, 최미소, 최지영, 한지현, 황복진

 

(굵은 글씨는 신입회원입니다.)

 

 

 

* 특별회비를 내 주신 회원입니다. 감사합니다.

 

; 송기헌 ; 90만원 (학교시설개선)

 

; 장학금 후원자

 

- 김영순 ; 30만원  - 유인철 ; 15만원  - 윤애리 ; 30만원  - 송기헌 ; 15만원 

 

 

- 후원계좌안내 : 국민은행 314801-04-017645  (예금주; 이란주아시아인권문화연대)

 

 

 

 

* 알려드립니다.

 

1. 2014년 12월 16일(화)에 fun-day 축제가 있습니다.

 

 

- 행사 주제 ; 네팔의 음식과 문화를 알아보자

 

- 장소 ;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667-2

 

         안산글로벌다문화센터  (위치는 두손병원 ~ 화랑초등교 사이에 있음)  (주차시설 편리함)

 

- 일시 ; 2014년 12월 16일 저녁 7시반 이후

 

- 내용 ; 회원 및 친지 장기 자랑

 

; 네팔 음식으로 저녁 식사하기

 

; 네팔 노래 및 무용 등 접하기

 

; 네팔 소식 듣기 및 우리 모임 소개

 

* 회원 여러분 및 친지분 포함 많은 분의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 이번 모임은 참가비(입장료, 경매등 물품판매등의 행사)가 전혀 없습니다.

 

* 참석 가능하신 분은 동반 인원수와 함께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식사 및 자리준비에 필요함)

 

- 송기헌 ; 010-2292-1373

 

(문자 및 카카오톡, 전화통화 모두 가능함)

 

 

 

2. 소식지 원고를 부탁드립니다.

 

내용의 제한은 없습니다. 아무런 내용도 좋으니 평소에 가졌던 생각이나 널리 알렸으면 하는 내용들, 혹은 재미있는 이야기 등을

 

보내주시면 소식지를 통해서 널리 전파하겠습니다.

 

( sgh1234@empal.com/031-401-1373 송기헌소아과의원 )

 

 

 

3. 지나간 소식지는 다음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http://asiansori.org/ 에서 오른쪽 메뉴 중에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네팔사랑 소식지>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 신규 회원 소개

 

; 조유원 (서울시 동대문구 현대중앙의원)  (오병기회원 소개)

 

; 최다정 ( 경기도 안양시 안양1동 )  (김영희/최동수회원 자녀)

 

; 최미소 ( 경기도 안양시 안양1동 )  (김영희/최동수 회원자녀)

 

; 한지현 ( 윤신경정신과의원 근무 ) (윤애리회원 소개)

 

; 김성완 ( 경기도 의왕시 삼동 )  (유인철회원 소개)

 

 

 

** 회원 동향[動向]

 

- 회원의 주소나 연락처 등의 변경 사항이 있으신 분은 연락 주십시오.

 

(송기헌 ; 010-2292-1373  /sgh1234@empal.com)

 

* 이용민 원장님 주소 변경 ; 인천시 계양구 미용외과

 

 

 

 

** 회원을 모집합니다.

 

우리 모임은 취지만 동의하신다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는 모임입니다.

 

모임의 출발은 의사들이 시작하였으나, 학생이나 주부 등 어떤 분도 회원으로 환영합니다.

 

회원은 일정액을 기부하시면 자격이 주어집니다.

 

기부하신 모든 금액은 전액 기부자의 취지에 맞게 쓰여질 예정입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주위의 친지, 동료 중에 취지에 동의하시는 분이 계시면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 2014년 11월까지 가입한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명단 및 조직표

 

- 대표; 송기헌 ( 송기헌소아청소년과의원 )

 

- 감사; 유인철 ( 유소아청소년과의원 )

 

- 총무 ; 이란주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

 

- 운영위원

 

김세헌 ( 수원시 금곡동 성모가정의학과의원 )

 

김영순 ( 수원시 화서동 김영순내과의원 )

 

김지택 ( 서울시 중구 명동푸른안과의원 )

 

백영일 ( 안산시 원곡동 성화산부인과의원 )

 

유정현 ( 분당 재생병원 산부인과 과장 )

 

윤애리 ( 안산시 고잔동 윤정신과의원 )

 

이수금 ( 인천시 산곡동 이수금내과의원 )

 

이천환 ( 안산시 선부동 한사랑외과의원 )

 

이호진 (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

 

진성오 ( 안산시 월피동 진외과의원 )

 

 

- 회원 명단

 

강동숙 ( 대전시 법동 기린의원 )

 

고경옥 ( 건양대학교 소청과 교수 )

 

고광섭 ( 안산시 고잔동 고내과의원 )

 

고완 ( 안산시 성포동 연세내과의원 )

 

구혜성 ( 서울시 도곡동 도곡렉슬 아파트 )

 

김경수 ( 천안시 안서동 열린사랑의원 )

 

김성완 ( 경기도 의왕시 삼동 우성5차 )

 

김신애 ( 서울시 내자동 한빛빌딩 3층 )

 

김영수 ( 안산시 선부동 김영수비뇨기과의원 )

 

김채수 ( 안산시 고잔동 제이제이피부과의원 )

 

김태완 ( 서울시 응암동 홍익안과의원 )

 

김영희 ( 안양시 안양동 주공 뜨란채 아파트 )

 

김희준 ( 대구시 대구보훈병원 응급실 )

 

배현미 ( 안산시 고잔동 배현미산부인과의원 )

 

백한창 ( 의정부시 용현동 백한창정형외과 )

 

성덕규 ( 인천시 구월동 로데오프라자 )

 

송병주 ( 서울시 송중동 하나안과의원 )

 

송진남 ( 서울시 대방동 송가정의학과의원 )

 

안두원 ( 대전시 대동 안두원정신과의원 )

 

양영란 ( 안산시 단원구 선부2동 )

 

오병기 ( 수원시 율전동 제일성모의원 )

 

오성한 ( 분당 재생병원 신경외과 과장 )

 

오창수 ( 군포시 금정동 오소청과의원)

 

유경진 ( 서울시 창전동 유내과의원 )

 

유만열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

 

이동인 ( 안산시 초지동 세종정형외과의원 )

 

이병주 ( 광명시 광명동 현의원 )

 

이양규 ( 평택시 포승읍 행림내과의원 )

 

이용민 ( 인천시 계양구 미용외과)

 

이정현 ( 안산시 고잔동 치항병원 )

 

이준호 ( 안산시 월피동 동안산병원 )

 

임동수 ( 안산시 고잔동 임정신과의원 )

 

장병예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덕양산업 )

 

전송화 ( 안산시 단원구 선부2동 )

 

정두영 ( 안산시 본오동 정정형외과의원 )

 

정문성 ( 안산시 선부동 정내과의원 )

 

조유원 ( 서울시 동대문구 현대중앙의원 )

 

조주열 ( 서울시 미아5동 명동안과의원 )

 

조진영 ( 수원시 탑동 상쾌한이비인후과의원 )

 

조호제 ( 안산시 고잔동 안산방사선과의원 )

 

최광원 ( 서울시 구로구 고려가정의학과의원 )

 

최다정 ( 경기도 안양시 안양 1동 )

 

최미소 ( 경기도 안양시 안양 1동 )

 

최지영 ( 대전시 송촌동 튼튼소청과의원)

 

한지현 ( 안산시 윤신경정신과 )

 

황복진 ( 안산시 고잔동 우리동네정신과의원 )